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문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홍천읍지 이야기 8] 홍천 산천(山川)
용석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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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22 [13:42]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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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의 주산은 석화산이고, 한 때 가리산의 공식 명칭은 기산이었다.

 

 

 


홍천 면적 중 가장 넓은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이 산이다
. 네이버 지도에서 홍천 산을 치면 69개의 산이, 다음 지도에서 홍천 산을 치면 70개의 산이 나온다. 나열하기조차 버겁다. 산이 곧 홍천이고 홍천이 곧 산이다.

 

70여 개의 산 중 홍천읍지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산은 어디일까? 석화산과 팔봉산이다. 13개 홍천읍지 모두에 기록되어 있다. 석화산은 현의 북쪽 1리에 있으며 진산(鎭山) 혹은 읍기주산(邑基主山)으로 적었다. 진산은 주산(主山)과 같은 뜻이다. 풍수지리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대개 조선 시대 주···현의 관청 뒤의 산을 일컫는다.

 

도읍이나 현의 관아 위치를 정할 때 가장 먼저 나서는 사람이 지관이다. 지관이 풍수를 살펴보고 건물 위치를 정한다. 이른바 명당을 찾는 것이다. 명당이란 혈의 기운이 흐르는 곳이다. 그 혈의 기운이 흘러내리는 산을 진산 혹은 주산이라 했다. 홍천의 진산은 1454세종실록지리지가 발행된 이후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그래서 홍천의 산천(山川) 항목의 첫자리는 늘 석화산이다.

 

팔봉산은 일명 감물악으로 불렀으며 서쪽 60리에 있다고 했다. 동국여지지여덟 봉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가파른 바위가 유달리 뛰어난 데서 연유한 이름.1이라고 적었다. ·가을로 관에서 제를 지낸다고 했다. 지금의 팔봉산 당산제의 뿌리다. 일제 강점기에 발행된 강원도지에는 6리로 적었다. 일본 강점기 1리는 당시 조선의 10리였다.

 

다음으로 많이 기록되어 있는 산은 공작산과 가리산이다. 세종실록지리지를 제외한 12개의 홍천읍지에 이름을 올렸다. 공작산은 현의 동쪽 25리에 있고, 정희왕후의 태를 안장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대동지지에는 수타사가 있다 했고, 관동읍지화산현지에는 영귀미를 적어 위치를 보강했다.

 

가리산은 현의 동쪽 70리에 있다고 적었다. 동국여지지에는 기산. 속칭 가리산(歧山 俗稱加里山)’으로 적어 공식적인 지명을 기산으로 기록했다. 부연 설명으로 용이 사는 연못이 있는데 가뭄 때 이 연못에 호랑이 뼈를 담그면 응답이 있다.2고 적었다. 용이 사는 연못이라는 뜻의 용연은 용소깐이라고도 하며 두촌면 천현리 가리산 자연휴양림 입구 좌측에 있다. 중종실록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527529일 중종이 팔도 관찰사에게 글을 내렸다.

 

근래 해마다 흉년이 들어 백성이 곡식을 먹지 못하고 있는데, 금년의 가뭄은 전에 비하여 더욱 극심하여 두어 달이 넘게 가물어 곡식이 모두 말라버렸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참으로 두려운 마음 간절하다. 모든 사전(祀典)에 실린 바에 따라 기도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아직 한 번도 비가 오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여지승람(輿地勝覽)을 살펴보니 비를 빌어 응답이 있는 곳으로는 다음과 같다.”

 

뒤이어 전국에서 기우제가 효험이 있는 곳을 나열하면서 강원도에서는 간성의 오음산, 홍천의 가리산, 안협의 제연당을 꼽았다. 안협은 철원의 옛 지명이다.

 

다음으로 많이 기록된 산은 대미산과 필용산이다. 대미산은 현의 동쪽 10리에 있다 하고, 필용산은 현의 남쪽 40리에 있다고 간략히 적었다. 그 외 현의 남쪽 30리에 오음산이, 현의 동쪽 95리에 청량산이, 현의 서남쪽 20리에 검의산이, 현의 서쪽 40리에 금학산이 있다고 적었다. 남면은 1750년 전후에 발행한 여지도서에 검의산면이라고 기록되기도 했다. 검의산은 대동여지도에 지금의 매화산과 봉화산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여지도서는 산과 산의 관계를 기록했다. 석화산의 주맥은 가리산이라고 적었다, 가리산은 강릉 오대산을 주맥으로 기록했다. 팔봉산의 주맥은 오음산이고, 오음산의 주맥은 공작산이며, 공작산의 주맥은 횡성 태기산으로 적었다.

 

산 이외에 우령(羽嶺)이 눈에 띈다. ‘우령. 현의 남쪽 5리에 있다. 전해 내려오는 얘기로는 객관 남쪽 다리에 학이 날아와 모였다가 봉우리를 넘어 날아가다가 깃털이 떨어졌다고 해서 지어진 옛 이름3이라고 했다. 행정구역상 동면 성수리의 있는 고개로 짓고개 혹은 깃고개라고도 부른다. 객관 남쪽 다리는 학다리(鶴橋).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홍천의 고개에 대해 자세히 적었다. 홍천의 관문인 신당고개(神堂峙)는 서쪽 40리 지평과의 경계에 있다고 했고, 며느리고개(婦峴)는 서쪽 25리에 있다고 했다. 장송현(長松峴)은 동쪽 30리에. 두촌면 철정리 말고개(馬峴)는 동쪽 40리에, 건이령(建伊嶺)은 동쪽 75리 인제와의 경계에 있다고 했다. 삼마치는 남쪽 40리 횡성과의 경계에 있고, 백양치는 서남쪽 40리 지평과의 경계에 있다고 했다. 국사당고개와 부소원고개는 모두 북쪽 22리 춘천과의 경계에 있다고 적었다. 송치(松峙)는 크고 작은 2개의 고개가 동쪽 40리에 있다고 했고 백치(柏峙)는 동쪽 1백 리 강릉과의 경계에, 미등내치(彌等乃峙)는 동남쪽 40리 횡성과의 경계에 있다고 적었다.

 

산과 강을 빼고 홍천을 얘기하기 어렵다. 산천은 홍천의 대명사다. 조선 시대 산에서 나는 온갖 임산물을 홍천강에 배를 띄워 서울로 올려 보냈고, 필요한 물품을 구해왔다. 예나 지금이나 산과 강은 홍천의 젓줄이고 생명줄이다. 지금은 휴가철이면 홍천의 산과 강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그렇게 또 홍천의 강과 산은 홍천군민에게 삶의 토대를 만들어 준다.

 

 

 

1. 八峯相連巉岩奇拔 故名 동국여지지

2. 有龍淵 天旱沉虎骨 則有應 신증동국여지승람

3, 羽嶺 在縣南五里 諺傳 有鶴來集客館南橋 飛過此嶺 羽毛零落 故名. 신증동국여지승람

 

출처 백승호 벌력 콘텐츠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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