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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윤지호 기자 | 기사입력 2024/04/05 [17:48]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윤지호 기자 | 입력 : 2024/04/05 [17:48]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석도익 소설가의 자택 무궁화


무궁화를 놀이에 접목하여 호시탐탐 노리는 적을 지키려고 하던 나라지킴이 운동이었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 /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꽃

피였네 피었네 우리나라꽃 /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꽃

지난 유년시절 많이 부르던 무궁화노래로 기억되는데 요즘 아이들은 무궁화와 관련된 놀이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자주 보거나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무궁화는 피고 지고 또 피어서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다. 우리 민족의 인내와 근면성을 상징하는 꽃이었기에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족의 역사와 함께 관습법으로 우리나라 꽃이 되어있다.

옛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 이전부터 무궁화를 하늘나라의 꽃으로, 고조선 시대의 무궁화는 '태양의 꽃'으로 인식되며 '신의 꽃' 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기원전 4세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쓰인 ‘산해경’에는 우리나라를 무궁화가 피는 군자의 나라로 칭하기도 하였고, 신라는 ‘무궁화 나라’(근화향 槿花鄕)라고 불러졌으며, 조선 시대 문·무과에 급제한 사람에게 주어진 어사화에도 무궁화 장식이 사용된 것이 기록되어 있다.

꽃 중에 꽃 무궁화는 서양의 영어에서 Rose of Sharon은 한국어로 무궁화다. 라고 한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무궁화는 관습적으로 국화(國花)로 여겨온 아욱과의 낙엽관목이다. 꽃 색깔이 다양하며 7월부터 10월까지 100여 일간 계속 피므로 무궁화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기원전에 편찬된 『산해경』에도 한반도에 무궁화가 많이 자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한반도를 표상하는 꽃으로 여러 문헌에 다양하게 등장했다. 개화기에 애국가를 창작할 때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들어가면서 무궁화는 조선의 국화가 되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꽃 모양과 색깔이 다른 여러 품종이 있으며 다른 화목류에 비해 병이 거의 없는 편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전국적으로 무궁화를 심어 민족정신을 앙양하고자 하는 무궁화 운동은, 민족의 자긍심과 국권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남궁 억 선생이 주도한 민족운동이었다.

민족교육자이며 기독교 장로였던 남궁 억(南宮檍)선생은 전국적으로 무궁화심기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자신이 설립한 강원도 홍천의 모곡학교(牟谷學校) 학생실습지에 무궁화 묘목을 재배하여 전국 각지에 보내어 무궁화심기운동을 벌였다.

1933년 일제는 무궁화사건 (無窮花事件)으로 남궁억의 이와 같은 사업이 불온사상을 고취한다 하여 관련자들을 모두 체포하고 무궁화 묘목 8만주를 불태워 버렸고, 우리 꽃 무궁화를 이 땅에서 모두 없애려 하였으며 이도 모자라 무궁화민족사상을 없애버리려고 ‘무궁화는 집안에 심으면 재앙이 있다’  ‘무궁화는 벌레가 많다’ ‘무궁화는 하루만 피며 지저분한 꽃이다.’ 라는 누명을 씌워 홍보함으로서 조선의무궁화를 영원히 멸종시키려 했던 일본식민정책이 지금까지 그들의 감언이설을 믿고 있는 실정인데도 그따위 누명하나 정부에서 제대로 벗겨주지 못하고 있다.

나라꽃 무궁화사랑으로 마음 합치고, 애국가 부르며 나라사랑하고, 태극기 휘날리며 지켜왔던 나라! 대한민국인데, 지난 일들은 잊었는지 애국은 빛 바래지고 국산품 애용은 잊은 지 오래된 단어가 되었지만, 세계 어디를 가나 힘 있는 나라의 국민이기에 업신여김 당하지 않고 우대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30여 년 부터 무궁화나무를 재배하여 전국에 보급하다보니 무궁화를 좋아하면서도 나무를 심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일제강점기 무궁화에 대한 누명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사회가 안정되고 정치가 애국적일 때 무궁화나무를 많이 찾고, 사회가 혼란하고 정치가 국가관이 흐려지면 무궁화는 소외되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역사상 국가와 사람 때문에 식물이 멸종위기까지 피해를 본 것이 무궁화나무였으니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며, 민족의 가슴에 심겨지고 피어나는 무궁화의 그 선홍빛 단심은 우리민족의 심장 같음을 이해해야 할 것이고, 남궁억 선생의 무궁화운동이 뿌리내린 홍천은 무궁화의 고장으로 면면이 이어온 홍천에서 무궁화를 꽃피워야할 사명을 가지고, 무궁화를 심고 가꾸어 미래를 향해 뛰고 있는 국민의 무궁화 단심 같은 심장 속에 무궁화 꽃이 피고 피어나게 하여야 한다.

석도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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