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오피니언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고향 홍천에서 홀대
시암 오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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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15 [16:4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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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홍천군 서면 반곡리에 산과 농막을 가지고 있는 인연으로 남면 제곡리 최승희 생가 터를 수십 회를 다녀왔습니다. 오갈 때마다 언제나 안타깝고 허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홀대받고 있는 최승희 유적을 돌아보며 홍천군의 관광행정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   최승희 유년시절 즐겨가던 제곡리 샘물터 .  햇빛에 바래고 풀숲에 감춰져 있다.  © 홍천뉴스투데이

 


홍천군은 홍천의 역사와 관광발전을 위해 수많은 투자로 관광개발과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에 대해서도 자료를 수집하고 관광자원화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광개발에도 수십, 수백억을 투자하면서도 정작 세계적인 조선의 무용가, 최승희 무용가에 대해서는 투자가 멈춘 채 기존 터조차 점점 퇴색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북한에서 예술 활동을 했으니 공산주의자고, 일본시대에 일제에 협조했으니 친일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승희의 춤은 예술이고 인간의 숭고한 표현의 예술입니다. 태어난 시대의 사상을 초월하고 인간본태의 예술적 승화로 인정하고, 불행한 시대의 선택조차 포용하며 그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 역사인식인데 지나친 좌우의 이념논리로 잣대를 세우다보니 홍천군이 눈치만 보고 결국은 반대에 밀려 세계적인 관광자원을 땅에 묻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게 됩니다.

 

 

 

 


최승희 춤은 그 시대의 세계적인 조선인들의 자존심이고 자랑이고, 한국인이 자랑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인이었습니다. 이것은 홍천군민의 최고의 역사적 자랑거리이며,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최고의 관광자원입니다.

 

 

 

 


최승희 모교인 숙명여자 중, 고등학교에서는 지금도 최승희 무용축제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모든 유명무용가들은 최승희 무용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존경하고 사랑하고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식민시대의 좌절과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무용으로 승화한 한 여인의 삶이 한민족의 영혼을 일깨우는 민족의 영웅으로 칭송을 받아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가녀린 한 여인의 일생을 한민족 춤의 예술로 살리려 노력했던 춤 예술의 영웅을 홍천군에서는 공산주의라, 친일파라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는지요? 이러한 인식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울 수 없는 아픈 역사, 부끄러운 역사도 그대로 보존하고 가치 있고 훌륭한 것은 더욱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후손들의 몫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최승희의 춤 예술에 대한 한국전체에 퍼져있는 인지도에 대한 관광자원은 무한합니다. 그리고 최승희의 일생을 추모하고 존경하고 슬퍼하는 전국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모든 분들이 홍천군에서 태어난 최승희의 역사적 발자취에 순례자가 될 것입니다. 홍천군 남면 제곡리 아름다운 금학산 수태극과 홍천강줄기는 최승희 일생을 추모하는 순례객들로 줄을 잇게 만듭시다.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에 대한 역사적 재고찰과 함께 최승희와 관련된 각종 문화예술 및 관광자원들을 복원하고 개발해 세계적인 명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미 세계적인 무용가의 고향인 홍천군 남면은 홍천의 블루오션입니다. 홍천군정의 과감한 결단을 기대합니다. 구태의연한 이념논쟁서 벗어나 예술의 가치로만 판단하고 홍천의 미래가치와 홍천의 유익을 위해서만 판단해 주시길 간절히 소원 드립니다. <서울에서 시암 오 태규>

 

*위 글은 오태규님께서 본사에 보내주신 글을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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