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문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홍천읍지 이야기6] 홍천강(洪川江)
벌력천, 녹효수, 남천, 화양강, 그리고 홍천강
용석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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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08 [12:3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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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력천, 녹효수, 남천, 화양강, 그리고 홍천강

 

▲ 대동여지도에 그려진 홍천강과 북한강 그리고 한강. 이 강물에 배를 띄어 한양에서 필요환 물품을 구하고 특산품을 한양으로 올려 보냈다.


 

만약, 홍천에 홍천강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미약골에서 발원한 홍천강물은 홍천의 구석구석 400리를 굽이 돌아 북한강이 되고,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만나 한강이 되어 서해로 흘러 들어간다.

 

조선 시대 홍천은 그 강물에 배를 띄워 한양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해왔고, 홍천 특산품을 한양으로 올려 보냈다. 그렇게 생겨난 진리 나루새는 홍천의 관문이면서 경제의 중심지였다.

 

진리는 홍천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중의 하나이다. 홍천읍지 중 마을 이름을 처음으로 기록한 『여지도서 1757~1765』에 진리를 첫 마을로 소개하고 있다. 육상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조선 시대 홍천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만약 홍천강이 없었다면 외부와 물자 교역은 더디었을 것이고, 그만큼 홍천의 경제 발전도 더디었을 것이다. 홍천강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요즘의 펜션 또한 그 수가 현저히 적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홍천강은 홍천읍지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가장 먼저 등장한 이름은 건치연혁에서 살펴본 벌력천이다. 고구려와 신라 때 지명도 벌력천의 이름을 빌어 벌력천현이었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홍천의 가장 오래된 이름이다. 『대동여지도』와 『동여도』에 성산리와 공작산 사이로 흐르는 홍천강 위에 벌력천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남천이 등장한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 1530』부터이다.

‘남천, 현의 남쪽 2리에 있다. 서쪽 춘천부 소양강으로 유입된다.1’

홍천강의 두 번째 이름은 남천(南川)이었다.

현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천이다.

남천은 남산만큼이나 많은 지명이다.

 

『동국여지지 1656』는 조금 더 자세하게 홍천강을 설명하고 있다.

‘남천. 발원은 현의 동쪽 70리에 있는 여러 산에서 나오는 계곡물이 합쳐진 것이다. 서남쪽으로 흘러 현의 남쪽 2리를 지나간다. 또한 서쪽 90여 리에 있는 양근군으로 유입된다. 미원현 북쪽 회수로 들어간다.2’

 

홍천강의 발원지인 미약골이 현재 포장된 도로를 따라 47.8km이니 『동국여지지』 발행 당시인 1656년에는 미약골을 발원지로 보지 않았던 듯싶다. 양근군은 지금의 양평이다. 미원현은 지금의 가평군 설악면이다. 회수는 중국에 있는 강 이름이지만 미원현 북쪽에 있는 청평호 근처의 지명으로 추측된다.

 

 

『여지도서』에서는 발원지를 한 곳이 아닌 세 곳으로 기록하고 있다.

 

‘남천. 한 줄기는 현의 동쪽 강릉 경계에서 시작되고, 한 줄기는 현의 동북쪽 인제의 경계에서 시작되며, 한 줄기는 현의 동남쪽 공작산 뒤에서 시작된다. 이 줄기들이 합쳐져 범파정 앞으로 흘러 관천강과 합쳐지고 춘천 소양강 하류로 유입된다.3’

강릉 경계에서 시작되는 발원은 내촌천으로, 인제 경계에서 시작되는 발원은 경수천과 장남천으로, 공작산의 발원은 군업천과 덕지천으로 이어져 홍천강을 이룬다.

 

『관동지 1829~1832』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화양강이 등장한다.

 

‘화양강. 현의 남쪽 2리에 있다. 서쪽 춘천부 관천강으로 유입된다.4’

홍천 초·중·고등학교 교가의 단골 가사인 화양강은 홍천강의 또 다른 이름이다. 13개의 홍천읍지 중 『관동지』에만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기의 학자였던 송병선(1836~1905)이 지은 연재집(淵齋集)에도 화양강이 등장한다.

 

“이부자리에서 밥을 먹고 신다현을 넘으니 홍천이다. 화양강을 건너 읍내에 들어가 범파정에 올랐다.5”

 

신다현은 홍천의 관문인 신당 고개다. 범파정에 관한 한시를 모아 번역한 ‘華陽閑錄(화양한록)’의 저자 현원철 님은 ‘화양한록’에서 “화양강은 홍천읍 뒤편에 있는 <석화산>에서 굽어볼 때 시야에 들어오는 홍천강의 일정 부분만 떼어 화양강이라고 부른다.”라고 정의했다.

 

덧붙여 “<華>는 <花>와 같은 통하는 글자로 석화산에서 따온 것이고, 陽(볕 양)은 ‘水之北 山之南’의 뜻이므로, 화양강은 석화산 남쪽에 있는 강이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부연하면 풍수에서 북쪽에 산이 있고, 남쪽에 강이 있는 곳을 陽(양)이라 한다. 한양(漢陽)은 한강의 북쪽을 뜻하고, 화양강(華陽江)은 석화산 남쪽에 있는 강이 된다.

 

 

‘홍천강’이 등장하는 읍지는 『대동지지』와 『강원도지』다.

 

‘홍천강. 남천이라고도 부른다. 남쪽 2리로 강물이 지나간다.6’ ‘남천. 일명 홍천강이다. 군의 남쪽에 있다. 서쪽 춘천부 소양강으로 흘러 들어간다.7’

 

두 읍지는 홍천강과 남천을 모두 적었다. 거기에 더해 『대동지지』와 『강원도지』는 홍천강을 이루는 천(川)도 기록하고 있다. 『대동지지』는 관천강, 풍천, 삼마치천, 명암천, 양덕원천, 군자곡천, 북천을, 『강원도지』는 군자천, 풍천, 명암천, 관천, 귀미천의 위치와 시작 지점을 적었다. 귀미천은 영귀미천의 오기로 보인다.

 

『홍천읍지』, 『화산현지』 『홍천현읍지』 『홍천군읍지』, 『홍천읍지』는 모두 남천으로 기록되어 있고 범파정 앞에 있으며 관천강 혹은 소양강 하류로 흘러 들어간다고 적고 있다. 『홍천읍지』는 남천을 남산으로 오기했다.

 

정리하면 홍천읍지에 등장하는 홍천강의 이름은 4개이다. 고구려 시대와 신라 시대의 벌력천, 대부분의 홍천읍지에 기록되어 있는 남천, 『관동지』에 기록되어 있는 화양강, 그리고 『대동지지』와 『강원도지』에 등장하는 홍천강이다.

 

 

덧붙임 : 읍지는 아니지만 다산 정약용이 지은 『산수심원기』에 홍천강에 대한 새로운 이름이 등장한다.

 

‘녹효수는 동쪽에서 와서 합쳐진다. 녹효수의 시작은 강릉부 백치(柏峙)와 홍천현의 큰 송치, 작은 송치다.8’라고 기록되어 있다. 송치는 소나무가 많아서 솔재 또는 송치라고 불렀다. 솔치의 작은 고개를 작은 솔치(小松峙), 큰 고개를 큰 솔치(大松峙)라고 했다.

 

화촌면 장평리에서 서석면 어론리로 넘어가는 56번 국도의 터널 이름이 솔치재터널이다. 뒤이어 북창, 건치가리, 풍천, 삼마치천, 며느리고개, 명암수, 양덕천, 팔봉, 군자곡, 관천강을 거쳐 북한강에 합류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정약용은 『산수심원기』에서 강(江) 대신 수(水)를 썼다. 남한강은 습수(濕水), 북한강을 산수(汕水)로 기록했다. 녹효수는 녹효강의 뜻이 된다. 녹효는 통일신라 때 홍천의 이름이다.

 

1. 南川 在縣南二里. 西流入春川府昭陽江.『신증동국여지승람』

2. 南川 原出縣東七十里合諸山谷水. 西南流經顯南二里. 又西流入九十餘里至楊根郡. 迷原縣北入淮水. 『동국여지지』

3. 南川 一派在縣東江陵界出. 一派在縣東北間獜蹄界出. 一派在縣東南間孔雀山後出. 衆流合水爲泛波亭前流 流入春川昭陽江下流 冠川江合水.『여지도서』

4. 華陽江 在縣南二里 西流八春川府冠川江.『관동지』

5. 蓐食踰神茶峴 洪川界也. 渡華陽江 入邑登泛波亭.『연재집』

6. 洪川江 一云南川 南二里詳水經.『대동지지』

7. 南川 一名洪川江 在郡南. 西流入春川郡昭陽江. 『강원도지』

8. 綠驍水自東來會. 綠驍水源出江陵府柏峙及洪川縣大小松峙. 『산수심원기』

 

 

출처 백승호 벌력 콘텐츠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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