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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날을 아시나요?

김동성 기자 | 기사입력 2022/07/24 [23:15]

동학의 날을 아시나요?

김동성 기자 | 입력 : 2022/07/24 [23:15]

 

[SBS 방송국 드라마 ‘녹두꽃’ 포스터]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는 1894년 5월 11일 동학농민군이 전북 정읍 황토현에서 관군과 처음 싸워 크게 이긴 황토현전승일을 법정기념일로 선정했다.

 

문체부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선정위원회(위원장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서 그동안 4개 지자체가 추천한 지역 기념일을 대상으로 공청회 등을 거치며 역사성, 상징성, 지역참여도 등의 선정 기준에 따라 적합성을 심사했다고 한다.

 

선정위 쪽은 황토현전승일을 선정한 근거로서, 전봉준·손화중·김개남 등 농민군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군과 격돌해 처음 대승한 날이며, 이날을 계기로 농민군의 혁명 열기가 크게 고양됐고,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에 전개되는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심사 과정에서는 황토현전승일 외에 전북 고창 무장에서 처음 봉기한 무장기포일(4월 25일), 전북 부안 백산에서 4대 강령과 봉기 격문을 발표한 백산대회일(5월 1일), 전북 전주에서 관군과 강화를 맺은 전주화약일(6월 11일)이 후보 날짜로 올라 경합했으나 황토현전승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정읍 동학기념관]

 

 

동학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선정됨에 따라 동학농민혁명 기념행사 및 기념·선양사업도 지자체별 규모에서 벗어나 국가 주관의 대규모 사업으로 치르게 되고, 이에 따라 그동안 각 시·군에서 주관했던 각종 기념·선양사업의 위상도 높아졌다. 동학농민운동 관련 사업은 전라천년 파랑새 공원조성(고창), 백산 동학랜드(부안), 동학농민혁명 역사문화공원(전주), 동학농민혁명 역사 탐방길(정읍) 등이 조성되어 있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부패한 나라를 개혁하고, 외세에 맞서기 위해 일어난 우리 역사 속 최대의 민주혁명으로, 한국 민주화운동의 효시로 불리기도 한다.

 

 

 

[강원도 기념물 제89호로 지정된 인제 갑둔리 동경대전 간행터]

 

 

강원도는 동학과 매우 밀접하다. 동학이 많은 탄압 속에서도 성장하고 동학농민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주역이 되기까지 강원도는 동학과 함께했다.

최시형과 유족들이 관군의 추적으로 어려움이 처했을 때 강원도는 피난처 역할을 해 줬고, 최시형은 오랜 꿈이었던 동경대전까지 인제에서 간행할 수 있었다.[최시형은 1880년 5월 9일 인제 갑둔리 김현수의 집에 각판소를 설치, 5월 11일부터 간행작업을 시작해 6월 14일‘동경대전’100권을 완성 전국으로 배포했다]

 

 

[천도교 사적지 - 영월군 중동면 직동리]

 

 

최제우의 제자들이 여러 곳으로 유배됐는데 이경화가 1864년 영월 소밀원으로 오며 강원도에 동학이 알려졌다. 그가 원주 출신 장기서에게 처음 포덕했고 양양, 인제, 정선, 영월, 평창 등지를 다니는 상인들을 통해 영동까지 세력을 확대, 양양과 영월이 1870년대 초 강원도 동학의 거점역할을 했다.

 

 

[원주 송골 최시형 피체지]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뒤인 1898년 4월 6일 관의 눈에 피해 피신해 있던 최시형이 관군에게 체포된 곳이 원주 송골 최시형 피체지이다. 최시형이 피체된 곳이 원진녀의 집이며, 2008년에는 그동안 빈 터만 남아 있던 곳에 생가를 복원하여 두었다. 마을 입구의 기념비(1990년 4월 건립)에는 “모든 이웃의 벗 崔보따리선생님을 기리며”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崔 보따리’라는 별호는 최시형이 항상 작은 보따리를 가진 행장으로 방방곡곡을 다니며 민중에게 동학의 가르침을 전하고 그들과 동고동락(同苦同 樂)하였기에 민중들이 그를 부르던 애칭이었다.

 

 

[홍천 서석면 동학농민군 최대 격전지-자작고개]

 

 

홍천에도 상당수의 동학도들이 있었다. 특히 차기석은 농민수탈의 상징이었던 동창을 갑오년 10월 야밤에 습격해 불태우면서 혁명의 서막을 알렸다. 홍천의 동학농민혁명군은 화촌면 장야촌에서 진압군과 처음 접전을 벌였으나 30여명의 희생자를 내고 솔치재를 넘어 서석으로 후퇴했다.

 

서석면 풍암리 자작고개전투는 800여명이 희생된 동학혁명전투 중 가장 참혹한 전투지다. 차기석은 강원도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1000여명을 이끌었다. 이들은 서울로 진격해 최시형의 총기포령에 따라 권문세가를 멸하고자 했으나 자작고개를 넘지 못하고 산화했다.

 

 

[최규백이 잠들었던 항아리]

 

 

홍천 풍암리 자작고개전투시 최도열과 그의 부인은 무참히 살해하는 관군들의 수색에 황급히 피신해야 했던 상황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돌잽이 아기(규백)를 쌀독안에 숨겨두고 뒷산에 피신했다 이틀 뒤 돌아와 보니 그 아기가 무사했고 그 아이가 생존하여 전주최씨 대를 이은 분의 손주가 얼마전에 정년퇴직한 홍천우체국장 최낙인씨이다.

 

홍천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며 너브내역사문화연구회 회원이기도 한 그 분의 강의를 지난 5월 3일 들었다. 동학농민운동은 끝났지만 행여나 역도로 고발되어 유가족이 피해볼까 우려해서 불빛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막아 놓고 제사를 지낸 일, 심지어 자기 성도 바꾸고, 기록도 증거도 없애 버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의 엄연한 역사, 동학농민혁명도 우리의 미래를 바르게 열어가는 교훈의 산실이다. 농민도 관군도 모두 우리의 조상이다. 부패하고 어리석었던 우리 조상의 역사속에서도 우리는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고, 그 교훈을 후손에 전수하여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살아있는 역사를 이어가는 우리의 마땅한 일일 것이다.

 

 

[서석면 풍암리 동학농민운동 전적비]

 

 

지금 서석면 자작고개는 강원도기념물 제25호로 관리되는 동학혁명군 위령탑이 설치되어 있다. 오늘 동학의 날을 맞이하며 자작고개 일대를 홍천군민 모두가 하나 되어 국가사적지로 승격시키고 동학기념관을 설립하여 풍암리 동학혁명 농민군 전투의 역사적 가치를 잊지않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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