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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샘의 edu사랑 이야기 466. 간호 선교사 엘리자베스 쉐핑 이야기

김동성 기자 | 기사입력 2024/07/05 [09:57]

김샘의 edu사랑 이야기 466. 간호 선교사 엘리자베스 쉐핑 이야기

김동성 기자 | 입력 : 2024/07/05 [09:57]

  

 

1921년 한 여인이 말을 타고 전라도 일대를 한 달여간 순회한 뒤 이런 글을 남겼다.

 

“이번에 만난 여성 오백 명 중 이름 있는 사람은 열 명뿐입니다. 조선 여성들은 큰년이, 작은년이, 개똥 어멈으로 불립니다.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글을 가르쳐 주는 것이 저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간호 선교사로 조선에 발을 내디딘 엘리자베스 쉐핑(11880 ~ 1934)의 기록이다.

 

가난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전염병으로 병자가 넘쳐 나던 시절이었다. 그들에게서 눈과 마음을 뗄 수 없었던 쉐핑은 서양식 삶을 고수하던 여러 선교사와는 달리 조선말을 익혀 “서서평”이라는 이름을 짓고 한복을 입고 된장국을 먹으며 헐벗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당시 선교사들에게 주어진 하루 식비는 3원 그러나 서서평은 10전으로 허기를 채우고 나머지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썼다. 걸인들을 데려와 씼기고 옷을 사 입히는가 하면 나환자가 버린 아이를 수양 아들로 삼았다. 그렇게 데려다 키운 아이가 14명, 아기를 낳지 못해 쫓겨나거나 오갈 데 없는 여인 38명도 거두어 보살폈다.

 

한번은 병원앞에 버려진 아기를 어느 집에 맡겼는데 잘 키우겠다는 약속과 달리 술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보고 그 동안의 양육비를 주며 데려오기도 했다.

 

서서평이 이일학교와 조선간호부회(대한간호협회 전신)를 세운 것도 이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서였다. 낯선 땅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내 가족처럼 보살폈던 서서평의 사랑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서서평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떠나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조선에서 헌신하다 휴가를 받아 잠시 미국에 갔을 때 그는 어머니를 만났다. 하지만 어머니는 고된 생활에 찌든 서서평을 보고 “몰골이 부끄러우니 돌아가거라” 하며 차갑게 외면했다. 평생 어머니의 사랑에 굶주려서일까 서서평은 사랑이 필요한 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렸다.

 

강냉이 가루 두홉. 현금 7전, 반쪽짜리 담요 서서평이 22년간의 조선 생활을 마치고 풍토병과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날 때 남긴 전부다. 거적때기를 덮고 자는 사람에게 담요 반쪽을 찢어 주고 남은 반쪽으로 가냘픈 몸을 가린 채 눈을 감았다. 그의 장례 행렬을 뒤따르던 천여 명은 통곡하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어머니, 어머니”

 

그로부터 팔십여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서서평이 묻힌 광주시 양림동 뒷동산에는 그를 추억하는 발걸음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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