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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불능, 용서받지 못할 죄” 호세아 7장 1절~16절
김명섭 목사
홍천뉴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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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15 [15:1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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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호세아 7장 요약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통해서 죄로부터 구원받는 길,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를 기록한다.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 단 회개치 않는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 회개치 않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외식 곧 위선 때문이다. (마15:7~8)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입술로는 회개하는데 마음으로 회개하지 않는 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회개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신앙생활을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1. 용서받지 못할 죄 

 

➀ (4절~5절)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

 

▶ ‘어찌 할꼬’ ‘내가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전능하신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새벽 같이 일정하고 늦은 비처럼 임하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긍휼과 대조를 이룬다. 아침 안개와 새벽이슬처럼 햇살이 비취면 사라진다. ‘내가 예언자들을 보내어 너희를 흔들어 깨우고 그들이 네 뼛속까지 파고드는 내 말을 전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밭은 말씀을 듣는 자니’ 생명의 말씀이 떨어져도 길가, 바위, 가시덤불이면 속수무책이다. 하나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배신하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 구원치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치 않는 완고함 때문이다. 

 

② (6절~7절)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패역을 행하였노라”

 

▶ (마9:12~13) ‘예수께서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도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무거운 죄를 진 죄인과 세리가 아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율법사들처럼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병들었음을 인정할 때 치료가 시작된다. 자신의 질병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치료할 방법이 없다. 모든 죄는 용서함 받지만 회개치 않는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

 

▶ (마12: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니라’ 안식일 규례를 어긴 제자들을 책망하는 일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다. 몇 가지 규례와 율법을 지키면 스스로 의인이라 여기며 자기 기준으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은 제자들’ 타인을 향해 정죄한다. 내로남불, 기본적 자기귀의오류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을 빼려고만 한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성찰하는 도구지 타인을 정죄하는 수단이 아니다. 

 

③ (8절~11절)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취가 편만하도다. 강도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 (수20:1~9) ‘세겜, 헤브론, 베셀, 길르앗 라못, 바산골란’ 다섯 곳의 도피성은 부지중 범죄, 피의 복수를 막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총의 장소다. 사람을 살리는 곳이 죽이는 곳이 되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강도의 굴혈이 되었다. 살리는 법이 죽이는 법이 된다. 병원이 질병의 온상, 법원이 불법의 온상,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할 교회가 부패의 온상이 되 버린 현실이다. 

 

(11절)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을 정죄하면서 자신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유다야 네 잘못도 저들 못지않다. 너 역시 이제 뿌린 대로 거둘 때가 되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신앙생활이다.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 (사1:11~1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겉으로 드리는 제사 뒤에 감춰진 숨겨진 죄악을 폭로하신다. 겉으로는 예배하면서 거역하고 믿노라하면서 속으로는 불순종을 범하는 죄다. 원인치료는 하지 않고 증상치료에 몰두하는 격이다.

 

 

2. 외식하는 신앙 

 

① (1절~3절)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는도다 저희는 궤사를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적질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 내가 그 여러 가지 악을 기억하였음을 저희가 마음에 생각지 아니하거니와”

 

▶ ‘내가 치료하려 할 때에’ 구원을 생활언어로 바꾸면 치유다. 치유의 시작은 자신의 질병을 인정할 때 시작된다. 죄악을 자백해야 죄 사함을 받는다. ‘저희가 마음에 생각지 아니하거니와’ 북이스라엘의 문제는 악을 행하면서도 스스로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가 중요하다. ‘궤사를 행하여’ 궤사는 ‘거짓과 허위’다. ‘외식하는 신앙’이다. 질병 때문에 죽는 게 아니고 치유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외식이 진정한 회개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저희가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방백들을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데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 (마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라면서 정작 사람의 영광을 구하면 아무 유익이 없다. 

 

② (4절~6절) “저희는 다 간음하는 자라 빵 만드는 자에게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저희는 엎드려 기다릴 때 그 마음을 화덕 같이 예비하니 마치 빵 만드는 자가 밤새도록 자고 아침에 피우는 불의 일어나는 것 같도다”

 

▶ 간음은 우상숭배다. 북이스라엘의 죄악을 불타는 화덕에 비유한다. 불타는 화덕처럼 기회만 있으면 죄를 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 빵 굽는 기계처럼 죄 짓는 기계다. 기회가 없어서 죄를 안 지었을 뿐이지 내면은 죄악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③ (7절) “저희가 다 화덕 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저희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재판장과 왕들, 제사장과 선지자와 같은 지도자들만의 타락 때문이 아니다. (출32:1, 21~24)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아론의 타락은 백성들에게서 나왔다. 타락한 백성들이 타락한 지도자를 만든다. 백성들의 불타는 죄악이 재판장과 왕들까지 엎드러지게 했다. (삼상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지도자는 하나님께 청종해야지 백성들을 두려워하면 함께 죽는다. 지도자를 자신의 편의대로 길들이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면 안 된다. (행전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랴

 

 

3.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① (8절~10절)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는 전병이로다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 얼룩할찌라도 깨닫지 못하는 도다 이스라엘의 교만은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저희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 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 뒤집지 않은 전병은 돌이켜 회개치 않음을 은유적으로 증거 한다. ‘열방에 혼잡되니’ 본래적인 거룩함을 상실하고 이방과 똑같이 세속화 되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선민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제사를 가장해서 자기영광과 자기욕심을 채우는 우상숭배를 동시에 자행했다. 그 결과 이방인(죄)의 노예가 되었다.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노예가 되는 까닭이다. ‘백발이 되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본래적인 생명력을 상실했지만 깨닫지 못한다. 

 

② (11절~12절)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저희가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공회에 들려준대로 저희를 징계하리라”

 

▶ 메시지성경은 ‘에브라임은 새대가리다 아둔하고 미련하기 짝이 없다 처음에는 이집트에 붙어서 짹짹거리더니 다음에는 앗시리아에게 팔랑거리며 날아간다’ 지조 없이 시류에 편승하는 철새정치인과 같다. 결국 애굽에 배신당하고 앗수르에게 멸망당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의지하던 것들과 함께 무너지게 하셔서 그 허망함을 자각하게 하신다. 

 

③ (13절~14절) “화 있을찐저 저희가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니라 패망할찐저 저희가 내게 범죄하였음이니라 내가 저희를 구속하려 하나 저희가 나를 거스려 거짓을 말하고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 복이 변하여 화가 되었고 축복이 변하여 멸망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멸망한 까닭은 거짓(외식)을 말했기 때문이다. ‘성심으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였고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건성으로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준행하는 수고를 감당하지 않았다. 또한 ‘곡식과 새 포도주로 인하여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 도다’ 신앙의 목적이 자기부인의 희생이 아니라 제사보다 젯밥에만 관심을 갖는 신앙생활을 했다. 이런 신앙생활의 문제는 아무런 효험이 없다. 치유도 삶의 변화도 구원도 누릴 수 없다. 

 

④ (15절~16절) “내가 저희 팔을 연습시켜 강건케 하였으나 저희는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하는도다 저희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 그 방백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인하여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

 

▶ ‘가서 다시 죄짓지 말라’ 똑똑한 머리, 건강한 신체로 치유했더니 또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동일한 죄를 짓는 것이다.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용서했더니 또 다시 간음을 저지르는 격이다. 실패와 좌절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는데 ‘속이는 활처럼’ 또 다시 헛된 길을 찾는 것을 지적한다. 회개 말고 다른 길이 없는데 인간적인 방법으로 또 다시 재기를 꿈꾸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허사로 돌려버릴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 비가 닫힌 항아리 속으로 한 방울도 들어갈 수 없듯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 (마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회개를 촉구하시며 회개하는 자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는 역사를 거절하는 죄는 용서받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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