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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대한민국’을 ‘바로 대한민국’으로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홍천뉴스투데이편집국 | 기사입력 2018/07/11 [18:00]

‘과로 대한민국’을 ‘바로 대한민국’으로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홍천뉴스투데이편집국 | 입력 : 2018/07/11 [18:00]
1일부터 주당 52시간제가 도입됨에 따라 노동시간이 뜨거운 사회적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진된다. 근기법 개정안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올해 7월1일부터, 50인 이상~300인 미만 사업장은 2020년 1월1일부터, 5인 이상~50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1일부터 주 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된다.

대기업과 공공기관들은 대부분 주5일 근무가 정착되어 있어 52시간제 시행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사무·전문직 분야의 감추어져 있던 시간외 근무가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경영계는 정부에 건의문을 전달하며 근로시간 단축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단속과 처벌이 아닌 계도기간이 필요함을 요구하였다. 정부도 이에 호응하여 6개월의  계도기간을 인정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런데 근로시간 단축을 둘러싼 노동계와 경영계의 논란을 보면서 국민들은 혼란에 빠진다. 2004년부터 주5일제가 도입되었는데, 주당 68시간이 52시간으로 줄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쉽게 납득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법정근로시간은 1일 8시간, 주당 40시간이지만 노사간 합의하면 시간외 근무 12시간을 허용하여 주당 52시간이다. 하지만 정부는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당 68시간까지 근로를 허용해 왔다. 이번 주당 52시간 상한제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1주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는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휴일근로 논란을 끝낸 것이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정도로 길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16년 기준 205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2348시간인 멕시코 다음으로 많다. OECD 평균인 1707시간에 견줘 345시간 많고, 가장 적은 독일보다 약 4개월을 더 일한다. 장시간노동은 노동자의 건강 악화 및 산업재해 빈발, 일·가정 양립과 워라벨(Work & Life Balance)을 어렵게 한다. 또한 기업경영에서도 낮은 생산성과 비효율로 작용한다.

노사정간 힘을 모으지 않으면 주52시간 입법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소모적인 논란에서 벗어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생산적인 논의를 행동으로 옮길 때이다. 노사정간 시간 단축의 긍정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협력 방안이 요구된다. 노동시간 단축의 긍정적 효과는 노동자의 건강권, 일자리 나누기, 노동생산성 향상,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 등 4가지로 요약된다.

노동시간 1% 감소하면 재해율은 3.7% 감소

우리나라는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산재사망 통계는 늘 OECD의 1위를 차지한다. 산업재해의 빈발은 장시간노동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Hanecke, Tiedemann, Nachreiner과 Grzech-sukalo(1998)의 연구에서는 근로시간이 9시간째부터 안전사고의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보고하여 장시간 근로의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근로시간이 연장되면 수면부족·졸음·피로·제품의 불량률 상승 등을 일으키며, 유해물질에 대한 직업적 노출 시간을 늘리게 되어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에 유해하다. 반면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휴식시간이 증가되고 이로 인해 피로현상이 감소됨으로써 산업재해가 발생할 확률이 감소된다. 근로시간이 감소할수록 산업재해율도 감소한다.

산업재해는 개인의 측면에서는 신체적 손상과 정신적 고통은 물론, 일시적 또는 영구적인 노동력 손실로 가족 모두의 불행으로 이어지게 되고, 기업의 측면에서는 노동인력의 손실과 기계, 설비 등의 손상으로 인한 생산차질로 기업 경영을 어렵게하는 요인이 되게 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시간이 1% 감소시 재해율은 3.7% 감소한다. 그 중 제조업은 노동시간이 1% 감소시 재해율은 5.3% 감소한다

주 52시간 초과 노동자 비율 가장 높은 곳 30인 이상 300인 미만 규모 사업장

노동시간 단축이 절박한 이유는 일자리를 나누기 위함이다. 장시간노동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잠식한다. 특히 300인 이상 맞교대 사업장은 교대제를 바꾸지 않으면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 이하로 단축할 수 없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보면,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30인 이상 300인 미만 규모의 사업장이다.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 404만1천명 가운데 12.6%(51만명)가 52시간을 초과해 일했다. 노사가 힘을 합하면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창출로 연결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21년 7월 주52시간 상한제가 5인 이상 사업장에 전면 적용되면 늘어나는 일자리를 13만 2천여 개로 예상하였다. 고용위기 상황에 놓인 우리에게 독일의 폭스바겐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1990년대 폭스바겐사는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노사는 일자리를 지키는 대신 주 36시간 근무를 28.8시간으로 줄였다. 노동자들의 소득은 평균 12% 줄었지만 대신 회사는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했다.

노동생산성 향상과 기업 경쟁력 강화

노동시간 단축 시 가장 민감한 쟁점은 생산성 향상과 임금 보전 문제이다. 경영진은 생산성 향상이 담보되지 않으면 비용 부담에 직면하며, 노동자들은 임금 감소에 따른 불안감이 크다. 그러므로 시간 단축에 따른 노사간 타협이 이루어지려면 적정한 생산성 향상과 임금 보전이 교환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생산성 향상이 쉽지 않은 영세중소기업의 경우 노동자의 임금 감소액의 일정 부문을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동안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들의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되어 왔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주 40시간 근무제 도입 후 1인당 노동생산성은 1.5% 상승하였다는 연구를 제시한 바 있으며, 2017년 예산정책처의 연구에 따르면 주당 노동시간 1% 감소시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0.79%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달 앱 서비스인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노동자들은 주 4.5일제로 일한다.  점심시간을 30분 연장하고 퇴근 시간을 30분 단축해 주 35시간 근무도 완성했다. 노동자들은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생산성 향상으로 회사에 보답했다. 노동시간 단축의 선순환 효과를 입증한 사례이다.

소득은 3만 달러 수준이지만, 삶의 질은 1만 달러 수준

정부는 ‘2018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는 “소득은 3만 달러 수준이지만, 삶의 질은 1만 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고백했다. 개발 연대기 장시간 노동은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었지만 이제는 극복해야 할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 6월 27일 전경련 행사에서 한국 정부가 주당 노동시간을 획일적으로 52시간으로 단축하기로 해 기업의 어려움이 크다는 질문에 대해 “52시간이라고요? 한국도 선진국인데, 그렇게 많이 일한다니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장시간 노동-저부가가치-저임금’의 고리를 ‘노동시간 단축-고부가가치-고임금’의 선순환구조로 바꿔야 한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노동시간 단축은 국민의 휴식권을 확대하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한편 내수의 활성화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일석사조의 처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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