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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에서 만난 여성 독립운동가
홍천뉴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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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07 [17:2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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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3월 30일, 중국 중경(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백범 김구를 포함한 여러 임시정부 위원들이 새벽까지 깨어 있습니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양우조-최선화 부부의 둘째 아이 출산이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국의 독립을 열망하던 그들은 희망찬 미래를 짊어질 아이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하지만 곧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가 여자아이인걸 알자, 모두 실망합니다’

 

위는 양우조-최선화 부부가 딸 제시와 제니를 양육하며 중국 임시정부의 일상를 써낸 ‘제시의 일기’의 한 대목입니다.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에게는 미래의 독립투사 한 명이 아쉬웠다고 하는데요. 여성이 독립투사가 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이고, 독립운동 앞에 성별이 중요하겠냐마는, 이 일화에서 당대 사회는 여성보다 남성이 독립운동으로 뜻을 펼치기가 더 원활한 환경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은 어땠을까요.

‘제시의 일기’.(출처=교보문고)
‘제시의 일기’.(출처=교보문고)

 

유관순 열사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홍보와 연구가 최근 눈에 띄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다들 아시죠. 저 역시 그러한 긍정적인 변화를 좇아서 이번 중국 내 임시정부 탐방에서 여성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 기록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약 백 년 전 독립운동가들의 거처였던 임시정부의 거주지와 청사를 둘러보면서, 이곳에 누가 있었고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사료를 바탕으로 한 안내문과 함께 동행한 박광일 여행작가의 설명으로 알 수 있었는데요. 그런데 어라,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내용은 생각보다 그 비중이 너무 적었습니다.

 

탐방 3일차가 되던 날 항저우에서, 동행하신 박광일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작가님, 임정(임시정부)에 여성은 많이 없었나요?” 작가님의 첫마디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항상 있었죠.”

 

‘여성독립운동가, 미래를 여는 100년의 기억’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강애란 작가의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여성은, 항상 있었다

 

그렇습니다. 임시정부에 여성은 항상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사 전체를 봐도 여성은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혹자는 ’독립운동가 남자가 만 명이면 여자도 만 명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재 독립유공자 1만5180명 중 여성은 357명에 불과하며, 116명은 최근 5년 사이 추가된 인원입니다. 남성보다 여성이 적었음을 감안해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다른 분도 비슷한 의문을 가지셨는지, 탐방 3일차 토크콘서트에서 여성들의 행적이 궁금하다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이날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최태성 강사는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가 많이 안 되어 있음은 반성할 부분이라며, 그나마 최근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지고 있다고 여러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했습니다.

 

미니콘서트에서 설명하시는 최태성 강사님
토크콘서트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최태성 강사.

 

여성은 일본과 싸우고, 남성과 싸웠다

 

다시, 임시정부에 여성은 항상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소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은 왜 적었을까요. 이유는 임정의 문제가 아니라 1920년대 한국 사회에 있습니다. 봉건의 잔재가 지금도 남아 있는 사회인데 그 때는 더 심했을 수밖에요. 독립운동이 아니라 바깥일 자체가 남성의 영역이던 시대입니다.

 

이번 탐방을 함께 한 박광일 작가와 최태성 강사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당대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둘과 싸웠다. 일본과 싸우고, 남성(봉건제)과 싸웠다.

 

“남성이 100만큼 했다면 여성은 300만큼 해야 임시정부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박광일 작가

 

 

“여성은 이중고, 삼중고를 겪었다는 점이죠. 밖에 나가서 의병활동을 하든 광복군 훈련을 하든, 집에 오면 밥을 하고 빨래를 해야 해요. 아이들을 키우고 시부모 봉양에 농사까지 지어야 돼요.” ‘조선의 딸, 총을 들다’ 작가 정운현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사회,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중삼중의 차별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여성의 독립운동은 더 깊숙이 묻혀왔다.” 문재인 대통령, 201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광복 70주년 특별기획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형상화 한 조각품

 

 

그런데, 계속 싸웠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면서도 여성은 독립운동의 주체가 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20년 넘게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발굴해 온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은 “여성은 남성들의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해주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오늘날과 다르게 ‘남녀 구분 없이’ 뛰어들고 독려했던 독립운동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존재하는 가부장 제도 아래서도 한계에 봉착하지 않고 오히려 뛰어 넘어, 더 열심히 싸웠다는 것이죠. 처음으로 여성들이 무엇의 ‘주체’가 된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이번 중국 내 임시정부 탐방에서 만난 세 분의 여성을 소개합니다. 

 

 
 

 

▲ 항저우 청사에 있던 사진.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수당 정정화.
항저우 청사에 있던 사진.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수당 정정화.

 

임시정부 내 독립운동가들의 당시 생활상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소중한 기록으로 양우조, 최선화의 ‘제시의 일기’, 김구의 ‘백범일지’와 함께 정정화의 ‘장강일기’가 있습니다. 정정화 선생은 임시정부 27년 역사의 산 증인이자 정말 많은 역할을 해낸 슈퍼우먼이라고 소개하면 될 것 같은데요.

 

엄항섭 일가와 이동녕 선생, 백범의 가족을 돌보고 뒷바라지하며 헌신했을뿐만 아니라 임정 요원들의 부상을 돌보고 임종을 지켰습니다. 또한 임시정부 내 아이들을 가르쳤고, 한국혁명여성동맹과 한국애국부인회 등의 여성단체에서 활약했습니다.

 

▲ 역시 항저우 청사에 있던 사진. 한인애국단 소속이었던 김의한 선생이 정정화 선생의 남편이기도 하다.
역시 항저우 청사에 있던 사진. 한인애국단 소속이었던 김의한 선생이 정정화 선생의 남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국내로 밀파되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 전대 깊숙이 숨겨 중국으로 귀환하기를 여섯 번. 당연히 일본은 그녀를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세 번째 귀국 때는 일본 경찰에게 들켜 체포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무사히 여섯 번 중국과 우리나라를 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독립운동가 최석순이 일본인 순사 나카무라로 위장해서 도움을 주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최태성 강사가 소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백범 김구의 비서와도 같았던 요인으로 이화림 선생이 있습니다. 25살에 상하이로 떠나 한인애국단에서 무술을 배웠고, 나물장사, 빨래, 수놓기 등을 하면서 임시정부에 자금를 벌어다 주었을 뿐 아니라 틈틈이 일본 밀정 처단까지 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윤봉길 의거 전날 부부로 가장해 함께 답사했으며 이봉창 의사의 거사 때도 도움을 주었죠. 그러나 김구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회주의 노선을 걷게 되면서 백범일지에서 그녀의 이름이 지워집니다. 

 

 
 

 

 


백범 김구의 또다른 조력자로는 운하를 돌며 일제를 따돌렸던 주애보 선생이 있습니다. 주애보(朱愛寶, 주아이바오)는 임시정부 요인은 아니고, 김구 선생의 피난을 도왔던 중국인 여성입니다.

1933년 여름부터 다섯 해 가까이 부부로 위장하여 선상에서 함께 생활했습니다. 다시 못 만날 줄 모르고 송별 시에 여비 100원 밖에 더 주지 못했던 일이 후회된다고 백범일지에 적혀진 바 있습니다.

 

▲ 가흥 김구 피난처에서 찾을 수 있었던 그녀의 공로.
가흥 김구 피난처에서 찾을 수 있었던 그녀의 공로.

 

1919년 4월 11일 임시정부가 수립되던 날, 임시헌장 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가 적혔습니다. 그러나 위에 소개한 양우조 부부의 출산 당시 일화처럼, 평등과 자유의 가치가 더없이 소중했던 그 때에도 헌법과 현실적인 인식 사이에는 간격이 있었던 것이죠.

 

다행인 것은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아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행사나 각종 전시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는 것입니다. 관심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더 열심히 기억하고 쓰고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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