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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재판, '기울어진 저울'

홍천뉴스투데이편집국 | 기사입력 2016/03/03 [16:19]

교회 재판, '기울어진 저울'

홍천뉴스투데이편집국 | 입력 : 2016/03/03 [16: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신명기 27장 19절)

'약자'에게 더욱 공정한 재판을 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 교회 재판에서 수년 동안 물의를 빚어왔던 주요 사건에 대해 대형교회 목사에게 유리한 판결이 잇달아 내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전병욱 목사 성추행 사건, 7년 만에 공식 판결


지난 2월 2일 한국 개신교 최대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의 교단지 <기독신문>에 판결문 하나가 게재됐다. 여성 성도 성추행 혐의로 교회 재판을 받던 전병욱 목사에게 '공직 정지 2년', '강도권(설교권) 2개월 정지'의 징계를 내린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유는 "전 목사가 2009년 11월 13일 오전 삼일교회 B관 5층 집무실에서 전아무개씨(피해여성)와 부적절한 대화와 처신을 한 것이 인정된다"는 것. 사건 발생 7년 만에 나온 첫 공식 판결이었다.

그동안 전병욱 목사 사건은 한국 교회 최대 골칫덩이였다. 전 목사가 여성 성도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은 2010년 9월 교계 언론 <뉴스앤조이> 보도를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이 일로 전 목사는 결국 17년 동안 시무해온 삼일교회를 사임했다.

전 목사가 이듬해 여름 삼일교회에서 가까운 상수동에 홍대새교회를 새로 개척하면서 다시 논란의 불씨가 붙었다. 삼일교회와 기독교공동대책위는 "진정한 회개 없이 목회 재개는 없다"며 전병욱 목사 면직 청원운동을 벌였다. 이어 성추행 의혹을 폭로하는 책 <숨바꼭질>까지 나왔다.

이 상황에서도 줄곧 침묵을 지키던 평양노회(전병욱 목사가 소속된 노회)는 여론에 못 이겨 2014년 말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재판국을 꾸렸다. 그러나 네 차례 공판을 하고 나서도 재판국원끼리 의견이 갈려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후 삼일교회가 '치유와 공의를 위한 TF팀'까지 만들며 끈질기게 노력한 끝에 2015년 말 다시 평양노회에 재판국이 구성됐다. 세 차례 재판 끝에 나온 결론이 이번 판결이다. 그간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인 판결이 되는 셈이다.

"합당한 징계" 또는 "면죄부"

판결 이후 갈등이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지는 양상이다. 평양노회는 "합당한 징계"라는 주장을, 삼일교회 측은 "솜방망이 처벌", "면죄부"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징계 중 '공직 정지 2년'은 전 목사가 총회나 노회의 요직을 꿈꾸지 않는 이상 아무 의미가 없고, '설교 2개월 중지' 역시 처벌 수위가 낮다.

우선 '성추행 사건' 자체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다르다. 그동안 삼일교회는 피해자들의 여러 증언 사례를 들어 전병욱 목사가 다수를 대상으로 광범한 성추행을 저질러왔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평양노회는 판결문에서 "전 목사의 여성 성도 추행건의 진상은 그간 언론에 의해 부풀려 알려진 것과는 상당 부분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단 1건의 "부적절한 대화와 처신"만을 인정했다.

다음으로 '사임 당시 구두약속'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삼일교회는 전 목사가 사임할 당시 '2년간 목회 금지', '수도권 개척 금지'를 구두로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또 13억 원에 달하는 전별금 중 1억 원은 '성 중독 치료비'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평양노회는 이러한 주장에 관해 모두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고 판결했다.

"재판에 절차와 구조상의 하자 있어"

이에 대해 삼일교회 측은 "재판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교회는 판결 이후 발표한 성명서에서 "(평양노회) 재판국원이 수많은 성추행 사실과 피해자를 외면한 채, 절차와 구조상의 하자를 갖고 진행한 재판은 이미 재판으로서의 실효성을 상실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재판이 ▲ 삼일교회가 제출한 모든 증거(피해자 녹취록, 변호사 소견서, 전문기관 진술서, 책 <숨바꼭질> 등)를 무시한 채 전병욱 목사의 '혐의 부인'만을 취사선택했다는 점 ▲ 삼일교회를 '원고'가 아니라 '참고인'으로 배제한 점 ▲ 홍대새교회의 노회 가입 감사예배 설교 중에 "홍대새교회와 전병욱 목사를 지켜주겠다"고 발언한 김진하 목사를 재판국원에 포함한 점 등 여러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삼일교회는 '구강성교' 피해자를 비롯해 여러 피해 여성들의 통화 및 증언 녹취, 진술서, 언론 인터뷰, 그리고 사단법인 '여성의 전화' 상담 사례 자료들을 재판국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법인 '소명'의 박종운 변호사가 "해당 사건과 관련한 녹음파일 및 녹취록은 피해 당사자에 의한 직접적인 진술증거로서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데에 충분한 증거능력을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은 의견서도 함께 제출했다.

그러나 평양노회 재판국은 이들 증언을 모두 '거짓'이나 '과장'으로 판단했다. 재판국은 또 2014년 1차 재판 때 피해자가 직접 출석해 증언한 동영상이 남아있는데도, 또다시 출석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하기도 했다.

법률사무소 '로그'의 강문대 변호사는 2월 4일 평양노회 재판국 판결 규탄 기자회견에서 "복수의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방송과 언론에서 꾸준히 자신의 피해 정황을 일관되게 증언했다"고 발언했다. 강 변호사는 "과연 이 피해자들이 거짓증언으로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기에 수치와 아픔을 무릅쓰고 자신의 신변이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며 일관된 증언을 하겠는가? 어느 쪽이 무리한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 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목사와 피해자, 누구 말을 믿을 것인가?

물론 전병욱 목사 측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홍대새교회는 지난 5일 홈페이지에 반박 성명을 게재하고 "삼일교회 당회는 '수많은 피해자'가 실체 없는 부풀리기였음을 인정하기 바란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삼일교회 장로들이 피해자들의 실체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았으며, '성 중독 치료비'에 대해 증언을 번복하는 등 거짓말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해당 교회는 지난해 7월부터 전병욱 목사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는 성명서를 10여 차례 게재해왔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성추행과 관련해 부적절한 일은 단 1건이었고 그조차 구강성교가 아니라 '자극적인 농담' 한마디를 한 것이 전부'라는 것, 그리고 '2년간 목회 금지', '수도권 개척 금지', '성 중독 치료비' 등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다.

이는 평양노회의 판결문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다. 피해자들(+삼일교회)의 증언 및 자료와 전병욱 목사(+홍대새교회)의 말이 서로 엇갈리는 상황에서 평양노회가 후자를 더 신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삼일교회 측은 예장합동 총회에 상소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오정현 목사에게 반대하면 '출교'

논란이 된 교회 판결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병욱 목사 못지않게 교계의 관심을 받는 오정현 사랑의교회 목사에 대해서도 그에게 크게 유리한 판결이 선고돼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2월 5일 예장합동 동서울노회 재판국은 사랑의교회 갱신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장로와 집사 등 13명에 대해 "면직하고 수찬 정지하며 제명에 처한다. 2016년 3월 5일까지 본 교회를 떠나고 이에 불응 시 출교를 확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랑의교회 당회·예배에 불참, 교회가 인정하지 않는 개혁단체 결성, 사회 법정에 교회 대상 소송 제기 등 "교회의 헌법적 질서를 무시 모독"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사랑의교회는 지난 2013년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 문제가 불거진 이후 심각한 내분을 겪어왔다. 오 목사의 잘못을 지적하며 교회의 개혁을 바라는 이들은 갱신위를 조직하고, 서초 신축 예배당 합류를 거부한 채 옛 강남 예배당에서 '마당 기도회'로 모였다. 이들은 '오 목사의 회개와 퇴진'을 요구하며 사랑의교회 건축, 재정 문제 등과 관련하여 여러 소송을 진행했다.

갱신위는 지난 2015년 지난한 소송전 끝에 법원으로부터 '사랑의교회 회계장부 공개'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 장부를 분석한 결과 "오정현 목사가 목회 활동비로 고급 의류와 안경·골프 드라이버 등을 구입하고, 상당수를 현금과 수표로 인출해 사용 내역이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6월에는 서울중앙지법에 오 목사를 대상으로 '위임목사 결의 무효 소송'을 냈다가 최근 기각 판결을 받았다.

따라서 동서울노회의 갱신위 '무더기' 징계 판결은 오정현 목사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를 제거해 준 것과 다름없다. 이번 재판은 지난해 7월 사랑의교회 이아무개 안수집사가 갱신위 교인 13명을 고소하면서 진행됐다. 특히 징계 교인 중에는 장로 7명이 포함됐는데, 이들이 면직되면 사랑의교회 당회는 오 목사를 지지하는 장로가 2/3가 넘어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당회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동서울 노회 판결은 절차를 무시한 불법"

이 재판 역시 즉각 불공정하다는 비판에 부딪혔다. 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였던 이화숙 권사는 2월 8일 갱신위 카페 '사랑넷'에 판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정리한 글을 게재했다. 해당 게시글에서 이 권사는 "동서울 노회 판결은 절차를 무시한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이 권사는 ▲ 노회 소송 제기는 사랑의교회 정관에 따라 당회의 결의를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아무개 집사가 개인적으로 제기했다는 점 ▲ 제명된 교인 중 상당수는 소환장이나 재판에 관한 어떤 정보도 받지 못했고 재판에 출석할 수도 없었다는 점 ▲ 제대로 된 변론권을 박탈당했다는 점 ▲ 재판국장 김광석 목사는 오 목사와 총신대 동기로 동기회에 참석해 식사를 같이하면서 재판 관련 발언을 한 바 있어 법적으로 제척 혹은 기피사유에 해당한다는 점 ▲ 교회 재판에도 2심 제도가 있으나 1심 판결이 바로 효력을 발휘한다는 점 등을 들어 "재판이 무효"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갱신위 측은 판결에 대한 불복입장을 명확히 했다. 오히려 "최근 사회법정 소송 과정을 통해 오정현 목사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부정 편입학, 미국 CRC(북미개혁교단) 강도사 사칭, PCA(미국장로교단) 교단에서의 불법 목사안수 등이 밝혀졌다"며 공세를 높이고 있다. 갱신위 역시 위임목사 결의 무효 소송을 항소할 계획이다.

한편 동서울노회 재판국장 김광석 목사는 <뉴스앤조이>에서 교인 13명을 제명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판결문 보면 다 나온다"고 짤막하게 답변했다. 원고의 변호인이었던 주아무개 사랑의교회 부목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판결은) 교회법이 살아있고 교회 재판국이 살아있음을 보여준 증거라고 본다"라고 적었다. 주 부목사는 "그나마 당장 출교하지 않고 3월 5일까지 스스로 교회를 떠나 신앙의 회생을 위해 노력할 기회를 준 것은 재판국의 애정 어린 배려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교회 재판이 '정의' 가릴 수 있나?

교회 재판이 왜 이렇게 신뢰받지 못하고 극렬한 반대의 목소리에 부딪힌 걸까? 한국 교회의 재판 자체에 구조적으로 많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한국기독교화해중재원과 한국교회법학회가 공동 주최한 '교회 재판과 교회분쟁 해결 포럼'에서 서헌제 중앙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교회의 재판에 대해 "많은 불신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한국 교회의 재판에 ▲ 교회법 체계의 혼란과 미비 ▲ 재판기관의 비전문성 ▲ 재판의 비독립성과 불공정성 ▲ 재판의 비공개성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한국 교회 재판은 미비한 교회법 조항을 바탕으로 진행돼 주먹구구식 판결이 내려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 대부분 국가법이나 교회법에 대해 전문적 소양이 부족한 목사·장로가 교권에서 완전히 독립된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치러지는 실정이다. 교회 재판의 내용도 공개하지 않고, 구체적인 판결문도 외부에 드러내지 않는다. '깜깜이' 재판 속에서 '기울어진 저울'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교회재판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여러 치유방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하고 실천 가능한 대안은 '교회재판의 공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 교수의 의견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예장통합 교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교단이 판결문을 외부에 공개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판결문의 공개야말로 교회 재판에 대한 신뢰를 얻는 길이라고 믿는다. 판결은 교단 헌법규정 못지않게 교회법의 법원(法源)으로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판결을 통해 확립된 재판부의 입장을 바로 알아야 향후 교회 재판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으며 교회 재판에 대한 교리적, 법리적 분석과 비평이 가능해져 이른바 판례법으로서 교회법이 발전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교회 재판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교회에서 재판을 받은 이들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자꾸 문제를 사회법정으로 끌고가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교회 최대 난제인 전병욱 목사, 오정현 목사 사건을 '기울어진' 교회 재판으로 덮으려는 것은 무망한 일처럼 보인다. 교회 재판의 절차와 내용을 개선해 '독립성', '공정성', '투명성', '전문성', '정확성'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혼란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교회개혁실천연대는 전병욱 목사에 대한 평양노회 판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재판국원들의 안중엔 자기가 신뢰하고 존경했던 목사의 불의한 성적 행위로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이 없다. 재판국의 안중엔 한국교회의 물적 부흥, 전병욱 목사의 위신과 체면유지 그리고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가 있을 뿐."

이는 교회 재판이 '약자'보다 철저히 '강자' 편에 섰다는 통렬한 지적이다.

안 그래도 불의가 창궐하는 이 시대에 한국 교회에서 '정의'는 어디 있는가? '공평한 저울'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와 양심을 성경 구석 어딘가에 처박아 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성찰해봐야 하지 않을까? "기독교인이어서 부끄럽다"는 사람이 자꾸만 늘어가는 한국의 현실을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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