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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문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홍천읍지 이야기 20] 방리(坊里)
아름다운 지명은 언제 사라졌을까?
용석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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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5/23 [21:26]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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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지명은 언제 사라졌을까?

 

▲    1757~1765년 발행된 "여지도서"에 기록된 홍천의 마을지명

 


지명은 마을이나 지방·산천·지역 등 땅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명은 대부분 그 지역의 자연⦁지리적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번 붙여진 지명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때론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기에 옛 지명에는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단초들이 숨어 있다.

 

2021년 현재 홍천은 1읍 9개 면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홍천읍지에 기록된 면은 9개 면이다. 아쉽게도 내면(內面)의 기록은 없다. 강릉도호부에 속해 있다가 인제군에 이속된 후 홍천과 인제를 넘나들었던 내면은 1945년 홍천군에 편입되면서 1989년과 2018년에 발행한 『홍천군지』에 비로소 등장한다.

 

홍천읍지 중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그리고 『화산현지』에는 마을 지명에 관한 내용이 없다. 마을에 관한 내용을 적은 방리((坊里) 항목은 『여지도서』부터 등장한다. 대부분 방리 항목으로 기록했지만 『홍천현지』는 읍총(邑摠), 『홍천군읍지』는 각면리도로(各面里道路), 『강원도지』는 읍면정리(邑面町里) 항목으로 기록했다.

 

홍천읍지 중 마을지명에 관해 가장 앞선 기록인 『여지도서』에 기록된 면은 현내면(縣內面), 화촌면(花村面), 말촌면(末村面), 내촌면(奈村面), 서석면(瑞石面), 영귀미면(永歸美面), 검의산면(劒倚山面), 감물악면(甘勿岳面), 북방면(北方面)이다. 지금의 1개읍 9개면과 한자까지 똑같은 지명은 서석면(瑞石面)과 북방면(北方面) 뿐이다. 나머지는 지명이 바뀌거나 한자가 바뀌었다.

 

현내면(縣內面)은 현(縣)의 중심이라 해서 현내면이다. 각 현마다 하나씩은 있는 지명이다. 현은 조선시대 지방행정단위였던 주(州)·부(府)·군(郡)·현(縣) 중 가장 하위의 단위다. 현내면은 1895년 현이 군으로 바뀌면서 군내면(郡內面)으로 개명되었다가 1963년 홍천읍으로 승격되었다. 1917년 홍천면으로 이름이 한 번 더 바뀌었지만 홍천읍지에서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화촌면은 花村面에서 化村面으로 바뀌었다. ‘花’가 ‘化’로 바뀐 것이다. 『여지도서』와 『대동지지』에만 花村面으로 기록했을 뿐 나머지 읍지는 모두 化村面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미 『여지도서』 이후 발행된 모든 홍천읍지에서 化村面으로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동지지』를 만든 김정호 선생만은 끝내 花村面을 고집했다는 점이다. 김정호 선생의 옛 지명에 대한 사랑은 『대동지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여지도서』의 말촌면(末村面)은 지금의 두촌면(斗村面)이다. 끝마을이라 해서 말촌면이라고 했다 한다. 아마도 홍천의 최북단이어서 그런 듯싶다. 지금도 두촌면 장남리가 홍천의 최북단이다. 『여지도서』 이후 발행되는 홍천읍지에서는 모두 두촌면으로 기록했다. 다만 김정호 선생은 『대동지지』에서 옛 이름인 말촌면으로 기록했다.

 

내촌면은 奈村面에서 乃村面으로 바뀌었다. 『여지도서』, 『홍천현읍지』, 『대동지지』, 『관동읍지』, 『홍천현 읍지(백원정사 필사본)』에는 ‘奈村面’으로, 『관동지』, 『홍천현지』, 『홍천군지』, 『강원도지』에는 ‘乃村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奈(어찌 내)는 ‘능금나무’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능금나무는 지금의 품종 개량되기 이전의 야생 사과나무다. 내촌면에 능금나무가 많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乃(이에 내)는 ‘노 젓는 소리’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미약골에서 발원한 홍천강물이 내촌면을 굽이굽이 돌아 홍천강으로 합류하기에 ‘노 젓는 소리가 들리는 마을’이라는 뜻의 내촌면(乃村面)일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해본다.

 

영귀미면(永歸美面)은 칼럼을 쓰는 이 시점에서는 동면(東面)이다. 『강원도지』에 동면으로, 그 외 나머지 읍지에는 영귀미면(詠歸美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 ‘永(길 영)’으로, 나머지 읍지에서는 ‘詠(읊을 영)’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귀미(詠歸美)는 ‘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곳으로 돌아온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동면 주민들과 홍천군이 적극 나서서 옛 이름 ‘영귀미면’을 되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결과 며칠 후인 6월 1일부터 옛 지명 영귀미면으로 되돌아간다.

 

『여지도서』의 검의산면(劒倚山面)은 지금의 남면이다. 역시 옛 이름 좋아하는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쓴 『대동지지』에 검의산면(劒倚山面)으로, 그리고 일제강점기 『강원도지』에 남면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 외 나머지 읍지에는 모두 금물산면(今勿山面)으로 기록되어 있다. 검의산은 『대동여지도』에 지금의 매화산과 봉화산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기록되어 있다. 금물산은 행정구역으로 홍천군 남면, 양평군 청운면, 횡성군 서원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감물악면(甘勿岳面)은 지금의 서면이다. 『강원도지』에 서면으로, 그 외에 홍천읍지에는 모두 감물악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감물악은 팔봉산의 옛 이름이다.

 

서석면(瑞石面)과 북방면(北方面)은 유이(唯二)하게 9개 읍지에 모두 같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귀미면(詠歸美面 동면), 감물악면(甘勿岳面 서면), 금물산면(今勿山面 남면)은 향토색이 짙게 배어 있는 이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에 홍천군청 기준으로 동쪽에, 서쪽에, 남쪽에 있다 하여 동면, 서면, 남면으로 고쳤다. 지명의 역사성과 향토색을 지우는 식민지 지배 정책의 일환이었다.

 

지명은 정체성이다. 그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담아낼 때 가장 아름다운 지명이 된다. 시대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하지만 옛 이름이 사라지는 것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몇몇 이름은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출처 백승호 벌력 콘텐츠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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