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문화
넘침을 경계하는 술잔 ‘계영배’.. 홍천의 문화유산을 체험한다
홍천문화원 문화대학 제6강의실서 17일, 오후7시
용석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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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16 [13:5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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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영배(戒盈盃), . . 과유불급의 지혜가 담긴 술잔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다. 70% 이상을 따르면 잔속의 술이 모두 빠져나가 한 방울도 남지 않는 신비한 술잔이다.

 

절주배(節酒杯)라고도 부른다. 욕심을 부리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 계영배를 만든 이가 홍천에서 나고 자란 우삼돌(禹三乭)이다.

 

홍천 산골에서 질그릇을 구워 팔던 우삼돌은 왕실에 그릇을 납품하던 광주분원에 나가 사기그릇을 만들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우삼돌은 광주분원의 지 외장을 찾아가 지 외장의 제자가 된다. 8년 동안 밤낮으로 그릇을 만들기에 매진한 우삼돌은 드디어 왕에게 진상하게 될 설백자기(雪白瓷器)를 만들어 낸다. 우삼돌은 명옥(明玉)이란 새로운 이름과 함께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

 

이즈음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가 따라오고 급기야 친구들은 술과 여자로 우명옥(우삼돌)을 방탕한 생활로 이끈다. 술과 여자로 나날을 보내던 우명옥은 끝내 모든 가산을 탕진하고, 친구들과 질그릇을 팔러 뱃길을 떠났다가 풍랑을 만나 겨우 목숨만 건지게 된다. 술과 향락에 빠져 나락으로 떨어진 우명옥은 몇날 며칠을 두문불출하며 마침내 ‘가득 참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계영배(戒盈杯)를 만들어낸다.

 

홍천전설로 내려오는 계영배 이야기이다. 계영배에 얽힌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11월 17일 오후 7시 홍천문화원 문화대학 마을관광해설사(제6 강의실, 강사 전장수) 강의에서 만날 수 있다. 이날 참석자에게는 계영배에 직접 술을 따라 볼 기회도 제공할 예정이다. * 문의 010-8793-0579

 

 

▲    계영배의 내부 이미지, 잔 내부에 관이 있어서 일정량의 술을 따르면 대기압으로 인해 잔 밑에 있는 그릇으로 술이 빠져 나간다.

 

 

 

▶다음은 1989년 홍천군지에 실린 계영배의 유래 전문이다.

 

계영배(戒盈盃)의 유래

 

洪川 산골에 질그릇을 구워 파는 우삼동(禹三乭)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항상 질그릇을 굽는 일 보다는 사기그릇으로 유명한 분원으로 나가 일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이런 소망을 다져온 그는 짐을 꾸려가지고 분원으로 가서 지외장에 제자가 되었다.

 

고향을 떠날 때부터 남달리 큰 뜻을 품었는지라 사기그릇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익히느라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밥 먹고 잠자는 것도 잊을 때가 많았다. 흙만 가지고 사기그릇 만들고 연구하는 일에만 정진한지 8년. 그의 기술은 뛰어난 경지에 도달했다. 스승도 그를 사랑하고 기술을 칭찬하여 師弟간의 정이 매우 깊었다.

 

피땀 어린 노력 끝에 이루어진 그의 기술은 만인의 인정을 받아 마침내 왕에게 진상할 반상기를 만들게 되었다. 스승은 제자의 영광에 기쁨을 감추지 못해 새 옷을 만들어 입히고 明玉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삼돌이」란 호칭 대신 「明玉」이라는 유명한 도공으로 만인으로부터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그의 친구들은 명옥이를 시기하기 시작했다. 자기들 보다 늦게 들어와 빨리 출세한 명옥을 칭찬하기는커녕 시기하여 그릇이 잘 안 만들어지게 할 흉계를 꾸몄다. 마음이 착한 명옥은 친구들의 음흉한 속셈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밤낮으로 그릇 만드는 일에만 성심성의를 다했다.

 

드디어 반상기가 완성되어 임금님께 진상됐다. 왕은 반상기를 받아 보고 그 재주를 칭찬하여 특별히 상금까지 내렸다. 그 후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 그의 재주를 높이 평가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릇을 주문해 왔다. 명옥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했고 돈도 상당히 모으게 되었다.

 

어느 날 명옥은 지친 몸을 쉬려고 할 때 동료들이 찾아와 뱃놀이를 가자고 유혹했다. 동료들은 술과 계집을 모르는 명옥에게 술과 계집을 안겨 미치게 하여 다시는 도자기 연구를 못하도록 계략을 짠 것이다. 동료들은 예쁘고 요염한 한 기녀에게 갖은 아양을 떨어서 명옥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단단히 당부를 했었다.

 

소내강에는 배 한 척이 두둥실 뜨고 배 안에서는 노래 소리가 흥겹게 퍼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기녀들도 명옥이가 돈을 많이 모았다는 소문을 들었는지라 제각기 아양을 떠느냐고 야단 법석이었다. 명옥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술과 계집에 미쳐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집에 돌아와서도 기녀들의 향긋한 분냄새가 자주 코 속으로 스며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다음날 명옥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아침도 먹지 않고 돈주머니를 차고 기녀 집으로 달려가 하루 종일 기녀들을 희롱하며 술을 마셨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그는 술과 계집에 취했다. 동료들은 자기들의 계략이 들어맞았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스승은 명옥의 일을 걱정하면서 속을 썩였다. 처음엔 언제가 마음을 고쳐먹겠지 하고 기다렸으나 명옥의 방탕생활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기만 했다. 스승은 명옥이가 노는 술집으로 찾아가 마당에 거적을 깔고 꿇어 앉아 눈물로 정신 차릴 것을 애원했다.

 

이럴 즈음 명옥의 동료들은 그를 영영 질그릇 꾼으로 만들기 위해 또 한 꾀를 생각해 냈다. 이때 명옥은 있는 돈을 술과 계집에 모두 탕진해 버려 생활이 몹시 궁핍했다. 촌으로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질그릇을 외상 주고 가을 추수 때 곡식으로 받으면 이익이 많으니 질그릇 장사를 하자는 꾐이었다. 당장 돈이 아쉬우므로 그들과 함께 배를 타고 해남으로 떠났다.

 

그러나 하늘이 도움인가, 명옥의 재주를 아까워함인가. 중도에 폭풍우를 만나 배가 뒤집혔으나 동료들은 모두 빠져 죽고 명옥만 혼자 구출되었다. 널빤지 쪽을 붙들고 바다에 떠 있다가 간신히 고기잡이배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이다.

 

명옥은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지난날의 방탕이 후회스러웠다. "나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몸이다. 열심히 연구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그릇을 만들어 보자"고 굳게 결심했다.

 

다음날부터 그는 매일 새벽 남들 보다 일찍 일어나 몸에 찬물을 끼얹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석달 열흘 동안 백일기도를 드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는 다음날부터 방에 들어앉아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들었다. 그런지 얼마 지난 섣달 그믐날 명옥은 조그만 술잔 하나를 스승인 지외장에게 바쳤다. "선생님, 그동안 은혜가 많았읍니다. 선생님의 덕택으로 이런 술잔을 만들게 되었사오니 한번 보십시요"하면서 그 잔에 술을 가득히 부어 놓았다. 그러자 술잔에 가득하던 술이 한 방울도 남지 않고 없어졌다. 이 때 잔은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신기하기 한량없었다.

 

스승은 잔을 이리저리 한참 동안 훑어보다가 “이 잔은 술잔이므로 사람이 술을 마시게 될터인데 술이 없어지면 어찌하나?”하고 물었다. 명옥은 이번에는 “자 보십시요”하면서 잔에다 술을 반쯤 부었다. 그러자 술이 그냥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것을 보십시오. 가득 부어 놓지 않으면 술이 그대로 있습니다. 이 술잔을 계영배(戒盈盃)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스승은 그제서야 무릎을 쳤다. 명옥이가 술로서 망했으니 술을 조심해서 마시라는 뜻에서 과하게 마시지 말라는 교훈이 담긴 것으로 깨달았다. 세상 사람들은 또 다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후 그 술잔은 의주의 임씨라는 사람이 우연한 일로 깨뜨렸는데 이상한 일은 그 잔이 깨어지던 날 명옥도 세상을 떠났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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