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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적 종속'은 여성 차별이 아니라는 예장합동

홍천뉴스투데이 | 기사입력 2020/09/29 [01:09]

'기능적 종속'은 여성 차별이 아니라는 예장합동

홍천뉴스투데이 | 입력 : 2020/09/29 [01:09]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소강석 총회장) 105회 총회가 끝났다. 총회 신학부가 여성 안수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그 결과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이 실망감은 단지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예장합동 신학자·목사들이 보여 준 빈약한 신학의 위험성 때문이다. 그들의 신학적 논의는 1996~1997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존재론적으로 평등하지만 기능적으로는 종속'이라는 1935년 24회 장로교 총회 결정을 반드시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 보면, 예장합동의 여성 인식이 얼마나 전근대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예장합동 신학부가 총회에 제출한 보고서 중 여성 안수 반대와 여성 차별의 근간을 이루는 '존재론적 평등, 기능적 종속'이라는 애매모호한 교리를 다루고,  이 교리가 여성에게 얼마나 차별적인지 분명히 드러내고자 한다.

 

'존재론적 평등, 기능적 종속' 교리는 여성을 차별하고 여성 역할을 남성을 보조하는 데 한정시킨다. 한마디로 이 교리의 강조점은 '동등성'에 있지 않고 '종속성'에 있다. 이 교리의 기원은 칼뱅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회에는 전통적으로 '여성에게서도 하나님 형상을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논쟁이 있었다. 초대교회 교부 크리소스토무스는 '남성만이 하나님 형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아퀴나스는 '하나님 형상이 남성과 여성에게 동일하게 발견되지만, 남성의 경우 하나님 형상은 여성에게는 발견되지 않는 방법으로 발견된다'며 남성의 하나님 형상이 더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츠빙글리는 '여성은 하나님 형상인가?'라는 질문에 '아니다'고 대답하며 '여성은 남성을 위해 창조됐고 남성의 형상이기 때문에 남성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무스클루스는 남성과의 '결혼' 혹은 '관계'에 의해서만 여성은 하나님 형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여성에게는 남성과 동일한 하나님 형상이 없다는 주장이 팽배하던 시절, 칼뱅은 창세기 1장 26절 주석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말했고, 창세기 2장 18절 주석에서는 '모세가 남성과 여성의 평등성을 나타내려고 했다'고 하면서 '여성은 남성과 존재론적으로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여성에게는 하나님 형상이 없다'거나 '여성은 아이를 낳기 위해 창조됐다'는 수준을 벗어난 획기적인 주장이었다.

 

하지만 칼뱅은 16세기 가부장적 사회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기 때문에, '자연 질서는 여성이 남성의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성과 여성은 영적 거룩함이나 구원의 영역에서는 동등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자연 질서에 따라 여성이 사회에서 지도력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못하고, 가정 안에서 남편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뱅은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여선지자 훌다와 드보라의 경우, 남편이 없었기 때문에 사회적 권위를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런 경우는 특수하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 '존재론적 평등, 기능적 종속' 교리는, 여성은 항상 남성보다 낮은 지위에서 남성의 통제를 받아야 하고 사회와 교회에서 남성을 지도하는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남녀 차별적 주장이다. 여성이 온전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해 어떤 사회적·재산적 권리도 누리지 못하던 16세기에 만들어지고, 1907년 총회와 1935년 총회에서 결정된 낡은 교리가 2020년 예장합동에서는 만고불변의 진리로 버젓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존재론적 평등, 기능적 종속' 교리는 시대가 변하면서 적용점이 점점 변해 왔다. 현재 '존재론적 평등'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할 인격적·영적 존재이며, 시민으로서 동등한 사회적 권리와 기회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뜻한다. 존재론적 평등이 구원론적 동등성만 아니라 사회 모든 영역에서도 똑같이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동등성으로 해석되고 있다. 예장합동도 이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예장합동이 여성 목사를 제외하고, 여성 대통령·장관·사장·장교·판사 등 여성 리더십을 향해 비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현재 예장합동은 다른 영역을 모두 제외하고 오직 교회 내 여성 리더십을 금지하는 일에만 '기능적 종속'을 적용하고 있다. 칼뱅은 '자연 질서' 혹은 '창조질서'를 근거로 여성의 종속을 주장했고, 이를 근거로 사회 모든 영역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를 근거로 여왕이 다스리는 시대를 악한 시대라고까지 말했다. 예장합동이 자연 질서 혹은 창조질서를 운운하며 여성의 종속을 말하려면, 칼뱅처럼 교회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종속을 말해야 하고, 여성이 남성에 대해 지도력을 갖는 모든 일에 반대해야 한다. 창조질서는 인간이 사는 모든 영역에서 시대를 초월하여 지켜져야 할 절대 질서이기 때문이다.

 

창조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교회 여성만 단속할 것이 아니라 교회 밖 여성들을 향해서도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여성 대통령도, 여성 총리도, 여성 당대표도, 여성 대법관도, 여성 교수나 여성 사장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교회를 다니는 여성에게는 그 모든 자리에서 내려와 조용히 남성들 지도를 받는 일이 여성 신자의 본분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지금처럼 교회 내에서만 선택적으로 기능적 종속을 말하는 것은 창조질서를 무시하는 행위이며, 이 교리에 대한 올바른 적용이 아니다.

 

그런데 예장합동 신학자·목회자들은 정작 교회 밖 여성 지도자들에 대해 침묵한다. 본인이 성차별주의자라고 불리는 일을 껄끄러워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교리가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능적 종속'에서 '종'은 상하 관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 여성이 남성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또한 '속'은 누군가에게 매여 있다는 점을 전제하기 때문에 자유와 반대된다. '종속'이란 말은 아무리 좋게 봐도 남성이 위에 있고 여성은 아래에 있다는 의미다. 여성은 독립적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의지와 형편에 상관없이 남성에게 복종해야 하는 의존적 존재라는 뜻이다. 누구도 이런 관계를 '평등'한 관계라고 말하지 않는다.

 

혹자는 '기능적' 종속이기 때문에 존재론적 '평등'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존재론적 평등'은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소명을 따라 사회와 가정과 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결정할 자유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억압적 구조 속에서 남성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다. 명백한 남녀 차별이다. 결국 여성의 '기능적 종속'을 주장하는 일은, '여성이 기독교인이 되려면 인간으로서 자유와 독립을 포기하고 차별받으며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앞에 아무리 '존재론적 평등'을 외쳐도, 삶의 영역(특히 교회)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라고 말하는 순간, 예장합동 교회는 여성을 차별하는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고 정훈택 교수는 "'기능적 종속'이 의미하는 것을 현대사회에서는 불평등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교회와 가정에서 가르치는 권한과 다스리는 권한을 여성에게 불허하는 일을 차별이라고 부른다"고 언급했다. 그는 '기능적 종속'을 교회 내 질서 내지 예배 시 직무 영역으로 축소하는 해석을 "성경이 여성을 차별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하는 편의주의적 해석"이라고 비판하며, 차라리 솔직하게 '존재론적 종속성'을 주장하자고 말한다. 차라리 이런 해석이 솔직하다. '기능적 종속'이란 단어가 지닌 차별성을 인정하면서, 성경에 대한 이런 해석이 여성 차별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예장합동은 더 이상 '존재론적 평등, 기능적 종속'이라는 말로 여성 차별적 신학을 숨기지 말라.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시대는 변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런 애매모호하고 모순적인 표현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장합동은 이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어설프게 여성 차별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 말고, 예장합동이야말로 '여성 안수 반대'를 개혁주의와 성경무오설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자 교단 역사성·전통성·보수성의 핵심 가치로 지키는 여성 차별주의 교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 이에 사람들이 비난하고 여성들이 교단을 빠져나가도 개의치 않고 이 입장을 고수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면, 지금까지 고집하던 여성 차별적 입장을 버리고 여성도 복음의 기쁨을 남성과 동등하게 누리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따라 모든 영역에서 동등하게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진정한 평등을 추구하는 교단으로 변화하여 여성 차별주의 교단이라는 오명을 벗고 여성들이 교회로 돌아올 수 있는 기반을 다져야 한다. 예장합동은 여성들과 사회로부터 '남녀 차별로 갈 것인지, 남녀평등으로 갈 것인지'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선택은 예장합동 총회 목사들과 신학자들의 몫이며, 그에 따른 책임도 그들이 져야 할 것이다. 평생을 예장합동에서 신앙생활해 온 입장에서 예장합동이 교회를 살리는 지혜로운 선택을 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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