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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20 [09:21]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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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기와 사회적 지지
  ‘안 늙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안티-에이징’이 자기관리나 (의료, 화장품, 운동, 식품 등 각종) 산업의 차원으로 일상에 자리 잡은 지도 오래되었다. 신체에 대해서는 ‘늙었다’고 하면서도 마음이나 감각, 감성 등,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처럼 ‘늙었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무엇을 바르고 입고 먹어야 ‘안 늙어 보이는지’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어떻게 살아야 ‘늙지 않는’ 마음, 생기, 활력,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화는 나누지 않는다(조선시대에 장수를 축하하는 문예 양식이었던 수서 총 210편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살피면, 외적으로 ‘젊어 보인다’는 칭찬은 상대가 잘 나이 들었음을 축수하는 완전한 표현이 될 수 없다. 여기에는 반드시 정신과 품성, 마음가짐, 식견과 지적 역량, 실천적 태도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여전히 ‘겉으로 보이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도대체 마음도 피부처럼 늙어가는 것일까.

  이에 대해 나이 들어가는 당사자는 단연코 거부하는 마음이 큰 것 같다. “마음은 언제나 스무살”이라느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표현은 실제를 반영한다기보다는 나이 들어가는 이에게 모종의 자신감과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그런 표현을 하는 이들이 대개 여성이라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나이 들어가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물론, 일면에서는 여자는 나이 들수록 씩씩해지고, 남자는 감성이 여려진다는 ‘고백’과 ‘증언’도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른바 ‘호르몬’의 문제가 아니라, 나이 들기를 둘러싼 스스로의 의식과 사회적 반응이기 때문에, 논쟁의 곁가지를 미리 잘라두기로 한다. 물론 그 ‘호르몬’이 진짜 ‘호르몬만의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감성 훈련은 매일의 양식
  나이 들기란 생물학적 세포가 몸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길고 긴 여정이다. 성장이라는 단어가 신체를 대상으로 할 때는 대개 청소년이나 청년기까지 적용되지만, 마음과 정신, 태도와 인격이라는 사회적 차원으로 옮겨갈 때, 더이상 나이의 상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은 나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체감하는 바이지만,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저절로 성장하는 건 없다.

직업이 연구하고 가르치며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오래 공부했다고 해서 글쓰기가 쉬워졌다거나 더 좋은 연구를 하고, 훌륭한 선생이 되어간다고 말하기 어렵다. 물론 지식과 경험은 늘어나지만, 양적 팽창이 질적 도약을 담보하는 ‘자동화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저절로 인격 성숙의 길로 도약하는 기적 같은 건 절대 없다는 판단은 과연 나만의 문제일까.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잘 나이 들기에 필요한 마음의 장력 키우기나 인격의 연마, 감수성 훈련도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사람은 매일매일 노력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주저앉은 존재가 될 수 있다. 마치 애니매이션 〈스노우맨〉(1982, Dianne Jackson)에서 밤사이에 녹아버린 눈사람처럼, 형상을 잃은 물 같은 존재가 되어 흘러버리는 것이다.

어제 밥을 먹었으니 오늘은 굶어도 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인격이나 감성 훈련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매일의 훈련을 통해 우리를 인간답게 지탱시키는 일용할 양식이다. 게다가 모든 배움의 기초는 ‘겸손’함이 아니던가. 겸손하지 않으면 도대체 배워지지 않는 것이 배움 세계의 법칙이다(겸손한 태도로 몸에 익힌 것은 세포처럼 착 달라붙어서, 좋은 배움을 자기 몸의 길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이 듦의 힘은 일생 동안 쌓아온 정직한 공력에서 나온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 김현석)에는 평생의 상처를 비밀로 간직한 나옥분 여사(나문희 역)가 미국에서 위안부로서의 삶을 영어로 증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소한 민원을 끝없이 해서 구청 직원을 귀찮게 하는 ‘도깨비 할매’이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개입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역사적 증언을 할 수 있는 내적 힘도 기르고 기회도 감당할 수 있었다(실화를 바탕으로 삼았더라도 영화는 상상이지만, 관객들은 여기에 공감했으므로, 이것은 정서적 차원의 실재다).

  나옥분의 책임감 있는 발언의 힘은 ‘영어 능력’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오히려 그 힘은 영어까지 배워서 ‘당사자성’을 확보하려 했던 주인공의 의지에서 길러졌다. 발언자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영어로 말하기가 아니라, 자기 삶의 깊은 상처를, 마치 웃옷을 들어 올려 난자된 문신을 보여주듯 적나라하게 공개해야 했던 수행력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주인공은 그간 소소하게 꾸준히 사회적 실천을 해왔기 때문에, 상처로 얼룩진 과거를 말할 때에도, 폭력에 의해 삶을 저당 잡힌 분노를 폭발하듯 쏟은 것이 아니라, 역사적 증언의 당당한 주체가 되어 정의적 감성에 호소할 수 있었다(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 역]는 나옥분의 감성적 지지자이자 노력의 증인이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던 것. 자세한 것은 스포일러가 되기에 생략.). 떳떳함의 감수성은 오랜 세월 동안 숨겨진 것이 아니라 살아서 꿈틀거리며 자라고 있었다. 나이가 온축하는 힘이란 이토록 오래 걸리는 지난한 여정이며, 또한 그 때문에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갖는다.

  배우 윤여정씨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아래의 대화는 인터넷과 TV에서 보고 읽은 몇 개의 인터뷰를 섞어 재구성했다.).

  “연기 경력이 50년이 넘으신데, 연기가 좀 쉬워지는 건가요?”
  - “늙었으니까 더 해야 돼(요).”
   - “연기가 오래 해서 잘 하는 거면 좋겠어요. (연기를) 해 보니까 정답이 없어요.”
  - “(연기는) 매번 다른 거니까, 항상 처음 하는 거예요. 똑같은 연기를 계속하는 게 아니니까.”

  위의 인터뷰에서 ‘연기’라는 단어 대신, 자신이 오래 공들인 어떤 것을 대체해보면 자기만의 응답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내가 속한 직업군의 경우에는 학문, 연구, 교육이라는 단어를 넣어봤을 때, 대체로 일치하는 느낌이었다.: ‘나이 든다고 공부가 쉬워지진 않죠. ([이 나이에도] 세상 쉬운 게 없네.).’ ‘연구 주제가 달라지면 자료를 다 다시 봐야 해요. 예전의 메모 같은 건 소용도 없어요.(어디다 뒀는지도 모르지만…)’ ‘예전에 강의한 과목이라도 새로 다 준비해야 해요. 업데이트 안 하면 단박에 느끼는 게 학생들이에요.’ 등등).

  나이 들기란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여정이지만, 당사자에게는 항상 최초의 경험이다. 그 때문에 나이 들기란 익숙해지기가 아니라, 경이로움 그 자체다. 그것을 대하고 다루는 각자의 태도와 노하우에 대해, 마치 ‘안티 에이징’에 대한 실용 정보를 나누듯, 대화해보는 것은 어떨까.

  비바체(vivace 활기차게), 메조 포르테(mf 중간 정도로 세게), 돌체(dolce 매우 부드럽게), 또는 우조(羽調 맑고 씩씩하게)와 평조(平調 화평하고 편안하게) 같은 음악의 언어로 삶의 리듬을 숙고해 보는 것이다. 클래식 연주와 판소리 공연(〈심청가〉염경애 명창,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2017.9.21.)을 감상하면서, 자기 세계를 오래 숙련한 예술가의 신체 감각이, 일상을 사는 이의 몸에 온축된 나이 듦의 에너지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보았던 것이다.

* 최기숙, 「노년기 여성적 삶의 공론장, 17~19세기 여성 대상 壽序: 여성의 ‘잘 나이들기’에 대한 생애 성찰과 여성적 삶의 전범화」,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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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최기숙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교수 (한국학 전공)
·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예술교육 자문

· 저서
〈Bonjour Pansori!〉 (공저), Paris: Imago, 2017
〈물과 아시아 미〉 (공저), 미니멈, 2017
〈감성사회〉 (공저), 글항아리, 2014
〈감정의 인문학〉 (공저), 봄아필, 2013
〈조선시대 어린이 인문학〉, 열린어린이, 2013
〈처녀귀신〉, 문학동네, 2010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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