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신봉리 사지 도괴된 고려 석탑 ‘문화재급’ 전망
장중하고 미려한 3층 석탑… 복원 발굴조사 시급해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4/04/26 [20:45]
한국역사유적연구원 답사반 현지 조사 성과 장중하고 미려한 3층 석탑… 복원 발굴조사 시급해
© 고려 초기 석탑부재가 뒹굴어 방치 ... 홍천군 영귀미면 신봉리 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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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영귀미면 신봉리 절터 유적에 도괴돼 있는 석탑은 3층으로 층급받침은 3단이며 고려시대의 소작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역사유적연구원 사지 답사반(반장 배정임)이 지난 20일 현지를 조사한 후 내린 결론으로 주변에 많은 석탑의 부재가 뒹굴고 있어 복원할 경우 문화재급으로 전망했다.
신봉리 사지는 홍천군의 명찰 수타사(壽陀寺)의 전신인 일월사(日月寺)로 전해지고 있으며 답사반은 문화재적 가치와 사지의 규모를 밝히기 위한 발굴조사가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 고려시대 승려 정원이 쓴 수타사 '사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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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만들어진 수타사의 역사를 기록한 ‘홍천현동공작산수타사사적(洪川縣東孔雀山水墮寺事蹟)’과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寺史蹟)’ 등에 따르면 신라시대 원효(元曉)가 우적산(牛跡山)에 일월사를 창건했으며, 조선 1569(선조 2)년에 현 위치인 공작산으로 옮겨 지으면서 수타사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전한다.
고려시대 승려 정원이 쓴 '사적기(1861년)'에도 “통일신라 성덕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했으며 고려 광종 때 중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때에는 네 차례의 중건이 있었으며, 산세가 아름다워 일월사(日月寺)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고려 때까지는 선수행(禪修行)의 도량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임진왜란 때의 병화로 불타버렸다.
그 뒤 법륜(法倫) 등의 노력으로 지금의 수타사로 이건해 대웅전 등 일부 건물이 복원됐다. 이후에도 열 차례의 중건·중수가 있었으며 범종 등을 안치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 답사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역사유적연구원 이재준 고문은 “비록 탑이 도괴돼 있지만 현장에서 확인되는 부재를 조사한 결과 기단면석과 옥신석, 옥개석 등 부재가 대부분 원상태로 남아있어 복원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석탑은 일반형으로 여러 매로 이루진 기단과 초층 옥개석의 경우도 2매로 결구 돼 있는 크고 장중한 석탑”이라며 “현재 수타사 경내에 있는 고려시대 3층 석탑보다 먼저 조성됐으며 더 크고 잘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현장에는 낙엽이 쌓여 와편이나 토기 등 시대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수집이 어렵지만 향후 발굴을 하면 사지의 영역이 잘 남아있어 역사와 규모 등을 밝혀줄 유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한국역사유적연구원 답사반, 홍천역사유적연구원과 홍천문화원 홍천학연구소 일행의 답사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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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답사는 한국역사유적연구원 답사반을 비롯해 이병규 홍천역사유적연구원 회장, 용석준 홍천학연구소장과 김동성․백승호 연구위원이 함께했다.
용석준 홍천문화원 홍천학연구소장은 "신봉사지는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초기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고려초기 철마가 발견됐는데 현재 석탑이 도괴된 채 방치되고 있다"며 "이전에 연구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으나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유물의 분실 또는 훼손이 우려돼 조속한 조사발굴과 보존 대책마련이 절실하다" 말했다.
이날 조사단이 실측한 탑재는 초층 옥신석 한 면의 폭이 95x95㎝, 높이 85㎝로 사면에 우주(隅柱, 기둥모양)가 모각돼 있으며, 초층 옥개석(2매로 결구)은 한 면의 폭이 130㎝, 높이 45㎝로, 2층 옥개석은 160㎝x155㎝, 높이 40㎝로 파악됐다.
출처 : 천지일보(https://www.newsc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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