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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학살, 10재앙, 이집트왕자’ “모두 사실”

<바이블 미스터리>모세의 출애굽은 사실이었을까?

소정현기자 | 기사입력 2016/09/17 [19:16]

‘유아학살, 10재앙, 이집트왕자’ “모두 사실”

<바이블 미스터리>모세의 출애굽은 사실이었을까?

소정현기자 | 입력 : 2016/09/17 [19:16]

 

▲ 이집트 중부의 도시 카훈(Kahun)


영국 고고학자 카훈에서 아기 유골들 다수 발견

로잘리 발굴 보고서 노예 현장에서 돌연 사라져

 

출애굽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파피루스 문서 발견

바로의 이집트 땅에 ‘10가지 재앙들생생한 기록

피터 제임스 등 연대 앞당겨야 구약성경과 부합

 

▲ 구약성경의 출애굽 당대에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파피루스 문서가 발견되어 성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출애굽 이전 유아학살 증거발견되다

 

▲ 영국의 플린더 페트리(Flinders Petrie) 경은 이집트 중부 페이윰에 있는 도시 카훈(Kahun)을 발굴하였다    


영국의 플린더 페트리
(Flinders Petrie) 경은 이집트 중부의 도시 카훈(Kahun)을 발굴하였다. 그리고 로잘리 데이비드(Rosalie David) 박사는 그의 발굴 내용을 정리하여 발굴보고서를 발간하였다. 그 보고서에서 그녀는 이렇게 언급한다. “이 도시에는 상당수의 아시아인들이 있었던 것 같다.”

 

▲ 페트리는 또 다른 하나의 사실을 발굴하였다. 대형 나무 상자들이 카훈(Kahun)에 있던 많은 가옥들의 방바닥 밑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페트리는 또 다른 하나의 사실을 발굴하였다. 대형 나무 상자들이 카훈(Kahun)에 있던 많은 가옥들의 방바닥 밑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상자들에는 아기들의 유골들이 담겨 있었는데, 때로는 한 상자 안에 2명 또는 3명의 유해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죽을 당시 아기들의 나이는 몇 개월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라고 발굴 보고서에서 언급한다.

 

▲ 로잘리 데이비드(Rosalie David) 박사(오른쪽)  플린더 페트리경의  발굴 내용을 정리하여 발굴보고서를 발간하였다. 그 보고서에서 그녀는 이렇게 언급한다. “이 도시에는 상당수의 아시아인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언급한 발굴 보고서의 내용을 우리는 성경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 바로는 히브리인 조산원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출애굽기 116절이다.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를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그러나 조산원들은 이 명령을 무시하였다.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1:22)

 

이스라엘 민족의 수많은 산모들은 품 속에서 빼앗긴 아기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비탄의 눈물을 삼키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죽은 아기들을 상자에 넣어 살던 집 방바닥 밑에 묻었던 것 같다.

 

페트리가 발견한 것 중에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노예들이 돌연히 현장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로잘리 데이비드는 발굴 보고서를 기록하고 있다. “제왕의 피라미드 건설 완공이 카훈 주민들이 연장과 가재도구를 일터나 집에 내버려둔 채 끝내 그 도시를 떠나야 했던 이유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보고서는 가옥들 안에 내버려진 일상용품들의 수량, 그리고 그 용도의 범위나 형태들의 다양성은 능히 그들의 이탈이 돌발적이며, 사전에 계획된 바 없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사백 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12:41).

 

 

아이퓨어(Ipuwer) 파피루스문서 발견

 

출애굽 당대에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파피루스 문서가 발견되어 성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 아이퓨어(Ipuwer) 파피루스라 불리우는 이 문서는 고대 이집트 사람에 의해 작성된 파피루스 사본으로 모세의 출애굽 역사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퓨어(Ipuwer) 파피루스라 불리우는 이 문서는 고대 이집트 사람에 의해 작성된 파피루스 사본으로 모세의 출애굽 역사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귀중한 자료는 약 1세기 전 이집트 사카라 피라밋 근방인 멤피스 지역에서 아나스타시라는 사람에 의해 발견되어 1828년 네덜란드 레이덴 박물관으로 옮겨 보관중이다.

 

19세기 초 이집트에서 발견된 이푸어 파피루스라고 불리는 한 파피루스는 출애굽기에 기술된 사건들을 눈으로 본 증인의 기록처럼 생생하다.

 

출애굽기에서 기술된 사건들과 일치하는 이푸어 파피루스로 부터의 관찰들은 다음과 같다 이집트 전역에서의 역병, 나일강이 피처럼 변한 것과 물에 갈증이 난 사람들, 전지역에서 곡물들이 고사된 것, 가축들이 신음함, 빛이 없던 땅, 군주들의 자녀들의 죽음 및 귀금속과 보석들이 여자 노예들의 목에 걸려짐등이다.

 

출애굽기 12:7-12은 바로가 이집트 땅에 내려진 10가지 파괴적인 재앙과 악질로 인해서 모세의 요구대로 그의 노예들을 놓아주었다는 기록을 하고 있다. 성스러운 나일강 물은 핏물로 변하였고, 모든 생축은 악질로 죽었으며, 번갯불은 가연성 물질들을 모두 태웠고, 우박이 내려 밭에 있는 모든 채소를 치고 과일 나무를 꺾었으며,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 남아있던 지상의 모든 식물을 먹어치운 사건이 있었다.

 

이집트의 경제가 그토록 고통 받았다면, 그와 같은 국가적 대재난에 관한 기록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대재앙이 휩쓸고 간 이후에 풍미했을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기록으로 보아 파피루스 기록은 바로 전대를 기록한 제13대 왕조 때의 것일 가능성이 있다.

 

파피루스 기록을 보자. “강은 핏물이 범람한다. 사람이 그걸 마실까? 인간으로서는 못 마시리라.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다.”

 

파피루스 기록과 같은 재앙은 페이윰(Faiyyum)의 카훔(Kahum)에 있던 12대 왕조의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되었던 노예들이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노예로 언급된 셈족으로 추정된다.

 

 

▲ 이집트학 고고학자인 데이비드 롤(David Rohl)1995년에 출판한 자신의 저서 ‘A Test of Time’(시간의 풍상)에서 이집트의 연대기는 350년 삭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대를 조정하면 성경과 부합된다.

 

19951218일판 타임(Time) 지에는 10계명이 새겨진 석판(石版)을 들고 있는 모세의 그림이 표지에 등재되어 있다. 그 그림 한 복판에 성경은 사실인가, 아니면 가공인가?’ 라는 질문이 가로로 쓰여 있었다.

 

▲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니     

1:8-11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 ,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새롭게 발굴되는 고고학 자료들은 성경의 사건을 하나씩 사실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출애굽 사건과 일치하는 많은 증거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적 연대 때문에 부인되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은 이집트의 연대기를 몇 세기 축소하여 찾을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 12대 왕조를 모세와 출애굽의 시기로 끌어내려서 산정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모세 당시에 수많은 유태인 노예의 존재, 피폐한 이집트, 그리고 유태인 노예의 돌연한 출국의 흔적 등을 풍부하게 찾아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 저명한 이집트학 학자인 피터 제임스(Peter James)

 

 

1991년에 저명한 이집트학 학자인 피터 제임스(Peter James)암흑의 세기들(Centuries of Darkness)’ 라는 저서를 펴냈는데 그는 이 저서에서 이집트의 연대기는 250년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랍비인 Mordechai Becher는 자신의 웹페이지에서 이 파피루스는 이집트에서의 폭력적인 대변동, 기아, 가뭄, 노예들의 탈출 및 이집트 전역에서의 죽음 등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이푸어라는 이집트인이 기록한 것으로 평범한 이집트인의 입장에서 출애굽의 재앙들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으로 설명하는 것 같다.” 했다.

 

이러한 발굴로 인하여 임마누엘 벨리코브스키(Immanuel Velikovsky) 박사는 이집트 연대기의 기간을 줄일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역시 도노반 쿠빌(Donovan Courville) 박사도 동일 제안을 하였다. 이후에도 수많은 고고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이집트 연대기의 정정을 제안하고 있다.

 

피터 제임스(Peter James)암흑의 세기들라는 저서를 펴냈는데 그는 이 저서에서 이집트의 연대기는 250년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집트학 고고학자인 데이비드 롤(David Rohl)1995년에 출판한 자신의 저서 ‘A Test of Time’(시간의 풍상)에서 이집트의 연대기는 350년 삭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은 이집트의 제12대 왕조의 종말을 주전 15세기로 산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 때가 대충 성경의 출애굽기의 시기에 해당된다. 그 때 카훈에 거주하면서 제12대 왕조의 피라미드 건축에 노력 동원된 것으로 알려진 노예들이 이스라엘인들이었을 것으로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연구학회(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소속 브라이언 우드(Bryan Wood) 교수는 카훈에 살고 있던 셈족 노예들이 틀림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이 결론에 이르는데 다른 시각에서 출발하였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는 출 12:40에서 언급된 430년 이라는 기간이, 갈라디아서 3:17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아브라함의 시대부터 출애굽 당시까지의 전체기간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였던 실질적인 기간이라고 결론 맺고 있다. 이 추정도 앞에서의 예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인의 이집트 노예 시대를 제12대 왕조 기간으로 산정한 것이다. 이 때의 증거들은 성경의 기록과 잘 들어맞는다.

 

수정된 연대기 계산은 제 12대 왕조를 모세의 시기로 끌어내려 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왕조 기간에는 성경 기록을 지지하는 상황 증거들이 풍부하다.

 

▲ 바로에게는 소벡네페루(Sobekneferu) 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 .  모세의 양어머니로 추정된다.

 

 

모세는 아메넴헷 4세일까? ‘행방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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