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살롱
청교도들은 왜 인디언들을 죽였는가
예수의 계명을 무시하는 사람도 기독교인인가
최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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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5/15 [19:40]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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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아침 찬양대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유 집사가 자리에 앉자마자 “장로님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기독교가 존재할 필요가 있나요?”라고 말을 꺼냈다. 그는 상당히 흥분해 있었다. 자기가 그날 아침 책을 읽다가 미국에 건너간 청교도들이 인디언들을 무참하게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사람들을 죽인다면 기독교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청교도들의 행태에 크게 실망한 모양이었다.

 

나는 대학에서 호손의 『주홍 글자』를 공부하면서 청교도들의 마녀사냥, 청교도들과 인디언들의 관계에 대해서 배운 일이 있기 때문에, 청교도들의 잔혹한 행태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신앙인들이 사람을 죽인 것은 그들뿐이 아니라고, 교황청에서 그동안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회가 저지른 수많은 실수를 고백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면서 그 실수들을 열거했다.

 

유 집사가 청교도들의 만행에 대한 글을 읽고 크게 실망한 것은 청교도적 신앙을 찬양하는 목사들의 가르침에 따라서 청교도들의 철저한 신앙을 본받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게 마련이니까. 그들이 인디언들을 죽인 것은 생존을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외치는 기독교인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거나 처형한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청교도들이 마녀사냥을 하고 인디언을 무참하게 살해했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청교도(Puritan)라는 말은 ‘정화하다’(purify)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청교도들은 순수한 영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한,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한 신실한 신앙인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영적인 삶 을 중시한 나머지 육체를 지닌 인간의 삶을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들이 청교도 혁명을 일으켜서 정권을 잡았을 때, 그들은 가장 먼저 맥주집의 문을 닫고 극장을 철폐했다. 이것은 그들이 인간적인 것을 멀리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교도들의 신앙적 특성은 열렬한 청교도였던 본 번연의 『천로역정』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작품의 주인공 크리스천은 처자식을 포함해서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버리고 단지 죽은 후에 들어갈 천국만을 바라보고 나아간다. 지금 일부 교회에서는 그 주인공을 신앙의 모범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세상을 외면했을 뿐 아니라 처자식까지 버린 크리스천의 신앙은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의 신앙은 편향적일 뿐 아니라 왜곡되어 있다. 예수님은 결코 죽은 후에 예비된 천국만을 사모하면서 세상 삶을 버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이웃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여기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세상에서의 삶을 인정하고, 그 세상에 사는 인간 모두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웃을 설명하기 위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보면, 그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이 그의 동족이기 때문에 그를 구한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은 유대인 지역이었기 때문에, 강도 만난 사람은 사마리아인의 동족이 아닌 유대인이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런데 교인들이 그들의 이웃을 생각할 때 세상 사람 전체를 보지 않고 단지 교회 안의 형제들로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선민의식과 맥을 같이 한다. 물론 그것은 처자식까지 버리는 『천로역정』의 주인공의 태도보다는 낫지만, 예수님은 이웃을 그렇게 한정시키시지 않았다.

 

예수님의 폭넓은 이웃 사랑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뿐 아니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에서도 드러난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주기도문에서도,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에서도 분명하다. 예수님은 결코 세상을 멀리하라거나 인간을 외면하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곧잘 ‘예수님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어느 교회에서는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만 사랑하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마가복음에 나오는 서기관처럼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인가에만 집착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인간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랑 중에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은 이웃 사랑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과 15장에서 반복적으로 “나의 계명”(14:15;15:10)을 언급하셨는데, 예수님이 강조하신 “나의 계명”은 바로 이웃 사랑이다. 요한복음 13장에서는 이웃 사랑을 “새 계명”이라고 명시하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4)

 

예수님은 왜 이렇게 “나의 계명” 혹은 “새 계명”이라고 이웃 사랑을 강조하셨을까?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하나님 사랑에만 몰두하면서 인간 사랑을 외면하는 것을 보시고 안타깝게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교도들은 유대인들처럼 하나님만을 사랑하면서 인간을 외면했다. 우리도 청교도들을 따라서 ‘예수님이면 충분하다’고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고도 안타까워하면서 말씀하실 것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너도 내 제자란 말이냐!”

 

 

 

출처 : 당당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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