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학에서는 사람의 觀相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平生不成之相(평생 성공 못하는 사람), 必竟成功之相(반드시 성공하는 사람).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이 99%이고 1%의 사람들만이 시장이나 군수 같은 사회지도자나 교수, 의사, 판사, 검사, 기관장 등으로 활동한다고 보면 된다. 29%에 해당하는 사람은 중간지도자 급이고 70%는 그야말로 보통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많은 사람이 바로 이 70%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태어나 70%인생을 살고 있는 보통사람이라 할 수 있다. 故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보통사람' 을 시대정신으로 대통령이 되어 보통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노대통령의 보통사람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산층을 포함한 서민계층을 지칭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 글에서 보통사람이란 경제적인 의미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는 동안 知, 德, 體가 중간에 위치하고 경제적 사회적 건강능력이 보통인 자리에서 삶을 사는 사람을 지칭하고 싶다.
우리사회에서 일상적으로 평가할 때 평가기준을 좋음(可, Pass) 나쁨(否, Fail) 2단계로 하거나 상 .중. 하 3단계로 하거나 또는 수. 우. 미. 양. 가. 5단계로 하기도 한다. 더 세분한 평가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10단계로 평가하기도 한다. 평가 기준에서 중간이라면 보통을 나타내는 평어는 3단계에서는 중, 5단계에서는 미, 10단계에서는 5-6이다.
요즘 초등학교에서 평가단계와 평어는 5단계로 매우 잘함, 잘함, 보통임, 부족함, 매우 부족함으로 하고 있으나 옛날 내가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교과성적은 5단계 평가로 수. 우. 미. 양. 가로 평가를 하였고 행동발달 평가는 가. 나. 다 3단계로 하였다. 초등1학년 통신표를 보면 낙엽 떨어지는 소리다. 교과 성적은 우수수수이고 행동발달은 모두 가.가.가. 이다. 한마디로 말해 선생님이나 부모님 걱정시킬 정도는 안했다는 증거다.
그런데 중학교 평가를 보면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다. 고등학교때 IQ 검사에서 100이상이었으나 상위 10%에 해당되지 않는 위치였다. 고등학교에서는 연구생으로 활동하였다. 대학시절은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장학금을 타기도 하고 졸업성적은 5위로 첫 발령을 '시' 지역으로 받을 수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교사 때까지 받은 수많은 상장이 아직도 벽지로도 쓸 수 없는 색이 누렇게 발한 채 두루마리로 장롱 속에 있은 지 오래다. 지금까지 학창시절 성적을 종합해 볼 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각 학교별 평가는 '나'에 대해 종합적으로 비교적 과하지도 억울하지도 않게 정당하게 평가된 듯싶다.
그렇다면 성인이 되어 지적인 활동, 생활능력과 사회성, 건강 및 신체발달을 보면 대학 졸업 후 교사시절 많은 연구로 수상을 하고 사립학교에 근무한 경력도 있고 장학사. 교감. 교장승진도 했다.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교장회장 동창회장 등 사회적 활동도 어느 정도는 경험했다.
교장연수 시절 연수대상자 전원을 대상으로 인성-성격검사를 하였는데 검사자가 그 결과를 해석해주었는데 나 같은 성격은 모든 분야에 다 어울린다며 이런 사람은 1만 명에 한사람 나올까 말까하는 성격이란다. 그러니까 모든 분야에 적성이 있어 누구나 잘 어울릴 수 있지만 반대로 특별히 뛰어난 점이 없으니 단점이다. 무슨 일이든 못하는 것은 없는데 특별히 뛰어나게 잘하는 게 없다.
스포츠센타에서 신체발달정도를 측정해 보면 보통이면서도 보통구간에서 이하 쪽에 속한다. 하기야 키도 큰 편도 아니고 체격도 큰 편도 아니고 체력도 중간에 속한다. 그렇다고 인물이 잘 난 것도 아니고 천재도 아니고 돈 버는 재주도 없다. 성인이 되어서 나를 종합해볼 때 지적인면이나 인성, 경제. 사회생활. 건강 체력 면에서는 중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나' 라는 인간은 전 인생을 상. 중. 하로 보면 中이고, 수. 우. 미. 양. 가로 보면 美다. 그리고 10단계로 보면 5-6 단계에 속한다. '나' 라는 인간은 種子로 비유하면 주인이 수확할 때 거둬들여 이듬해 '씨' 로 쓸 만한 우수한 종자는 못되고 아주 쓸모가 없어 밭에 버려지는 쭉쟁이도 아니다. 그냥 농사를 지었으니 집에 가지고 가서 곡식으로 먹는 알곡정도의 보통사람이다.
나는 열매일 뿐이지 종자는 못된다.
하느님은 알곡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해에 씨(종자)로 쓸 우수한 것을 원하신다. 그냥 농사를 지었으니 먹을 수 있는 알곡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쓰기 위해 데려가는 씨종자를 원한다고 볼 때 알곡은 윤회로 지구에 다시 태어날 수는 있어도 하느님이 계시는 천국에는 갈 수는 없다.
남에게 피해도 안주고 善하게만 살면 지구에 다시 태어나는 환생은 할 수 있지만 천국에서 태어나는 왕생은 할 수 없다. 요즘 '자연인' 이라는 TV 프로를 보면 이유야 어찌됐든 혼자서 산속에서 남에게 피해 주는 거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하느님은 이런 모습을 과연 원할까? 하느님은 나보다 약한 자를 도우면서 공존공영하면서 살기를 원하신다.
100%는 神일뿐 70% 인생도 다행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내 인생을 8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서 볼 때 70%의 인생으로 태어나 70%의 인생을 산 것 같다. 하지만 죽음만은 90%로 죽었으면 한다.
큰 고통 없이 집에서 저녁 잘 먹고 자다가 갔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그게 내 맘대로 되겠는가! 희망사항이겠지. 살아 있을 때는 쓸 돈이 없어서 아쉽고, 죽을 때는 다 못쓰고 죽어서 아쉽다고 한다. 인생은 100% 를 다 쓰고 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중국 절강성의 경제계 인물 왕쥔야오 회장이 38세에 죽었는데 그 부인이 19억 위안화, 한화로 약 380억원 예금을 가지고 남편을 모시고 다녔던 운전기사와 재혼을 했다고 한다.
이 운전기사가 행복에 겨워 말하기를 전에 난 내 자신이 왕회장님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서야 왕회장님이 날 위해 열심히 일하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기막힌 사실은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키 크고 돈 많고 잘 생긴 것 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웬만한 사람은 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생은 물론 80 노인도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다. 나도 그렇지만 핸드폰 기능 중 70%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휴대폰 기능을 보면 정말로 많은데 어떻게 보면 전화를 걸거나 받거나 또는 문자나 사진을 보내고 좀 나은 사람은 카톡 또는 유튜브를 보는 정도다. 휴대폰 기능에서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자식이나 휴대폰 매장 점원의 도움을 받는 일이 많다. 또 무인점포가 늘어 가는데 음식을 주문할 때도 어렵다.
요즘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TV와 인터넷이 들어와 있는데 TV가 잘 안 나오거나 고장이 나면 기사를 불러야 한다. 이렇게 보면 컴맹 또는 디지털맹이라고 해야 한다. 디지털시대에 디지털맹이라면 낙오자가 아닌가? 디지털 측면에서 보면 노인은 10%로도 활용을 못하는 건 아닐까? 승용차를 40년 타고 다녔지만 생각해보면 낼 수 있는 최대속도 중 70%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우리 집 면적의 70%는 없으면 약간 불편할 정도지 꼭 필요한 면적은 아닌 것 같다. 어찌 보면 사치라고 하겠다. 늙은이 두 사람이 사는데 뭐가 그리도 넓은 집이 필요한가? 풍수로 봐도 사람이 적은데 집이 너무 커도 사람이 집에 눌려 좋지 않고 사람이 많은데 집이 좁아도 숨이 막혀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 수와 집의 넓이가 적당해야 한다.
젊은 시절엔 뭐가 그리도 바빴는지 쉴 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돌아보니 내가 만난 사람의 70%는 의미 없는 것 같다. 집안의 생활용품 중 70%는 놔두기만 하고 쓰지 않는 것이 많고 그 중에 옷가지를 보면 장롱 가득히 걸려 있는데 10년 넘게 입지 않는 옷도 많다. 이사 갈 때면 살림살이의 70%는 버리고 가도 될 물건들이다.
신발장에도 신이 많은데 풍수로 봐도 신지 않는 신발이 많으면 나쁜 기운이 나오므로 신지 않는 신은 처리하는 게 좋다. 책상 위 연필통에 연필이 많을 때 쓰지 않는 연필이 있다면 그 연필이 주인을 미워한다는 것이다. 연필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주 접촉해주고 말해주고 활용해주고 예뻐해 주면 그 연필도 주인에게 고마움을 안다고 한다.
한평생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70%는 다른 사람이 쓰거나 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에 빠져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많이 듣던 말 아닌가? 70% 인생도 행복은 있다. 인생관이야 사람마다 다르고 철학이 다르겠지만 복잡하게 사는 것 보다 심플하게 사는 게 좋은 것 같다. 다시 말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그냥 넘어가고 일이든 마음이든 정신이든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살았으면 한다. 圓滿하다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원이 가득 찼다는 말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원만치 못하다는 것이다. 인생을 원으로 비유한다면 원만치 못한 삶은 원이 100%로 가득 채우지 못한 쭈글쭈글한 바람 빠진 고무풍선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 말씀이나 부처님 말씀, 공자님 말씀, 소크라테스같은 철학자. 심리학자. 역사, 풍수지리, 사주, 명리학, 타로, 성명학, 언어학, 양자학. 우주론, 심리, 건강 등 에 관해 궁금한 내용을 알아보면 야! 내가 이렇게 무식하구나, 젊은 시절 그동안 난 뭘하느라고 바빴나? 지금까지 뭘 배웠지. 참 한심스럽구나 등 탄식과 한숨만 나올 뿐이다. 하기야 그도 그럴 것이 아이큐가 100단위이니까 당연한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너무도 몰랐던 같다. 타고난 70% 인생이 배운다고 될 것이며, 노력한다고 될 것인가?
에디슨 같은 천재가 1%영감과 99% 노력으로 된다고 한 것은 우리같은 많은 보통사람에게는 너무도 잔인한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수많은 10%의 상위그룹을 뺀 90% 사람들은 에디슨의 말만 믿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말하기 좋게 노력하라고 하지만 헛수고하는 거다. 노력한다고 되는 게 있고 안되는게 있다. 이것이 진리다.
옛 어른들도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했다. 지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한 뜻과 같다. 천재 빼고 그 외 사람들은 힘 빼지 말고 보통대로 살아도 다 살아갈 수 있다.
우리 삶을 돌아보자. 우리가 쓰고 있는 전기. 전구, 시계, 휴대폰,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전기밥솥. TV 모두가 내가 다 모든 것을 만들어 쓴 게 있나? 모두 머리 좋은 몇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보통사람들은 그냥 생활 속에서 잘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30% 만 활용하고 70%는 쓰지 못하고 살다가 죽어가는 천재 몇 사람을 제외한 보통사람도 보통대로 살면 그 속에서도 행복은 있다. 학생시절 그 후 성인이 되어서도 되지도 않을 허황된 꿈을 위해 시간과 돈과 정력을 다 쏟아 붓다가 허송세월로 청춘과 인생을 다 보내지 말고 자기 분수를 알고 분수에 맞게 살아가야 않겠나?
다행히 전생의 業때문에 10% 천재는 아니더라도 보통사람이지만 70%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축복으로 알고 보통사람이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홍 진 복 (전)서울신사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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