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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문화
팔만대장경 숨결담은 금학산 용수사(龍遂寺)를 찾다
용득의 문하시중, 팔만대장경 각판, 용수사 창건
용석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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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5/19 [20:0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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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9일 오늘은 불기 2565년으로 부처님오신 날이다. 부처의 자비와 평화가 온 누리에 깃들기를 염원한다.

 

 

 


석가탄신일을 맞은 이날 오전, 필자는 홍천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 동언우 연구위원과 전장수 위원, 홍성익 박사(강원도문화재위원), 최이경 군의원, 홍천군청 함대식 과장, 김성호 학예사, 윤영호 칼럼니스트, 김동성 교장, 변해동 위원장, 전광환 단장, 연찬모 사무국장, 김희종 서석뉴스대표 등 일행과 함께 용수사지를 탐방하기 위해 북방면 장항리 금학산 절골로 향했다.

 

 

 

 


일행은 대부분 초행길이었지만 길 없는 짙은 녹음 숲을 헤치며 계곡하천을 따라 1시간 20여분 만에 용수사(龍遂寺) 터에 올랐다. 그곳엔 이곳이 절터임을 증명하듯 수많은 와편조각이 즐비했고 도자기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홍천향교 느티나무(수령 325세 추정)보다 훨씬 더 큰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좌우에 직립해 그 위용이 옛 용수사의 자취를 지켜주는 듯 했다.

 

 

▲   용수사지 부근  느티나무

 


785년 전 고려는 거란과 몽골의 침입으로 나라가 풍전의 위기에 있었다. 이때 외세침략을 부처의 힘으로 막고 피폐한 백성들의 마음을 위무하기 위해 16년 동안 불타버린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을 각판하고 불사를 총지휘해 완성한 이가 있다. 그가 고려조 대학자이자 문하시중인 용득의(龍得義)이다.

 

 

▲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용득의는 본관이 홍천(洪川)으로 홍천용씨(洪川龍氏)의 시조다. 동면 덕치리에 그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가 만년에 벼슬을 떠나 홍천에 낙향해 홍천군 북방면 장항리 금학산(金鶴山)에 22칸의 용수사(龍遂寺)를 세워 중생에게 희망을 주고 수련도량으로 학서루(鶴棲樓)를 창건했다. 그는 불전(佛典)전수와 불교(佛敎)전파에 여생을 바친 인물이다.

 

 

▲    용수사지 석축

 


일행은 홍성익 박사와 김성호 학예사 그리고 풍수지리에 능한 변해동 위원장의 전문적인 식견을 통해 용수사지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듣게 된다.

 

 

▲    용수사지에 널려있는 와편과 도자기 조각들

 


도자기 전문인 김성호 학예사는 발견된 와편과 도자기 조각의 유형에서 조선전기와 후기양식임을 말하고 그 차이와 도자기의 소성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어 홍성익 박사는 용수사지의 기단지형과 규모, 양식 등에서 발굴조사의 의미를 두고 일반사찰과 다른 고려시대 유형의 역사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발굴 및 학술조사의 시급성을 전했다. 변해동 위원장은 오르기 전에는 음택지로 보았는데 막상 정상에 올라보니 봉미산, 나산, 장락산 그리고 홍천강이 시야에 넓게 트여 양택지의 명당 중에 명당임을 풍수학적으로 설명했다.

 

 

▲    용수사 지에서 바라본 전경

 


이어 필자는 선조의 발자취를 함께 찾은 일행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오늘 석가탄신일이 법정공휴일이 된 것은 용태영 변호사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 상고까지 가 치열한 변론 끝에 얻어낸 결실임을 전하고 인사를 빌미로 용득의 5세 손인 용희수(龍希壽)가 이성계의 조선 개국공신으로 공조와 예조판서를 역임했는데 그의 아들 용천기(龍天奇)도 개국공신으로 공조판서를 역임해 부자가 동시대에 함께 판서를 지낸 사례는 이례적이라고 강조했다.

 

 

▲    동면 덕치리 화산제 정자에 걸린 이태조 제문

 


또한 태조 이성계가 용희수의 빈소(殯所)에 전(奠)을 내리는데 그 제문(龍希壽 緖之子 檢校工曹判書太祖有祭文)이 홍천군 동면 덕치리 화산제 정자에 걸려 있다고 말했다.

 

 

▲    홍천박물관

 


한편 홍천군박물관은 5월말 또는 6월 초경 개관 첫 인물전에 고려시대 팔만대장경 제작을 총지휘한 홍천용씨의 시조 ‘용득의’를 주제로 인물전이 진행될 예정이다.

 

 

▲    홍천현읍지(1750년)

 

▲  여지도서를 비롯해 7개의 홍천읍지에는  홍천관아에서 서쪽 30리 길에 용수사가 위치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용석춘 홍천뉴스투데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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