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
한국재계의 거목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타계
용석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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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25 [19:24]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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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를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입원해 있던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삼성은 이날 오전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께서 2020년 10월 25일 별세했다"며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함을 양해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의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 지하 2층에 마련중이며,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50인 미만의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투병 6년5개월만이다. 고인은 2014년 5월 10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켜 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까지 받고 소생해 치료를 이어왔다.

고인은 선친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3남으로 이병철 회장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2014년 쓰러질 때까지 27년간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애초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형인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호암의 눈밖에 나면서 이 회장이 후계자로 낙점됐다.

1987년 그룹회장에 취임한 고인은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닦았으며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로 삼성전자를 세계 브랜드 가치 5위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특히 이 회장은 과감한 반도체 투자로 일본 IT업계를 도태시키고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쾌거를 이뤘다. 일본 재계는 이 회장이 반도체 불황기에 사운을 건 반도체 투자를 단행했을 때 이를 비웃었으나, 그후 반도체 호황기가 도래하면서 IT시장을 빼앗기자 "일본 자본주의 역사상 최대 판단 미스"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외 다른 IT분야에서도 약진해 2006년 글로벌 TV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스마트폰 역시 2011년 애플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이래 10년째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과감한 승부사적 투자와 혁신으로,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9천억원이던 삼성그룹 시가총액은 이 회장이 쓰러지기 직전 해인 2014년에 318조7천634억원으로 348배 폭증했다. 매출 역시 9조9천억원에서 338조6천억원으로 34배로 많아졌으며, 자산은 8조원에서 575조1천억원으로 70배 넘게 늘어나 명실상부한 재계 1위를 차지했다.

이 회장은 YS정권 시절인 1995년에는 베이징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해 정가를 발칵 뒤집기도 했다.

이 회장은 그러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아야 했으며, 특검팀에 의해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되자 2008년 회장직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발표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재계·체육계 건의로 단독사면된 이 회장은 2010년 경영일선에 복귀했으나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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