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오피니언
어머니의 삼계탕
'96세 어머니, 안순례 여사께 배우는 삶의 지혜들'
노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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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18 [08:4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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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이 부자연스러운 어머니가 양손에 닭다리를 잡고 삼계탕을 드시는 모습이 익살스러워 절로 웃음이 나온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월남하신 기골이 장대하셨던 아버지와 전라북도 정읍에서 자라신 좋은 집안의 아담하신 어머니가 만나 내가 태어났다. 자랄 때 북한 사투리가 주변에서 자주 들렸었고, 성남시에서 사업을 크게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다녔다. 생긴 모양이 특이해 어린 기억에도 ‘아이노꼬’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게 기억난다.

 

영화처럼 일찍 타계하신 아버지의 유언은 ‘여보, 평생 편하게 먹고 살 돈을 다 마련해 놓았으니 아이들과 행복하게 한 평생 살다 오라우’였지만 삼남일녀의 우리 형제들은 가난과 함께 거칠게도 살아 왔던 것 같다. 행상을 하고 뻥튀기를 파시던 어머니의 잊지 못할 모습은 철거되던 가게 붙은 집에서 용역들과 불사의 항거를 하던 어머니의 한 판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때 어머니는 손에 상처를 입으셨다.

 

10살 때쯤 연탄가스를 마시고 쓰러진 나와 누나를 발견한 어머니는 무언가를 마시게 하면서 “아이고, 내 새끼들 다 죽네” 라면서 통곡하던 모습도 아련하게 들린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거리에 나 앉은 어머니는 결국 우리를 다 키우시고, 공부도 다 시켜 주시고 결혼도 다 시켜 가정을 일구게 해 주셨다. 무학의 어머니가 얼마나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었을까 궁금하지만 어머니에게 더 이상은 그 사연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96세의 어머니는 이제 말도, 글도, 표정도 전달이 잘 안되게 되셨으므로.

 

삼계탕은 어머니가 나에게 특별한 날에 가끔 해 주시던 최고의 보양식이었다. 작은 집에서 비가 오는 날은 부추전을, 기력이 없거나 돈이 좀 생기신 날에는 삼계탕을 해 주셨다. 내 기억으로 어머니는 별로 드시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렇게 먹었던 삼계탕을 이제는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께 내가 드린다.

 


▲ 말이 잘 안나오시는 어머니는 종이와 볼펜을 달라시더니 30분동안이나 집중해서 글을 쓰셨다. 어렵게도 말씀하신 내용은 '경동시장 가서 인삼 5000원어치 사고 시장가서 닭 한마리 3500원에 사서 냄비에 넣고 끓여서 가지고 오라'는 뜻이었지만 어머니의 쓰신 손글씨는 누구도 절대 판독할 수 없는 글이었다. 



한 달 전 기력이 쇠하신 어머니가 어렵게 말씀하셨다. “엄마 말 들어, 경동시장가서 인삼 오천 원어치 사고 동네시장가서 닭 팔천 원짜리 사서 냄비에 끓여서 가지고 오너라” 힘들게 해석된 어머니의 말씀대로 삼계탕을 끓여서 가지고 갔다. 어머니는 어렴풋이 삼계탕을 발견 하시고는 냄비 속에 불쑥 손을 집어넣어 닭을 집어 들어 드시기 시작했다. 천천히 드시면서 오래동안 음미하셨다. 맛있냐는 내 질문에 어머니는 별로 답을 안 하시고 흘리시면서도 정말 열심히 드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힘을 내서 아이들에게 부담 안 되게 하면서 살겠다는 의지의 행동이셨던 것이다.

 

늘 그러셨다. 평생 사시면서 돈을 아껴야 했고 아이들을 키워야 했고, 생사의 기로에서 항상 고민하고 쪽배를 타고 아이들과 노를 저어가야만 했던 날들은 그런 삶이 자연스러우셨으리라. 어머니를 닮아서 음악을 좋아 했던 나는 중학교 때부터 통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런 이유로 어머니와 나는 음악적으로 교류 아닌 소통이 잘 되었었던 ‘남쪽 나라 십자성에 어머니 얼굴..., 당신이 주신 선물 가슴에 안고서 별도 없고 달도 없는 어둠을 걸어가오..., 세상에 올 때는 내 맘대로 온건 아니지마는.. 나머지 인생 잘 해봐야지...’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 된 노래들을 요양원 어르신들과 2년 동안 함께 부르고 나도 놀았다.

 

 


▲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소통방식으로 나는 조금 노래하고 예의 바르게 진행하면서부터 나는 그만 요양원의 인기 스타가 되었다. 사진에서도 열심히 호응해 주시는 어른들이 대부분으로 박수를 치지 않는 어르신들은 거의 없어 보인다.    © (사진제공=금천구립사랑채요양원)



아직도 나는 96세의 어머니께 가정교육을 받고 있다. 요양원에서 노래교실을 진행하던 한 달 쯤 되던 어느 날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내야, 너는 많이 하지 말고 어르신들을 많이 시켜라. 여기 노래 잘하는 노인들 많단다. 그리고 옷은 하얀색으로 입어라 너는 그게 어울려..., 너 아까 말할 때 실수 했다. ‘어르신, 잘 하셨습니다’ 라고 말해야한다” ‘오, 잘 하시는데요’라고 말했던 나의 멘트를 고쳐 주신 어머니의 가정교육 그대로 세 가지를 지키면서 진행했고 지금은 어르신들께 최고의 인기스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그 어느 누가 와도 내 자리를 위협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서툴게 해 드리는 삼계탕이 담긴 냄비에 손을 불쑥 넣어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의 그 삼계탕이... 많이 늙으신 어머니께도 특별한 날 어릴 때 내게 입에 넣어 주시던 그 맛처럼 최고의 맛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글쓴이 노익희?

투어타임즈 선임기자 (현)

사단법인 한국언론사협회 공동회장 (전)

BUK인재교육원장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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