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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복 작가 에세이 27] 비 오는 날 있었던 일

비 오는 날엔 부침개와 막걸리가 땡긴다

용석준 기자 | 기사입력 2023/04/17 [22:40]

[홍진복 작가 에세이 27] 비 오는 날 있었던 일

비 오는 날엔 부침개와 막걸리가 땡긴다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3/04/17 [22:40]



쑥국과 아내

  

토요일 늦은 오후에 집사람과 인근에 있는 야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언덕길을 조금 올라왔는데 길가에 쑥이 파랗게 자랐다. 집사람과 나는 약속이나 한 듯이 쪼그리고 앉아 쑥을 뜯었다. 쑥이 얼마나 많은지 잠간 뜯었는데 큰 줌으로 한 움큼 뜯었다. 두 사람이 뜯은걸 합치면 한 끼는 족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욕심내지 말고 그만 뜯자" 하고 자리를 일어섰다. 비닐주머니를 준비하지 않아 주머니에 넣고 2시간 정도를 걸었을까. 산을 내려와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 창문을 내다보니 비가 내렸다. '어제 등산을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사람은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듯 했다. 나는 의례 평소처럼 텔레비전을 켜고 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여보, 밥 차려 놨어요. 식사해요." 아침밥상에 쑥국이 올라왔다. 된장을 풀어 끓여서 냄새가 더욱 좋다. 쑥의 출처야 당연히 어제 뜯은 것이니 물을 것도 없이 한 숟가락 먹었다. 쑥 향이 너무 좋았다. 달래냉이와 함께 완연한 봄내음이다. 쑥국으로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우리 세대는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부르는 관습 때문에 집사람이라고 한다. 아내라는 말은 '집안의 해' 라는 뜻이다. 집안의 해가 밝으면 집안이 밝고 집안의 해가 어두우면 집안의 분위가 어둡다. 그만큼 아내의 기분이 중요하다. 특히 해가 지면서 밤은 여자의 시간이므로 여자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한편 남자를 영감이라고 하는데 집안의 神을 뜻한다. 고을에 神을 대감이라하고 나라의 神을 상감이라 한다.

 

한자에서 音과 訓이 바뀌어 쓴 한자가 '神' 자다. 하늘천(天)하면 '천' 이라 읽고 '하늘' 이라는 뜻인데 신(神)은 '감' 이라 읽고 '신"이라는 뜻이다. 비가 와서 날은 흐리지만 아내의 기분은 그래도 밝은 것 같아 다행이다.

 

 

  © 쑥


이번 기회에 쑥에 관하여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한 것들에 대하여 정리를 해 보았다.

 

쑥은 쑥의 모양이나 자라는 곳에 따라 또는 쓰이는 용도에 따라 이름도 여러 가지다. 산쑥, 섬쑥, 밭쑥, 개천쑥, 약쑥, 참쑥, 인질쑥, 황해쑥(모기쑥), 물쑥, 광대쑥, 개똥쑥, 비단쑥, 백두산쑥, 비로봉쑥, 사철쑥, 인도쑥 등 이외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이러한 쑥은 우리 생활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단군신화에서도 쑥은 마늘과 함께 등장한다. 호랑이는 굴속에서 100일을 참지 못하고 굴 밖으로 나왔지만 곰은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어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잘 아는 신화다. 쑥은 '쑥쑥' 잘 자란다 하여 '쑥' 이라 한다. 그만큼 쑥은 소화도 잘되고 우리 몸에 좋은 식재료다. 

 

쑥은 옛날 기근이 있을 때 굶주린 배를 채워주었고 쌀가루와 섞어 쑥떡을 많이 해서 먹는다. 또한 쑥은 차로도 해 먹기도 하고 한방에서는 쑥뜸을 뜨기도 한다. 특히 쑥은 부인병에 좋다고 한다. 한증막에 가면 벽에 쑥 주머니를 걸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쑥 냄새가 좋다.

 

시골에서는 일하다가 낫에 베여 피가 나오면 쑥을 뜯어 짓이겨서 바르면 피가 멈추기도 한다. 민간 응급처치요법이었다. 여름철 모기가 많을 때는 쑥을 태워서 모기를 쫓는데도 활용했다. 옛날 부싯돌을 사용할 때 쑥을 부싯기로 사용하면 불이 잘 붙는다. 특히 쑥은 찬 성질이 있으나 익히면 열기가 나오는 성질이 있으므로 사람의 체질에 따라 잘 활용해야 한다. 또 쑥은 항암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 쑥전



비 오는 날엔 부침개와 막걸리가 땡긴다. 

 

밥상을 물리치고 비가 오니 특별한 약속도 없고 나갈 일도 없어서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한참 지났는데도 집사람이 부엌에서 나오지 않아 설거지나 허드렛일을 하느라 안 들어오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기름질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혹시 비가 오니 부침질을 하나 하고 부엌 쪽을 보았다. 예감이 맞았다. 나는 바지주머니에서 돈 오천원을 확인하고 동네 슈퍼로가 막걸리를 한 병 사가지고 들어왔다. 현관문 여는 소리에 아내가 보고 '어디 갔다 와" 하고 물었다. '응, 당신이 부침질 하길래 막걸리가 생각나서 한 병 사왔지." "말하고 가지. 며칠 전 시장 갔다가 한 병 사다 놓은 게 있는데" "아, 그랬어. 다음에 두고 먹지 뭐" 집사람과 둘이서 막걸리랑 부침개를 먹었다.

 

"당신도 한잔 해" 당신도 요즘 힘든데" 하면서 한잔 따라주었다. 평소 술 한잔도 못 먹던 집사람이 반잔정도 받았다. 내 체면을 살려주려는 마음인 것 같았다. 고마웠다. 집사람이 벽에 걸린 아버지 사진을 쳐다보더니 눈시울을 적시는 듯했다. "여보, 왜 그래?" "응. 아버님이 생각나서. . 아버님도 생전에 막걸리를 좋아하셨는데, 그때마다 부침개를 안주로 해드렸지. 막걸리를 마실 때마다 난 네가 좋다고 하셨지" "당신이야 누구한테나 잘하니까 누구든 좋아하지. 뭘 새삼스럽게 그래." 마침 그때 방송에서 현철의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 노래가 나왔다. 나도 모르게 집사람 손을 지그시 잡았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부침개와 막걸리

  

비가 오는 날에는 부침개가 생각난다. 소나기와 부침개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소나기 내리는 리듬과 기름질하는 리듬이 비슷해 공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뜨거운 숭늉을 마시면서 '아, 시원하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뜨거운 물의 분자구조와 시원한 물의 분자구조가 비슷해서 우리가 비슷한 맛을 느낀다는 것이다. 어릴 적엔 도무지 어른들의 이런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감정은 특히 우리 민족에게만 있는 것 같다. 감칠맛 같은 서양 사람보다 한 차원 높은 정서 같은 거다.

 

막걸리는 옛날부터 농민들이 일을 하다가 힘이 들 때 하는 술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우리의 국민酒가 되었다. 막걸리는 도수가 낮아서 많이 마실 수가 있지만 빛깔이 우유 빛처럼 탁하면서도 투명하고 투명하면서도 탁한 우리 고유의 정서 때문인 것 같다. 우리 한옥의 담장높이가 발뒤꿈치를 들면 집안이 보이고 안 들면 안 보이는 높이, 그리고 창호지의 특성 또한 방안의 소리가 들릴 듯 안 들릴 듯한 두께, 여자의 치마길이가 땅에 닿을 듯 말 듯한 길이, 이 모두가 우리 민족만이 가질 수 있는 정감이며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사생활이 보장되는 문화가 만들어낸 정서다. 그래서 더욱 막걸리는 사랑을 받지 않나 싶다.

  

실제로 막걸리나 부침개 재료들을 유통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가 오는 날 물건이 더 잘 나간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 부침개와 막걸리가 생각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비가 오는 날에 특히 부침개와 막걸리가 생각나는 이유로 첫 번째로 청각적 효과를 생각할 수 있다. 비가 오면 빗방울이 유리창이나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들이 부침개를 부칠 때 나는 지글거리는 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개한테 종소리를 들려주고 먹이를 주는 걸 반복했더니 나중에는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렸다는 실험을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비가 오는 소리가 그와 비슷하니 부침개가 자연스럽게 연상되고 그렇기 때문에 먹고 싶어하게 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다.

  

비가 오면 막걸리와 부침개가 생각나는 또 다른 이유로 의학적인 견해도 있다. 비가 내리는 날은 습도는 높고 기압은 낮아지기 때문에 이로 인해 기분이 좋지 않아지면서 몸의 혈당이 떨어지게 된다. 혈당치를 높이는 식품으로는 밀가루 요리가 잘 맞기 때문에 부침개가 제격이란다.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가 6%로 낮은 편이며 단백질을 비롯해 이노시톨, 비타민B, 콜린 등 영양분이 풍부하며 새콤한 맛을 내는 유기산도 들어있어 갈증을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막걸리에는 세로토닌 성분을 만드는 비타민 B1이 많이 들어있어 부침개에 막걸리를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고 한다. 비 오는 날 우리 몸이 본능적으로 필요한 영양소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위 글의 내용 일부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자료를 근거로 썼음을 밝혀둔다.

 

비 오는 날 있었던 일과 생각한 것들을 글로 써 보았다. 평소엔 강의식 수필형식(나만의 문학장르)으로 글을 쓰다 보니 딱딱한 분위기가 들었을 게다. 잠시 머리도 쉴 겸해서 비가 오길래 신경 덜 쓰는 글감을 잡았다. 비 오는 날 오늘따라 아내가 고맙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홍 진 복 

(전)서울신사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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