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문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홍천읍지 이야기 7] 누정(樓亭)
조선 시대 홍천의 랜드마크, 범파정
용석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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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15 [10:4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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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미정(위)과 아양정(아래) 

 


조선 시대 홍천의 랜드마크
, 범파정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정자(亭子).

 

정자는 풍광 좋은 곳에서 자연과 풍류를 즐기는 건축물이다. 정자는 대개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 있어 주변 경관을 감상하기 좋은 열린 공간이다. 누각(樓閣)은 규모 면에서 정자보다 크고 웅장하다. 대개 복층 이상의 구조로 손님을 맞이하고 연회의 장소로 많이 쓰인다.

 

정자는 자연 안으로 들어가고, 누각은 자연에서 한걸음 물러난다. 정자는 단층으로 마루가 낮고, 누각은 복층 이상으로 마루가 높다. 정자는 사적인 영역이며, 누각은 공적인 공간이다. 누각은 정자의 형뻘쯤 된다. 이런 구분은 개념의 경계이지 절대적이지 않다. 누각의 형태를 띤 정자도 꽤 있다. 대표적인 예가 범파정(泛波亭)이다.

 

범파정(泛波亭)

 

범파정은 1547324일 부임해 1551213일 병환으로 홍천 현감에서 물러난 노연령이 지었다.

 

현의 동쪽 2리에 8칸으로 지었다고 한다. 홍천현읍지는 동쪽 1리에 있다고 하고, 대동지지는 동남쪽 2리라고 적었다. 지은 지 100여 년이 흐른 1658년 원만춘(1658. 2. 20 ~ 1661. 3. 11) 현감이 13칸으로 중수(重修) 했다. 그리고 다시 중수한 지 170여 년 후인 1829년 한여(1825. 1. 9 ~ 1829. 6. 24) 현감이 개건(改建) 했다.

 

범파정(泛波亭)파도 위에 떠 있는 정자라는 뜻으로 미루어 제법 높은 터에 자리 잡은 듯 하다. 범파정은 객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송병선의 문집 연재집화양강을 건너 읍으로 들어서 범파정에 올랐다. 범파정은 빈관의 문루다.1라고 적고 있다. 이름은 정자지만 누각의 형태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범파정은 조선시대 홍천의 랜드마크였다.

 

홍천을 찾은 양반들은 한 번쯤은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범파정에서 홍천 현감과 술 한 잔을 하며 시 한 수 정도는 지어야 요즘말로 샐럽(Celebrity) 대접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홍천현읍지12, 관동지33편의 범파정에 관한 시가 남아 있다. 제영(題詠) 항목이다. 제영은 특정한 사물이나 풍광을 대상으로 지은 시를 말한다. 조선시대 우의정과 좌우정을 지낸 정유길(1515 ~1588)도 범파정에서 바라본 풍경을 시로 남겼다.

 

鄭惟吉 詩

山水中間松桂林

聞君閑臥濯煩襟

洞天形勝惟高閣

太守風流只一琴

黃鶴可招知異境

白鷗相近絶機心

春來定有桃花浪

入岸魚舟恐不禁

 

정유길 시

산수 한 가운데 아름다운 소나무 숲

듣자니, 한가로이 누워 번뇌를 잊기 좋다 하네.

풍광 좋은 곳에 멋스러운 누각이 펼쳐지니

태수의 풍류는 거문고 하나로 족하다.

황학이 날아올라 이색적인 풍광 연출하고

흰 물새 가까이 하니 거짓된 마음 사라진다.

순리대로 봄이 오니 복숭아 꽃 물결치고

언덕가 드나드는 낚싯배 멈추지 않는다.

 

1899년 발행한 홍천군읍지에 범파정이 폐() 했다고 적혀 있다. 1872년 지방지도에 범파정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872년까지는 있었던 듯 보인다.

 

가장 오래된 누각, 학명루

 

학명루(鶴鳴樓)는 홍천읍지에 기록된 누정 중 가장 오래전 누각이다.

 

1448년에 봄에 부임한 윤지 현감이 관아 안에 5칸으로 지었다. 윤지는 부임 후 홍천에 변변한 누정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며 3년째 되던 해인 1450년에 객관 동쪽에 누각을 지었다. 누각 앞에 못을 파고 연꽃을 심었다. 홍천초등학교 정문 앞 공용주차장 자리로 추정된다. 못에 담을 물은 마지기와 잿골에서 내려오는 물을 이용한 듯 보인다. 현재 모두 복개되어 지하로만 흐른다. 학명루라는 이름은 고을 노인의 제안했고 윤지가 그 말을 따랐다.

 

객관 앞 수십 걸음쯤 되는 곳에 옛날에 학교(鶴橋)라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처음 다리가 이루어졌을 때에 학이 와서 울었는데, 그것으로 이름을 삼은 것입니다. 학은 우리 고을의 상서입니다. 이것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좋겠습니다.2

 

세종의 둘째 아들 안평대군이 鶴鳴樓라는 세 글자 편액을 써서 누각을 빛나게 했다. 모두 서거정의 사가집에 실린 학명루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강원도지학명루기가 실려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홍천읍지에는 안평대군이 편액을 쓴 내용이 빠져있다. 학명루기로 미루어 보건대 일명 학다리로 불렸던 학교((鶴橋)1450년 훨씬 이전에 지어진 다리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희망리 신흥가구 옆에 설명 문구와 조형물만 남아있다. 학명루는 홍천군읍지 1899에 지금은 폐(今廢)하고 없다(無存)고 기록되어 있다

.

 

무심의 경지를 동경한 양망헌

 

양망헌(兩忘軒)과 관수당(觀水堂)은 각각 범파정 동쪽과 서쪽에 있던 누정이다. 양망헌은 1675년 이세백(1675. 2. 2 ~ 1676. 9, 21) 현감이 2칸으로 지었고, 관수당은 1634년 이한(1634. 2. 7 ~ 1636. 1. 1) 현감이 3칸으로 지었다. 양망헌은 담장 안쪽에, 관수당은 담장 밖에 있었다.

 

양망헌을 지은 이세백은 관직이 좌의정에 올랐다. 그의 호를 딴 우사집(雩沙集)양망헌기(兩忘軒記)’를 남겼다.

 

내가 홍천에 온 지도 7개월이 지났다. 범파정 동쪽에 있는 아사의 남쪽에 연회와 휴식을 위한 조그만 집을 지었다. 중략. 이름을 양망이라 하였다.3

 

양망(兩忘)은 상대적이고, 이분법적이고, 이원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무심(無心)의 경지다. 양망헌은 홍천현 읍지 백원정사 필사본 1890 ~ 1895에 지금은 없다(今無)고 적혀 있다.

 

 

관수당(觀水堂)

 

관수당(觀水堂)은 한자 그대로 홍천강물을 즐기기에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객사의 담장 밖 서쪽에 있었으니 신장대리나 희망리 홍천강변 어디쯤으로 추정된다. ()은 주거가 가능한 별채다. ()은 경관을 감상하고 심성을 수양하는 방으로 대부분 사랑채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미정(四美亭)

 

사미정은 이구(1469 ~ 1526)가 지었다. 이구는 사육신 박팽년의 외손자이다. 8형제 중 둘째였던 이구는 형제 중 5명이 무오사화와 연관돼 죽임과 고통을 당하자 홍천 결운리로 내려와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현의 동쪽 2리쯤 남천 상류에 사미정을 세웠다. 6. 26 때 반파되어 홍천강에 사미정의 목조들이 떠내려갔다는 동네 사람들의 증언이 있지만 여지도서 1757 ~1765에 이미 사미정은 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6. 25 당시의 사미정도 중수되거나 새로 지어진 사미정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사미정은 1972년 이구의 후손들이 복원한 것이다. 원래 사미정은 미진 8차 빌라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사미(四美)는 좋은 날(양신), 아름다운 경치(미경), 넉넉한 마음(玩賞心), 즐거운 일(樂事)을 말하며 사미정은 이구의 호이기도 하다.

 

군자정(君子亭)

 

군자정(君子亭)6칸으로 아사 좌측 동쪽의 담장 밖에 있었다. 1829년 한여 현감이 개건하였다. 청안당((靑眼堂)은 객관 내에 있었으며, 소학정(巢鶴亭)은 현의 서쪽 1리에 있었다. 소학정은 학들과 어울려 노니는 정자란 뜻이다. 아양정(峨洋亭)은 화촌면 군업리에 이계선 중종에서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후에 종질 이구연이 중수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지금의 아양정은 6. 25 때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아양은 아아양양(峨峨洋洋)의 줄임말로 아아는 태산같이 높음을, 양양은 바다처럼 넓음을 의미한다.

 

홍천읍지에는 학명루, 범파정, 양망헌, 관수당, 사미정, 군자정, 청안당. 소학정, 아양정 총 9개의 누정이 기록되어 있다. 이 중 사미정과 아양정이 후손들에 의해 복원되어 있고, 범파정은 홍천군에서 위치 비정을 끝내고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

 

 

1. 渡華陽江. 入邑登泛波亭. 亭是賓館門樓. 연재집

2. 客館前數十步. 古有橋曰鶴. 始橋成. 鶴來鳴. 因以爲號. . 吾鄕之瑞也. 請以是名之. 사가집

3. 余至洪之越七月. 乃卽其泛波亭之東衙舍之南. 治隟地而構小軒. 以爲燕休之所. 中略. 名之曰兩忘. 우사집

 

 

 

출처 백승로 벌력 콘텐츠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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