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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복 작가 에세이 26 ] 물질에 빠진 인간들 “먹다 • 막다 • 죽다”

먹다 • 막다 • 죽다

용석준 기자 | 기사입력 2023/04/08 [22:21]

[홍진복 작가 에세이 26 ] 물질에 빠진 인간들 “먹다 • 막다 • 죽다”

먹다 • 막다 • 죽다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3/04/08 [22:21]



먹다 • 막다 • 죽다

 

새해가 되면 설날 떡국을 먹는다.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고 한다. 노인들 중에는 나이를 먹기 싫다고 떡국을 먹지 않겠다고 농담을 하는 노인도 있다. 떡국을 많이 먹으면 그만큼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뜻이고 늙었다는 의미다.

 

제주도 시골집을 가보면 집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게 입구에 긴 막대기를 걸쳐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막아놓았다는 뜻의 '막다' 를 제주도의 방언으로 '먹다' 라고 한다.

 

귀가 잘 안들릴 때 귀가 먹었다고 하거나 귀가 먹먹하다고 할 때 또는 음식에 체했을 때 가슴이 먹먹하다고 할 때도 먹먹하다는 막혔다는 뜻이다. 전화기가 고장이 날 때 전화가 먹통이라고 한다. 전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시 전화가 막혔다는 뜻이다.

 

사망을 뜻하는 '죽다' 는 풀죽다 또는 물체가 가라앉거나 뭉툭한 상태를 가리키는데 이때 '죽다'는 막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음식 따위를 먹는다 할 때 '먹다' 와 길 통로 따위를 통하지 못하게 '막다' 는 그 어원이 구멍에서 온 말로 의미가 같다. 나아가 '죽다' 도 '막다' 와 같은 뜻임을 생각하면 ‘먹다’와 ‘막다’ ‘죽다’는 같은 의미를 지닌 말이다.

 

어릴 적 할머니가 담배를 피우기(먹다) 전에 긴 담배대 속에 가느다란 볏집을 넣어 그 안에 끼인 담배진을 빼내는 것을 많이 보았다. 먹기 위해서는 막힌 것을 뚫어야 먹을 수 있다. 많이 먹으면 막힌다는 뜻이고 막히면 죽는다는 뜻이니 많이 먹는 건 곧 죽음이라는 말이다.

 

어릴 적 냇가에서 동네 아이들과 위쪽에서는 보(洑)를 막아 물을 많이 모아 두고 아랫쪽에서는 돌과 모래, 나무가지와 흙으로 튼튼하게 여러 가지 시설을 만들어 놓으면 위쪽에 만들어놓은 보를 터트려서 물살이 센물줄기가 한꺼번에 내려오면서 애써 만들어놓은 시설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놀이를 한 적이 있다. 뚫고 막는 힘의 대결놀이다. 막는 것을 막지 못하면 지게 되는 것이고 죽는 셈이다.

 

어느 날 아파트에 119구조대가 왔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 얘기로는 어린 아기의 목구멍에 구슬이 넘어가 구조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잘못 먹으면 막히고 막히면 숨을 못 쉬게 되어 결국은 죽게 된다. 먹다와 막다와 죽다는 같은 의미로 많이 먹으면 막히고 막히면 죽는다는 것을 일깨우는 말이다.

 

이런 말을 함축하면 

통즉불통 불통즉통 通卽不痛 不通卽痛(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이 아닐까 생각된다

 

쾌락 끝엔 고통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물질은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했다. 보이는 것은 모두 空이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너무 먹고 입는 일에 힘쓰지 마라’고 하셨다. 플라톤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짜며 이데아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 양자물리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 있다. 원자는 빈 공간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부처님의 色卽是空이 말을 확인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옛 성인들이나 현대과학자들 모두 지금우리가 보는 이세상(물질)은 실제로는 가짜라는 것이다. 즉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실제가 아니다. 우리는 실제가 아닌 것만 보고 있다. 실제가 아닌 것을 보고 실제를 보았다고 착각하고 있다. 착각인지 착각이 아닌지 조차도 모른다. 그런데도 현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물질과 향락에 빠져 살고 있는듯해 안쓰럽다.

 

당연히 물질은 현실적으로 기본생활을 함에 있어 어느정도 필요하겠지만 그 이상의 물질에 빠져 나오지 못함으로써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젊어서는 먹고살기 위해서는 물질은 필요하겠지만 70을 넘는 노인들의 대화를 보면 아직도 물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볼 때 안타깝다. 우리 아들이 평수가 넓은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갔다거나 우리아들도 아파트가 두 채다 하는 등의 얘기를 들으면 답답하기만 하다.

 

고위공직자 재산신고현황을 보면 재산이 100억이 넘는 사람이 많고 대부분이 강남에 집 한 채씩은 다가지고 있다. 재산이 많은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이 이렇게 많으니 돈 없는 서민들 생활의 어려움을 그들이 과연 알겠는가 하는 점이다. 무엇을 해서 그 많은 돈을 벌었느냐는 관심이 없다. 그 돈을 자기 가족한테만 쓰느냐 아니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 쓰느냐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요즘 강남대로변에서 한 여성을 자동차로 납치해서 사흘 만에 아산에서 시체로 발견되어 범인들이 체포된 사건이 화제가 되고 있다. 납치살인동기가 가상화폐로 손해를 보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보고 있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 사건도 결국에는 돈의 문제요. 물질중시사고에서 나온 사건이어서 더욱 마음이 씁쓸하다. 금은방을 터는 사건들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이 모두가 물질에 빠져 범죄라는 사실보다 먹고사는데 급급한 나머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 밤거리를 보라.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가는 게 정상인데 젊은이들이 낮에는 방안에서 잠이나 자다가 또는 컴퓨터나 하다가 해가 지면 밖으로 나온다. 휘황찬란한 네온불빛에 흘러나온 음악에 젊은이들은 들떠있고 어른들은 술집에서 향락과 쾌락에 빠져 늦은 시간인데도 집에 들어갈 줄을 모른다. 모두가 물질과 향락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만큼 우리 모두가 정신적인 면은 메말라 있다.

 

食藥同源이라 했다. 음식도 약과 근원이 같으므로 약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않은 것처럼 밥도 맛이 먹으면 좋지 않다는 뜻이다. 많이 먹는다는 것은 막힌다는 뜻이요 그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욕심내고 많이 먹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유의지와 책임

 

도스토옙스키의 '罪와 罰' 에서 죄는 용서 받지만 벌은 그대로 있다. 벌은 습(習)이라고 하는데 잠재의식으로 남아 있다. 잠재의식이 자유의지다. 이는 유전자에 남아있다. 강도에게 죄를 용서해줘도 또 강도는 강도짓을 언젠가는 할 수 있다. 엄마가 아이가 학교에서 잘못을 해서 때리면서 울고 있다. 죄는 이미 용서를 한 것이지만 왜 때리면서 울고 있을까? 죄는 용서했지만 또 언제 그 버릇이 나올지 모르니까 안타까워 우는 거다.

 

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아주 작은 티끌하나가 사방을 포함한다) 아주 작은 티끌 하나에도 우주가 있다는 뜻이다. 자유의지는 연필이든 돌이든 풀이든 다 있다. 범신론 같지만 모든 게 우주물질이고 우주에너지다. 우리인간도 우주의 세포와 같이 연결되어 있다.

 

내 몸 안에 있는 100조개의 세포들도 내 맘대로 움직이지를 않는다. 구토나 복통이 내가 원해서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말에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다. 자식도 크면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얘기다. 자식의 자유의지는 부모도 터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神)도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만큼은 건드리지 않는다. 아무리 인간이 말을 듣지 않고 지구환경을 파괴해도 화산이나 지진 태풍 등으로 인간을 죽일 수는 있어도 한 개인의 자유의지는 어쩔 수 없다.

 

가을이 되면 하늘의 수소나 산소량이 줄어들고 질소가 많아진다. 식물은 빨리 열매를 맺고 나뭇잎을 죽여서 떨어뜨려 영양분을 체내에 줄여야 함을 안다. 식물은 온도계가 있어 땅속의 온도가 올라가면 스스로 싹을 틔운다. 모두가 자유의지에 의해서 일어난다. 이것은 하늘도 막지 못한다. 자연의 구름도 자유의지에 따라 맑은 하늘에 갑자기 구름을 만들고 비를 오게 한다. 하늘도 이를 막을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개미도 땅속에서 나와 A와 B 길 중에서 택하는 것은 개미의 자유의지에 따라 가는 방향이 다르다. A로 간 경우 사람의 발자국에 밟혀 죽을 수도 있다. 반면 B의 길을 택한 경우 좋은 먹잇감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개미의 자유의지에 따른 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개미가 져야한다.

 

이처럼 우리 인간도 살면서 매일 무엇을 먹을까? 어디를 갈까? 누구를 만날까? 교통편은 무엇으로 갈까? 이같이 수많은 선택지를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하고 살아간다. 어떤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 잘 선택했다고 하는 경우도 있을테고 어떤 경우는 잘못선택해 후회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인생은 運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지만 자유의지에 따라 인생은 달라질 수 있다. 어쨌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기가 져야 한다.

 

먹는 문제를 가지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맛있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자제를 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간식이나 야식을 즐겨 먹거나 고기나 술을 매일 많은 양을 먹고 운동이라고는 게을러서 하지 않고 이런 생활이 계속될 때 혈관이 막히고 고혈압이든 당뇨 병에 걸리면 자기가 그동안 잘못된 식습관에 대해서는 돌아보지는 않고 왜 나에게는 이런 병이 찾아 왔냐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을 하고는 왜 남을 탓하는가?

 

쾌락의 끝에는 고통이 따른다. 쾌락은 남의 고통으로 내가 행복한 것이다. 희락은 나의 고통으로 남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즉 쾌락은 나의 돈으로 남을 위해 쓸 돈을 쓰지 않고 내가 다 쓰는 것으로 짧은 쾌락을 보내는 것이고 희락은 나의 돈이지만 내가 적게 쓰고 남을 위해 쓰는 것이므로 나의 행복이 잔잔하지만 대신 남이 행복한 것이다.

 

99세를 좋은 일만하고 살던 사람이 100세에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은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 한 번의 살인이라도 돌이킬 수가 없듯이 일단 과식 폭식 야식 등으로 한번 몸속에서 나쁜 호르몬이 나오면 되돌릴 수가 없다.

 

자유의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우주 섭리는 事必歸正이다. 因果應報다. 자신이 뿌린 씨는 자기가 거둔다. 나무(木)는 토양(土)과 물(水), 불(火)의 도움을 받아 열매를 맺는다. 금(金)은 나무 가지를 잘라주거나 하는 일을 도와줄 뿐이다. 나무는 열심히 일해서 열매를 맺어도 먹지 않고 사람이나 새 같은 짐승이 먹는다. 인간에게도 몸속에 화, 수, 목, 토의 기운이 들어 있다. 인간도 식물처럼 자유의지가 있다. 하지만 인간은 허상인 물질을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소유하려 한다.

 

인간이 윤회를 하는 이유는 자유의지를 좋게 훈련을 받도록 지구라는 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지구에는 善한 사람을 남겨두고 惡한 사람은 아귀나 축생 아수라 같은 것으로 퇴출시킨다. 아주 좋은 선한사람만 하늘에서 데려간다.

 

인간은 지구에 태어나는 환생이 아니라 그리고 지구보다 좋은 다른 별에 태어나는 상생이 아니라 천국에 태어나는 왕생이 최종 목적지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지 않았다면 樂이 없기 때문에 준 것이지만 자유의지를 잘 써야 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물질과 향락에 빠져 쾌락으로 나날을 보내고 물질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욕하고 화를 많이 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병의 원인되는 貪嗔痴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는 하늘에서 터치하지 않지만 개인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라 하지만 없는 사람을 위해서 나눠 쓰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야 복을 받고 윤회를 통해서 다음에 태어날 때는 좋은 인물에 더 부잣집에 태어난다. 하지만 자유의지라 해서 없는 사람을 ‘나 몰라라’ 하고 내가 성실히 번 돈인데 하고 흥청망청 쓰고 많이 먹으면 혈관이 막히고 순환이 안 되어 병이 오고 그 병은 業報가 되어 자식에게 유전된다. 유전되는 게 벌이고 잠재의식이다. 다음 輪廻에는 거지로 태어나 돈 없는 어려움을 겪게 되거나 짐승으로 퇴출된다는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홍 진 복 

(전)서울신사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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