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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칼럼] “나는 나 다워서 아름답고, 너는 너 다워서 아름답다”

달빛행복을 버리고 햇빛행복을 찾아라

용석춘 기자 | 기사입력 2021/02/25 [20:40]

[윤영호 칼럼] “나는 나 다워서 아름답고, 너는 너 다워서 아름답다”

달빛행복을 버리고 햇빛행복을 찾아라

용석춘 기자 | 입력 : 2021/02/25 [20:40]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단절의 시대에 살고 있다.

 

회의도 강의도 화상으로 하고, 물건을 사고파는 매개도 실물(off-line)시장에서 사이버(on-line)시장으로 그 주도권이 바뀐 것이다. 수많은 관중이 동원되었던 각종 방송공연이나 대회에서도, 현장에 있지 않으면서 모니터에 나타나는 화면상의 수많은 관객이, 가수의 점수도 메기고 환호도 하면서 참여하는 것이 방송문화의 자연스런 기류가 되었다. 심지어 필자가 참여한 단체 발기인 대회도 비대면으로 실시한 바 있다. 과거에 주류였던 종이신문도 이제는 인터넷 신문에게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다. 이제 바야흐로 접촉의 시대에서 접속의 시대로 어쩔 수 없이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불가항력적인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나 세상이 평가하는 나 자신에 대한 시선도 당연히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동안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인가? 라는 근본적 정체성에 관해서 스스로 고민하고 탐색하기보다는 세상이 정해주는 기준에 너무 의존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를 규정하는 정체성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남에게 비교되지 않고 나만의 고유하며 독립적인 나이고, 또 하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 남과 비교되는 나, 즉 남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종속적인 나다. 그래서 행복의 종류도 두가지가 있으니 햇빛행복과 달빛행복이다.

 

햇빛행복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느끼는 주관적인 행복인 반면, 달빛행복은 햇빛을 받아 반사시킨 것이다. 즉 외부 조건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달빛행복에 익숙해 있었다. 그래서 늘 불안했다. 외부조건은 언제든지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잃어버렸던 나를 찾고, 나 자신에게 주인의 자리를 회복시켜 줘야할 시대적 상황이 도래했다.

 

내가 관여한 바도 없이 이미 세상에 만들어진 타자의 가치기준으로 나의 외부모습이나 내면의 모습을 평가받고 그에 따라 내가 잘나고 못나고 하는 가치와 행불행이 결정되는 종속적인 내 모습에서, 이제는 타인과 비교되지 않는 자신만의 독립적인 시각으로 형성된 나 다운 모습으로 행복할 수 있어야 되겠다.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재배치를 통해서 객관과 주관의 균형 잡힌 세계관을 갖는 절호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과의 비교는 언제나 갈등을 불러오지만 스스로에 대한 성찰은 각성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구태여 비교를 해야 한다면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경쟁이 아닌 성숙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언제까지 외부의 시선에 끄달리며 종속적인 삶을 살 것인가? 남이 던지는 질문에 모범 답 찾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 정직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홀로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은 단절된 이 시대에 적합한 화두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여 새롭게 삶을 조명할 수 있도록 하늘이 급격하게 부여한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상대적인 존재가 절대와 맞서는 것은 최고로 어리석은 짓이다. 지금 이 땅에 절대가 있다면 팬데믹 현실이 절대다. 이 때에는 ‘현실 인정과 적응’ 이 지혜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내 관점을 바꾸는 것이 답이다. 그것이 인식론이다. 관점의 수정을 통한 인식의 합리적인 전환은 나를 더 불행하지 않도록 하는 방어 기재인 것이다.

 

새로운 ‘뉴 노멀’ 세계가 열리면 새로운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을 살아야 한다. 몸은 물질적 형식이나 공간적 한계에 갇혀 있더라도 마음은 경계가 없어야 한다. 마음은 무한히 확장될 잠재력이 있기도 하고, 그 반대로 무한히 줄어들 수도 있다. 우주를 담을 수도 있지만, 바늘 하나 꽂을 곳 없이 협소해질 수도 있는 극단의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싫어도 멈춰야 하고, 원치 않아도 활동 반경이 대폭 줄어든 반면에, 내 방역을 하는 일과 전파자가 되지 않는 것이 추가적으로 필수적인 일이 되었다. 이러한 때에 마음이 경직되면 고립감 때문에 세상이 우울할 수밖에 없다. 물질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마당에 마음마저 물질에 갇히게 하지 말자. 다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천부의 양심에 거슬리지 않고, 인간의 공적 약속인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주속에서 내 마음의 멍에를 풀어주자. 걸림없이 하늘을 비상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자.

 

“나는 나 다워서 아름답고, 너는 너 다워서 아름답다”

 

“평범함 속에서 행복하기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유일성(唯一性)에 대한 자각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눈을 멀게 했던 상대적 비교가 사라지고, 고유한 가치를 절대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릴 때에 우리는 비로소 남의 시선에 종속된 노예에서 해방될 수 있고, 바로 내가 주인이 된 나만의 고유한 행복의 지평을 대면하게 될 것이다. 

 

 

윤영호 칼럼니스트(시인, 수필가,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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