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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익희칼럼]‘어머니의 목소리와 나비의 꿈’
용석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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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17 [20:5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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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익희  편집국장

 혼란스러운 여름에, 꿈을 꾸면 나비가 되었다가 깨어나면 마스크를 쓴 나비가 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어떤 현자들은 그래도 꿈은 이루어지니 천천히 꿈을 향해 가면 된다고 교훈 했었다. 하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나는 아들에게 조금 더 느리게 더 단순하게 사는 것을 조언했다.

 

나비의 꿈(胡蝶之夢)은 중국 장자에 의한 설화 대표작으로 꿈속에서 나비로 팔랑팔랑 날고 있다가 깨어났지만, 과연 자신은 나비가 된 꿈을 꾸고 있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자신은 나비가 꾸고 있는 꿈인지 혼돈하는 설화다. 이 이야기는 장자의 생각이 잘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서 유명하다. '무위자연'을 장자의 말로 하면 목적의식에 묶이지 않는 자유로운 경지로, 그 경지에 이르면 자연과 융화해 자유로운 삶의 방법이 생긴다고 장자는 말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세상은 생각하기에도 끔찍하고 기대하기도 어려울 만큼 불확실하다. 단순히 희망만을 갖고 안주하면서 지내기에는 너무 어렵고도 험난한 미래가 확실하게 담보되어 있다. 살아보니 그렇고 먼저 간 현자들도 그랬고, 지금 앞서서 가는 이들도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를 알 수 없는 위험과 불확실한 판단으로 인해 우리는 위기에 또 다시 봉착할지도 모른다.

 

태풍 장미가 멀어지고 새벽의 단잠을 깨우는 폭우의 소리와 함께 꿈속으로 기다리던 어머니가 찾아 주셨다. 일순간에 돌아간 47년 전, 폭우가 뚝 밑의 우리 집을 덮어 버린 여름 날... 나는 뚝 위에서 누나 손을 잡고 고등학생인 형을 기다렸었다. 소와 돼지가 떠내려가던 폭우로 뒤 덥혀진 동네를 물질하며, 책가방을 위로 하고 조금씩 다가오던 사람은 바로 형이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몪까지 생존을 위해서 사시던 어머니는 그렇게 우리를 가르쳤었다. 무허가로 임대해 장사하던 조그만 구멍가게를 무너뜨리던 용역들과 맞서다가 어머니는 손을 크게 다쳤었다. 나는 그런 용기 있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랐고, 그 용기를 큰 유산으로 가난과 함께 물려받았었다. 97세의 어머니는 타계하시기 전 나에게 늘 세 마디를 말씀 하셨었다. “아..아, 어..어, 이..이...” 아무리 위대한 소리감별사가 있다 하더라도 해석 할 수 없는 어머니의 그 목소리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소리가 안 나와서 글로 쓰신다고 한 시간 동안이나 글씨를 써서 보여주던 어머니의 목소리... 그것은 “아들아 사랑해.. 엄마 언제 집에 갈 수 있니.. 미안해 막내야..”라는 말이었다. “어머니 사랑해요, 식사 잘 하시고 건강해지면 가야죠, 머가 미안해 엄마?” 늘 내가 대답했었던 말이어서 기억나는 어머니의 ‘아, 어, 이’ ... 바로 그런 뜻이었다.

 

코로나 이전의 시대와 코로나 이후의 시대로 나뉘게 되는 이런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어머니를 만나 물어 보았다. 한 때 말씀이 나오실 때 “막내야, 이 한 세상 사는 것이 왜 이리도 힘든가?”라는 말로 나를 울리시던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멀어지셨다.

 

주위를 잘 살펴보면, 내가 이렇다고 말하는 이는 알고 보면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것 같다. 내가 이만큼 이루었다고 말하는 이는 들여다보면 장사꾼에 불과해 보인다. 글을 쓴다고 하는 이는 이중인격자가 많은 것 같고, 사회공헌을 한다는 기업가는 수전노에 비길 만 하다. 똑똑하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이는 '공수표'를 남발하는 사기꾼에 불과해 보인다.

 

진심(眞心)으로 그렇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 ‘달콤한 인생’이야기다. “몰랐어? 인생은 고통이야?” 황정민(야비한 깡패)이 이병헌(배신당한 조직원)에게 린치를 가하며 툭 내뱉은 말이다. 섬뜩한 표현이었지만 결국 그는 상대에게 복수를 당하게 되고 ‘너는 도대체 나에게 왜 그랬냐?’라고 반문당했다. 영화의 이야기지만 삶을 살다 보면 ‘알 수 없고 예기치 못한 불평등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곤 한다. 사실 세상과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행한 일이라도 그 일을 당한 나의 피해의식은 결국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고 인정하게 마련이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거나 있다면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평등을 언급하기도 힘들고 또 그 정책을 시행하기 힘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인간은 과연 평등한가?'라는 원초적인 문제부터 '과연 무엇이 평등인가?' 등 숱하게 어려운 문제들이 있을 터다.

 

그래서였을까? 일찍이 루소는 인간의 불평등의 기원을 자연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으로 구분했다. 전자는 미미한 영향을 미치는 반면 후자는 결국 '사유재산' 때문에 발생한 것이어서 심각한 것으로 규정했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사유재산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인 동시에 사회적 문제의 원인으로도 생각되었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의 등장 배경이 된 결과를 가져왔다.

 

필자가 아는 어느 작곡가이자 가수인 지인의 이야기다. 그는 어느 날 술자리가 무르익자 현재 빅히트한 노래가 원래 본인에게 왔었던 노래였다고 했다. 이유인즉 한 곡이 히트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고 본인은 그럴 능력이 없었다고 술회했다. 정황상 그의 이야기는 사실인 듯 했다. 그도 그럴 법이 건설하는 사람도 크게 성공한 이면에는 정치권이 있었고, 스타가 되고픈 여배우는 심신이 피폐해져 죽음을 택했고,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초개와 같이 여기던 정치인은 이유가 어떻든 구속된 감옥살이를 하면서 법적공방을 이어간다.

 

형평이 필요하지만 판단도 정책도 어려운 이런 세상에서, 갖은 어려움과 술수가 난무한 이 세상에서 어찌 나를 지키고 미래를 준비하고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나간단 말인가? 어쩔 수 없이 장사꾼과 이중인격자, 사기꾼과 잘난 척하는 사람들을 다 제쳐두고 '나'자신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내 자신이 되려고 한다면 모두 내 관심 밖이니 더 이상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모두는 다 자기 앞에 닥친 일을 '가림'하느라 정신없는 사람일 뿐일 것이다. 임대인이든 임차인이든 하루하루가 생애의 마지막이라 생각한다면 좀 달라질 일이다. 내 자신을 찾는 일에 더 몰두하게 되지 않겠는가.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장마가 지나고 코로나가 지나면,  학이 되신 어머니와 함께 가을로 가득할 아름다운 만추(晩秋)도 찾아올 것이다.

 

기고- 한국교육100뉴스 편집국장 노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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