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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밭담

홍천뉴스투데이 | 기사입력 2018/10/13 [16:34]

제주의 밭담

홍천뉴스투데이 | 입력 : 2018/10/13 [16:34]

옛날부터 있었고, 어디에나 있다. 그 흔하고 무던한 밭담들이 제주의 풍경을 특별하게 만든다. 오늘날에 이르러 더욱 소중해진 밭담의 가치를 제주는 연신 홍보하며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나 흔한 탓인지, 정작 소중한 밭담을 ‘보존해야 한다’는 절박함은 눈에 띄지 않는다.

2014년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이후 제주도는 본격적으로 밭담 관광산업화에 착수했다. 현재 제주엔 총 6개소의 밭담길이 조성돼 있고 올해로 4회째 밭담축제가 열렸으며 밭담과 연계한 식품·캐릭터·생활용품 개발 등 6차산업화도 탄력을 받고 있다. 덕분에 밭담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와 친밀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제주도의 밭담 관련 사업이 너무 관광 쪽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밭담 관광산업화에 3년간 39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데 반해 밭담 자체를 보존하는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밭담 아카데미’ 같은 사업이 있긴 하지만 직접적인 밭담 보존과는 거리가 있고, ‘돌빛나예술학교’, ‘제주잣성(목장 경계용 돌담)보존회’ 등의 민간조직이 단편적으로 하고 있는 연구와 복구 정도가 보존활동의 전부다.

제주 땅에 흔하디 흔한 것이 밭담이지만 그만큼 훼손의 위험에도 많이 노출돼 있다. 개발로 인해 야금야금 침식당하더라도 속수무책이다. 세계농업유산은 문화재와 달리 보존을 강제할 수 없다. 월정리 테마공원 일대를 제외하면 제주에 있는 모든 밭담이 사유재산이라 개인의 의지에 따라 언제라도 매매와 훼손이 가능하다. 심지어는 한 덩이당 제주 내에서 수천원, 육지에서 2만원 이상 하는 돌 가격 탓에 멀쩡한 밭담을 훔쳐가는 일도 생기고 있다.

제주 구좌 농민 부석희씨는 “해안 관광지에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서면서 전망을 막는 돌담까지 다 허물고 있다. 지금 정책적으로 잘 보존하지 않으면 이 돌들이 어디로 사라질지 알 수 없다. 제주의 해안 경관이 보기싫게 망가지는 것도 순식간이다”라고 우려했다.

물론 제주 전역에 분포하는 밭담을 모두 문화재로 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두를 국공유화하는 건 더더욱 어림없는 일이다. 그런데 밭담엔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필연적으로 중소농들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는 점이다. 산간지역인데다 화산토로 이뤄진 제주의 밭은 밭담에 의해 오밀조밀하게 구획돼 중소농 형태 영농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중소농이 무너지면 규모화나 용도변경에 따라 밭담도 무너질 소지가 크지만, 반대로 중소농이 존속하면 밭담은 반드시 보존된다. 밭담의 태생 자체가 농업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에 어찌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이치다.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과 교수는 “농사짓는 일이 돈이 되게만 해 주면 밭담은 저절로 보존된다. 농가 소득을 지지함으로써 밭담이 본래의 기능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강승진 제주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농업유산 직불제 형태로 밭담에 직불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요구하고 있다. 밭담 자체가 보존되지 않으면 몇 년 뒤엔 세계농업유산 등재가 취소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밭담은 제주 농업이 낳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또한 중소농은 농촌의 사회·경제문제를 해소하고 먹거리안전을 책임지는 중요한 주체다. 이미 각각의 존재가치가 분명하지만, 제주에선 이 둘이 서로를 지켜야 하는 또 하나의 명분을 이룬다. 행정의 입장에선 하나의 정책으로 두 가지 성과를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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