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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숫자에 함축된 공론화의 뜻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센터 공동대표(갈등해결학 박사)

홍천뉴스투데이편집국 | 기사입력 2017/11/08 [17:42]

네 개의 숫자에 함축된 공론화의 뜻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센터 공동대표(갈등해결학 박사)

홍천뉴스투데이편집국 | 입력 : 2017/11/08 [17:42]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국가적 차원의 큰 실험이었다. 초점은 두가지였다. 첫째, 공사 중단 여부에 대해 결론을 도출하는 일이다. 정부로서도 고민스러운 문제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하려 한 것이다.

둘째, 공론화라는 절차다. 이런 갈등 사안에 대해 우리 사회가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를 형성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성공할 경우 다른 갈등 사안에도 적용하기 위한 일종의 시범사업(Pilot Project) 성격이 짙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만의 해법이 아니라 공론화에 의한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시키면서 사회적 갈등 사안의 해결 모델로 만들어 갈 것을 당부드린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론화 작업은 국민적 관심 속에 3개월간 열띠게, 숨가쁘게 진행된 끝에 지난 10월 20일 막을 내렸다. 이번 공론화 결과의 요체와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다음 네 가지 숫자다.

59.5%.
공론화의 핵심 의제인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에 대해 ‘재개’를 택한 시민참여단의 비율이다. ‘중단’을 택한 비율(40.5%)과 19.0%p 차이로 표본오차( ±3.6%p) 범위를 훌쩍 넘기는 수치다.

당초 일반 여론조사에서는 공사 중단과 재개가 엇비슷한 분포를 보이는 추세였다. 그로 인해 공론화 기간 내내 우려가 컸었다.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 노력을 들여 공론화를 추진했는데 어떤 결론도 없이 애매하게 끝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로 그런 우려를 걷어내며 정부의 고민에 뚜렷한 답을 제시해주었다.    

53.2%. 향후 원전정책의 방향에 대해 ‘원자력발전 축소’를 택한 시민참여단의 비율이다. 원자력발전 유지(35.5%)나 확대(9.7%)에 비해 현격히 높은 수치다. 언뜻 앞의 결과와 모순돼 보이나 현안 이슈와 중장기 정책방향을 구분한 사려깊은 숙의의 산물인 셈이다. 이미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원전 공사는 마무리하되, 장기적인 정책은 에너지전환의 길로 가라는 주문인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를 택한 시민참여단 중 3분의 1(32.2%)이 정책 방향에서는 ‘원전 축소’를 지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원전을 놓고 대립하는 양측 사이에서 이들이 일종의 ‘균형추’ 역할을 한 셈이다. 사안의 본질적 이슈에 대한 이같은 결과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공론화 과정’이란 절차적 측면이다. 이번 공론화 실험이 진정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두가지 있다.

471명. 전국의 시민참여단 후보군 500명 중에 공론화의 핵심절차인 공론조사 합숙현장에 나타난 숫자다. 이들은 단 한명도 도중하차 없이 2박 3일 숙의과정을 완주했다. 당초 조사기관에서는 350명(참여율 70%) 정도 참석할 것으로 내다봤었다.

그런데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94.2%에 달하는 놀라운 참여율을 보인 것이다. 우려했던 대표성 시비도 그 덕분에 벌어지지 않게 되었다. 나라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구한 의병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순간이었다.

93.2%. 최종 조사결과가 본인 의견과 다르더라도 존중하겠다고 응답한 시민참여단의 비율이다.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덕목인 열린 자세의 표상이자 우리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징표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존중할 수 있을 정도로 그에 이르는 과정(공론화)이 공정하고 충실하게 이뤄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네가지 핵심 지표로 볼 때 이번 사회적 실험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계와 문제점도 적지 않았다.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되는 것은 공약 이행문제에 관해서다. 신고리 5·6호기 관련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그대로 이행될 것으로 기대했던 환경단체와 밀양 주민들은 이번 공론화 결과에 충격과 좌절감이 대단히 큰 상태다.

선거과정의 공약이 늘 100% 이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대한 변경이 불가피할 경우 적어도 관련 당사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실험의 성공에 힘입어 앞으로 유사한 시도가 부쩍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시민참여와 숙의민주주의적 접근법이 확산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무슨 유행처럼 번지는 식은 곤란하다. 적용과정에서 세심하게 주의해야 할 점도 많다. 이번 공론화의 경우도 냉철히 성찰해봐야 할 대목이 없지 않았다. 향후 확산-활용 과정에서 감안해야 할 중요한 점과 과제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안의 성격이 공론화에 적합한가를 따져보고 가려서 적용해야 한다. 특히 직접 당사자그룹이 뚜렷하게 존재하는 갈등사안은 공론화에 의한 결정 방식보다는 당사자들간 협의에 의한 문제해결과 합의형성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경우도 이 점에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둘째, 공론화 과정이 원만하게 진행되도록 하려면 사전에 주요 의제와 공론화의 범위 등을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관련 당사자그룹 간에 승패를 가르는 방식은 지양하도록 해야 한다. 이번 공론화의 경우 기본 설정과정에서 이에 대한 고려가 미흡했던 탓에 공론화위는 처음부터 끝까지 심대한 애로를 겪어야 했다. 

셋째, 우선 공론화 관련 법적·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공론화는 중대한 사안을 사실상 ‘결정’하는 절차인데도 법적 근거가 없이 추진돼 야당과 언론의 비판에 흔들리고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앞으로의 성공적 확산에 필수적인 가장 중요한 요소는 따로 있다. 위와 같은 숱한 한계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론화가 성공리에 매듭지어지게 된 결정적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시민들의 사명감과 열린 자세, 공론화위의 열정과 끈기있는 노력, 그리고 모두가 어우러져 빚어낸 참다운 지혜가 아닐까 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역설했다.   

“갈수록 빈발하는 대형 갈등과제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는 지혜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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