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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끄러움을 잃은 권력, 침묵을 선택한 사회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방관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용석준 기자 | 기사입력 2026/04/30 [23:13]

[칼럼] 부끄러움을 잃은 권력, 침묵을 선택한 사회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방관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6/04/30 [23:13]



인간은 실수할 수 있고, 권력도 실패할 수 있으며, 국가 역시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실수 그 자체가 아니라 실수를 대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부끄러움을 아는 권력은 스스로를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잃은 권력은 스스로를 교정하지 못합니다. 사과 대신 변명을, 성찰 대신 공격을, 그리고 책임 대신 타인의 침묵을 요구할 뿐입니다.

 

동양의 고전은 이를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습니다. 공자는 “의를 보고 행하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것(見義不爲 無勇也)”이라 했고, 맹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無羞惡之心 非人也)”라고 단언했습니다. 이 두 성현의 가르침은 하나의 본질을 가리킵니다. 사회는 언제나 '부끄러움을 잃은 자'와 '그를 보고도 침묵하는 자'라는 두 가지 힘에 의해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

 

더 큰 비극은 늘 ‘그 다음’에 시작됩니다. 기업의 회계 부정이나 대형 스캔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처음에는 소수만이 이상함을 감지합니다. 그러나 "내 일이 아니다", "나섰다가 손해 본다"는 식의 작은 침묵이 쌓여 어느 날 조직 전체를 무너뜨립니다. 수많은 이가 일자리와 재산, 그리고 사회적 신뢰를 잃고 나서야 사람들은 “사실은 알고 있었다”고 뒤늦은 고백을 내뱉습니다. 역사는 늘 이런 뒤늦은 후회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치 현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왜곡과 사소한 거짓, 대수롭지 않은 책임 회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 순간, 그 파렴치는 새로운 기준이 됩니다. 부끄러움을 잃은 자는 점점 더 대담해지고, 침묵하는 대중은 점점 그 풍경에 익숙해집니다. 그렇게 사회의 도덕적 마지노선은 소리 없이 붕괴됩니다.

 

플라톤은 “정치에 무관심한 대가는 가장 저열한 자에게 지배받는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한나 아렌트 역시 악은 거대한 괴물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자란다는 ‘악의 평범성’을 역설했습니다. 모른 척하고,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평범한 선택들이 쌓여 결국 한 사회의 운명을 비극으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엘리 위젤은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라 했고, 데스몬드 투투는 “불의 앞에서 중립은 결국 억압자의 편”이라고 일갈했습니다. 중립이라는 이름의 방관은 사실상 가장 강력하게 부조리한 현상을 유지하는 힘이 됩니다. 이 문장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더없이 정확한 진실을 꿰뚫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방관할 것인가, 아니면 책임질 것인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세상은 가만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저절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공존의 가치는, 오직 행동하는 사람들의 용기 위에서만 비로소 싹을 틔울 수 있습니다.

 

권소영

강원동학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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