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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밭뜰 詩人 안원찬] 풀 먹고 살던 할머이

용석준 기자 | 기사입력 2022/02/26 [21:49]

[긴밭뜰 詩人 안원찬] 풀 먹고 살던 할머이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2/02/26 [21:49]

 

  



풀 먹고 살던 할머이

 

굶주림에 좀도둑 많던 시절 

긴밭들 초입 산 밑에 괴나리봇짐 내려놓고 

땅 파고 돌 쌓아 움막 짓고 

눈만 뜨면 죽자사자 산나물 뜯어 

방앗간에서 얻은 밀기울 쌀겨 섞어 쑨 풀떼기로 

하루하루 연명한다 

삶아 말린 여유분 천장에 매달아 놓았다가 

호미 들고 지나가는 윗마을 아지매 불러 

한 다발씩 들려 보내던 세월 

늙어서 거동이 불편해지자 어느새 

지붕에 골이 파이고 검버섯이 진을 친다 

이장이 걷어다 준 곡식으로 끼니 때우며 

움막 앞에 쪼그려 앉아 햇살 부르고 

장에 오가는 사람들 구경하다 

말동무 할아부지 찾아드는 날이면 

꼬깃꼬깃한 십 원짜리 한 장 

황천길 갈 노잣돈 꼭 훔켜쥔 채 

문고리에 수저 꼽아놓고 아랫도리 내주고 

어쩌다 한걸음 늦게 찾아온 할아부지 

문 앞에 세워진 지팡이 보고 뒤돌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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