용석춘 칼럼
악의 평범성
종교 사유화와 혐오 정치에 비판적 저항으로 성숙해져야
홍천뉴스투데이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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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14 [18:14]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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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명의 등록 교인이 있고 교회 연 예산이 350억원에 달한다는 한 대형 교회에서 원로 목사가 자신의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한 사건이 지난해 11월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한국에서 교회 세습이 처음 일어난 일은 아닌데, 유독 이 교회의 부자 세습이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것은 그 교회가 지닌 다층적 권력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아들 목사는 계속되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노골적 사유화인 세습을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교회’라는 서사를 반복 사용하며 세습이 사적 이득이 아닌 오직 ‘신을 위한 일’이라는 왜곡된 해석을 제시했다.

담임 목사 취임식의 정점은 아버지 목사가 아들 목사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하는 안수식이었다. 이 안수 행위를 통해 세습 행위는 ‘신성한’ 종교 예식으로 전이된다. 그 사적 관계가 공적 관계로 전이되는 기이한 부자(父子)간의 예식은, 기독교를 ‘아버지-하나님’과 ‘아들-예수’로 구성되는 ‘부자의 종교’로 규정하는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제적인 해석과 맞닿는다. 하늘의 ‘아버지(하나님)’가 ‘아들(예수)’에게 모든 신성한 전권을 내려준 것처럼, 땅의 ‘아버지’ 목사가 ‘아들’ 목사에게 안수를 함으로써 반(反)종교적 세습이 신성한 종교적 행위로 전이되는 세탁 과정이 이루어진다.

종교는 외딴섬에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란 순수하게 종교적이기만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종교의 구성원은 정치·경제·교육·문화 등 한 사회를 이루는 모든 영역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종교는 그 종교가 위치한 사회의 축소판이다. 한 교회의 세습이라는 미시적 정황을 그 세습을 가능하게 하는 거시적 정황과 연계해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세습 사건의 키워드는 권력 욕망, 비판적 사유의 부재, 물음표의 박탈, 종교의 사유화, 위계적 권위주의,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의 부재 등이다. 거시적 맥락에서 보자면, 한 대형 교회의 세습 사건은 한국 사회가 지닌 뿌리 깊고 다층적인 문제들의 축소판이다.

유대인 철학자였던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인 루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끔찍한 반인륜 범죄에 가담한 아이히만이 매우 평범한 모습임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개념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무수한 평범한 이들, 그 사람들이 거대한 악에 가담하게 되는 것은 바로 비판적 사유의 부재에서 나온다. 그래서 악이란 어떤 악마적 품성을 지닌 존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 비판적 사유의 부재를 통해 창출되고 지속된다.

경제권력, 정치권력, 종교권력이 집중되어 기업화된 대형 교회 부자 세습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부자 목사, 그리고 그 사건에 ‘아멘’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개별적으로는 모두 너무나 평범한 이들일지 모른다. 다만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바로 비판적 사유와 ‘왜’라는 물음표다. 종교에 대한 왜곡된 이해, 위계주의적 가치관, 다층적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순응,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비판적 사유의 부재가 낳은 결과물이다.

종교 사유화와 혐오 정치에 비판적 저항으로 성숙해져야


대형 교회들의 세습은 종교가 ‘구원 클럽’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구원을 담보로 해서 권력의 중심에 선 종교 지도자나 단체는 자신들의 이득과 권력 확장을 ‘신 사랑’으로 옷 입힌다. 정치 현장에서 ‘국가 사랑’이 개별인들의 권력 확장의 욕구를 가장할 때 쓰이는 것과 같다. 신에 대한 순종과 사랑의 이름으로 권력 독점을 신성화하는 종교, 그리고 국가 사랑의 이름으로 권력 남용의 부당 행위를 정당화하는 정치는 권력의 탐욕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는 맹목적 ‘예’만이 아니라, 비판적 ‘아니요’들을 통해서 성숙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종교는 ‘아멘’만이 아니라, 종교의 사유화와 다양한 혐오 정치에 ‘아니요’라는 비판적 저항을 통해서만 성숙해질 수 있다. 정치와 종교라는 ‘쌍둥이 권력집단’에 대한 비판적 문제 제기가 더욱 긴급하게 요청되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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