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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복 작가 에세이 25] 꽃을 노래하다

용석준 기자 | 기사입력 2023/04/03 [16:33]

[홍진복 작가 에세이 25] 꽃을 노래하다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3/04/03 [16:33]



꽃이 갖는 의미

 

어제까지 만해도 꽃망울이 터질듯하더니 아침에 자고나니 마치 눈꽃이 핀 듯 벗꽃이 활짝 폈다.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꽃에 관련한 글을 쓰려니 '고향의 봄'이 떠오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싫지 않은 정감이 가는 국민노래다. 정감이 가는 것은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꽃이 있어 그렇지 않나 생각이 든다. 꽃은 아름다운 모양, 매혹적인 향기, 고운 빛깔로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봄과 희망을 상징한다.

 

꽃은 生의 전 과정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종족 번식을 위해 준비를 왕성하게 하는 시기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생명체가 어느 정도 성숙하면 이성을 만나 자기 종자를 번식하여 종족을 보존하려는 다시 말해 열매를 맺기 위한 본능적인 활동을 준비하는 시기다.

 

모든 생명체는 싹이 자라고 뿌리와 잎과 줄기가 어느 정도 성장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성숙한 시기에 꽃을 피운다. 그러므로 꽃은 생의 전 과정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왕성한 시기다. 모든 생명체는 이 시기를 잘 맞아야 좋은 종자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봄에 피는 꽃이든 여름에 피는 꽃이든 가을에 피는 꽃이든 안개꽃처럼 작든 백합처럼 크든. 낱개로 피든 겹으로 피든, 여왕대접을 받는 장미나 호박꽃도 꽃이냐고 대접도 못 받는 호박꽃이든, 나름대로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주고 힘든 삶에 위로를 주니 고마운 꽃이다.

 

남녀가 사랑을 고백할 때 꽃을 주고 입학과 졸업을 할 때도 꽃을 주고 생일이나 기념일 때도 꽃을 준다. 그리고 상을 받을 때도 꽃을 주며 축하를 한다.

 

사랑을 고백할 때는 장미꽃을 준다. 어버이날에는 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 꽃을 달아주고 일반적인 축하를 할 때는 여러 종류의 꽃을 묶은 꽃다발을 준다. 장례식장은 국화로 장식되고 참사현장에는 국화꽃이 많이 놓여 있다. 꽃은 우리 생활에서 기쁨이며 사랑이며 아름다움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픔과 슬픔을 위로하는 의미도 있다.

 



국가마다 國花가 있다.

 

우리나라 國花는 무궁화다. 國花는 그 나라 국민성을 나타내는 꽃이라 할 수 있다. 무궁화는 우리민족성의 인내심을 드러내듯이 초겨울까지 피고진다. 무궁화는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시설이나 물건에는 반드시 그려져 있다. 대통령과 國歌는 무궁화와 함께 나라를 상징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충주 탄금대 권태응의 '감자꽃노래비' 가 있다. 

 

자주꽃핀건 자주감자 

파보나마나 자주감자 

하얀꽃핀건 하얀감자 

파보나마나 하얀감자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강요된 창씨개명에 반대하는 은유로 쓰여진 글이지만 꽃은 내면을 들어내는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매화는 꽃봉오리일 때가 예쁘고 벗꽃은 만개했을 때 아름답다. 그래서 사람들은 벗꽃보다는 매화를 좋아 한다. 술집에 가면 방 이름에 매실은 있어도 벗실은 없다. 기생이름도 매화아가씨는 있어도 벗아가씨는 없다. 춘향이의 모친 이름도 월매가 아닌가?

 

‘꽃집의 아가씨는 예쁘다’는 노래도 있다. 꽃이 사람의 마음을 예쁘게 하여 외모까지 아름답게 한다는 의미다. 요즘 꽃배달 광고가 많이 나온다. 꽃을 배달해주고 먹고사는 사람도 있다.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가보면 좁은 통로에 길게 늘어선 화한이 그 집안의 사회적 위상을 암시하는 인상을 준다.

 

꽃에 관한 꿈을 꾸는 경우가 있다. 일단 꽃에 관한 꿈은 일이든 사랑이든 상황이 좋아지는 것을 암시한다. 꽃을 먹거나 받았거나 하는 것은 승진이나 사랑이 잘 풀린다고 봐야 한다. 꽃다발을 받으면 축하받을 일이 있다는 뜻이고 꽃이 시들거나 꽃을 밟거나 하는 것은 일의 실패나 사망 등 좋은 꿈은 아니다. 꽃을 꺾어 집에 가지고 돌아오는 꿈은 예쁜 딸을 갖는 태몽 꿈일 수도 있다. 꽃을 꺾는 것은 새로운 일을 시작함을 뜻한다.

 

꽃에 대한 아픈 전설도 있다.

 

옛날 바닷가에 이무기라는 괴물이 있었다. 바닷가 사람들은 무사안일을 비는 행사로 이 괴물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쳤는데 제물로 바쳐질 처녀를 사랑하던 청년이 자신이 괴물과 싸워 이기고 오겠다고 하며 이기고 돌아올 땐 배에다 흰 깃발을 달고 올 것이며 죽으면 배에 붉은 깃발을 달고 올 것이라 하며 떠났다.

 

배가 돌아오자 배에는 붉은 깃발이 꽂혀있었다. 처녀는 청년이 죽은 줄 알고 100일 동안 살아오기를 바라고 기도를 하다가 죽었다. 동네사람들이 바닷가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는데 다음해에 무덤에서 붉게 핀 꽃이 피었다 한다. 사람들은 처녀가 한이 되어 꽃을 피로 물들게 한 것으로 여겨 백일홍이라 이름 하였다 한다. 

 



자연의 꽃

 

어릴 적 밭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토끼풀로 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에 끼워주고 기다랗게 묶어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어 주시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동네 애들과 뒷동산에 올라가 무덤에 핀 할미꽃을 꺾어 빈 깡통에 물을 담아 마루에 갖다 놓고 좋아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간 듯 하다.

 

여름철에는 저녁때면 봉숭아를 찧어 백반가루를 섞어 손톱위에 놓고 실로 잘 묶어두었다가 아침에 풀면 손톱이 빨갛게 곱게 물이 든다. 이때는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가리지 않고 엄마나 누나가 있으면 해주었다.

 

기억에 남는 벚꽃 축제로는 군항제가 가장 머리 속에 남아 있다. 구리, 일산 꽃축제. 서울어린이대공원, 여의도 벗꽃축제, 순천만 국가정원 등을 구경한 일도 생각난다. 청사초롱의 화려한 조명불빛 아래 만개한 벗꽃길을 걸으며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 떡볶이와 오뎅을 사먹는 즐거움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좋아 했다. 산과 들에 피어나는 수많은 꽃들이 제각기 아름다움을 자랑이나 하듯이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뿜어내며 피어난다.

 

꽃 중에는 봉숭아, 채송화, 분꽃, 맨드라미 같은 집안 뜨락에 피어 어린시절 많이 보고 자라 익숙한 꽃도 있지만 글라디올러스, 네델란드산 튜립, 멕시코산 다알리아, 유럽산 히야신스같은 외국서 들어온 꽃도 있다. 국민학교 시절 외국어로 된 이름을 외우기도 힘들었고 어느 꽃인지 구분하기도 힘들었지만 이런 꽃도 이제는 우리 꽃이 되어버렸다.

 

이른 봄에 산수유, 생강나무, 매화, 민들레, 제비꽃,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나면 모내기 때가 되면 아카사아 꽃이 만발한다. 이꽃이 질때면 밤꽃이 또한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길가의 들국화가 이슬을 머금고 길가는 사람의 시선을 멈추게 한다.

 

  © 할미꽃



꽃이름도 재미있다.

 

할머니처럼 등이 굽었다 해서 할미꽃, 키가 작다고 앉은뱅이 꽃, 토끼가 잘 먹는다고 토끼풀, 강아지꼬리처럼 생겼다고 강아지풀, 갓 태어난 아기의 노란똥같다고 애기똥풀꽃, 나무에 핀 연꽃이라 하여 목련, 닭장근처에 핀다고 닭장풀 또는 달개비풀, 접시모양 같다고 접시꽃, 제비가 돌아올 때 핀다고 제비꽃, 밤에 달을 맞이하여 핀다고 달맞이꽂, 양지바른 곳에 핀다고 양지꽃, 돌아보라고 도라지꽃, 나팔처럼 생겼다하여 나팔꽃, 하늘 본다고 하늘나리, 땅을 본다고 땅나리라 한다. 해를 보고 자란다고 해바라기라 한다.

 

조팝나무와 이팝나는 꽃이 비슷한데 이성계가 이씨왕조가 되면서 백성을 굶지 않도록 쌀밥을 준다하여 이팝이 하얀쌀(밥알)을 닮았다고 이팝나무라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진달래는 후조인 두견새가 울 때 핀다고 하여 두견화라고 하며, 한편 먹을 수 있다고 하여 참꽃이라 한다. 어릴 적 동산에 핀 철쭉꽃잎을 한줌 따 먹으면 입술이 시퍼렇게 물이 든다. 철쭉은 독이 있어 먹을 수 없는 꽃이라 강원도에서는 개꽃이라 한다. 산철쭉은 꽃필 때 온 산을 빨갛게 물들인다 하여 영산홍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꽃의 빛깔이 연하고 진한 정도에 따라 연달래, 진달래, 난달래라고 한다.

 

진달래는 눈이 채 녹지 않은 이른 봄 바위틈에서 임금을 향해 북쪽을 바라보고 피는 충성심이 강하다하여 정9품의 벼슬을 주었다. 속리산 정이품 소나무와 함께 식물이 벼슬을 받은 건 진달래밖에 없다.

 

'꽃타령' 노래에 묘사되는 꽃도 살펴보자.

 

꽃을사시요 꽃을사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에 꽃이로구나 

꽃바구니 둘러매고 꽃팔러 나왔소 

불근꽃, 파란꽃, 노르고도 하얀꽃, 남색 자색에 연분홍, 울굿불굿 빛난꽃, 아롱다롱에 고운꽃 

(중간생략) 

봉올봉올 맻인 꽃, 숭얼숭얼 달린 꽃, 벙실벙실 웃는 꽃, 활짝 피고 다 핀 꽃, 벌모아 노래한꽃, 봄나비안자 춤춘꽃 (이하생략)

 

우리 조상들의 꽃에 대한 묘사력은 대단한 것 같다

 

인생의 꽃

 

꽃은 그 생애 중에서 가장화려한 시기를 말하므로 꽃은 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직업에도 꿈이 있다. 옛날에는 장인정신이 있었다. 요즘에도 그 분야의 정신과 기술을 계승하기위해 인간문화재로 지정하고 나라에서는 예산까지 지원하고 있다. 특히 목수는 대목수가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정치인들은 대통령이 되는 게 꿈일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인의 꽃은 대통령인 셈이다. 공무원들의 꽃은 사무관이 되는 게 꿈이요 꽃이다. 교사의 꽃은 교장이다. 군인은 스타가 꽃이다. 경찰은 경찰서장이 되는 총경이 꽃이다.

 

운동경기에도 꽃이 있다. 운동회에서 가장 보기를 원하고 응원이 치열하게 되는 경기는 청백계주다. 육상의 꽃은 마라톤이다. 어떤 이는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 사람도 있다. 권투에서는 꽃이 KO다. 야구경기에서는 홈런이 꽃이고 축구에서는 당연히 골인이 꽃이다.

 



그럼 인생의 꽃은 무엇일까?

 

나는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청춘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이 시기는 인간으로 태어나 성인이 되어 남녀가 사랑으로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가족을 꾸리고 부모가 되어 양육과 교육을 하면서 가정과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청춘의 꿈을 이루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 중에서는 당연히 여자는 꽃이요 남자는 벌과 나비다. 여자를 비하 하려는 게 아니고 생리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꽃이 벌과 나비가 많이 오라고 고운 빛깔과 향기로 유혹한다. 그래서 꽃은 아름다운 색깔과 매혹적인향기를 내기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좋은 남자를 만나야 좋은 씨를 받을 수 있어 좋은 자식을 낳으려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본능이다. 자연에서 꽃이 피듯이 인생에도 꽃 피는 시기가 있다. 꽃을 크게 피우는 사람, 작게 피우는 사람, 없는 것처럼 보내는 사람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누구나 꽃 피는 시기를 맞이하지만, 사람마다 다른 것은 개인의 노력이나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노력하면 기대한 이상의 성과를 얻어 잘 될 때가 꽃 피는 시기다. 똑같은 일을 해도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다. 하루도 잘될 때가 있고, 일년도 잘될 때가 있으며, 십년도 잘될 때가 있고, 인생 전체도 잘될 때가 있다. 사주를 보는 사람이나 명리학을 하는 사람은 자기의 출생 연월일시를 알면 잘될 때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잘 되는 시기, 성공하는 시기는 자기가 가지고 있다.

 

우리의 삶에는 노력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강한 힘이 작용하는데 이를 운(運)이라고 한다. 운(運)의 흐름은 밤과 낮이 맞물려 순환하듯이 상승하는 운과 하락하는 운이 맞물려 순환한다. 오르락내리락한다. 똑같은 일을 해도 운이 상승할 때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지만, 운이 하락할 때는 기대한 성과를 얻지 못한다. 일의 전개과정과 결과는 운의 흐름인 운 때를 따라간다.

 

인생사는 한 치 앞도 모른다. 그러므로 불교의 九思道처럼 매사를 신중하게 충성스럽게 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한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좋은 인생의 꽃은 역시 아름답고 향기 나는 좋은 꽃이다. 이런 아름답고 향기 나는 꽃을 피우기 위해 햇빛과 좋은 공기와 바람을 쏘이며 성장하도록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바람 불면 넘어질세라 잘 보살펴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 좋은 짝을 만나 좋은 후손을 낳는 게 좋은 인생의 꽃이 아닌가 싶다.

 

 홍 진 복

 (전)서울신사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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