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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

용석준 기자 | 기사입력 2026/04/30 [22:27]

장독대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6/04/30 [22:27]



밤새 방바닥의 온기를 주던 온돌 바닥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새벽녘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따듯한 품속으로 자꾸 파고들어 다정을 엮고 싶은 시간이지만 어른을 모시는 효심에 나른한 몸을 일으켜 아침밥 준비를 하려고 조심스럽게 나오니 밤새 눈이 소복이 내려 온 천지가 포근한 솜이불을 씌운 듯 바라본 마음이 행복하다.


선이 둥근 초가지붕도 네 귀퉁이가 날아갈 듯이 날렵한 봉황의 날개 깃 같은 기와지붕에도 두텁게 내린 눈은 완만한 곡선미를 만들어 놓아 이아침에 신선한 그림으로 와 닫고, 뒷마당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장독대 위에 옹기종기 놓인 장항아리를 덮은 소래 위에 소복하다 못해 동그라니 쌓인 눈을 보노라면 마냥 따듯한 정감으로 젖어온다.

크고 작은 옹기 항아리들 투박하고 순박하며 꾸밈없이 나름대로의 색깔, 그 위에 모양을 위한 그림이 아닌 무명의 도공들이 그려놓은 애환의 이야기들 같이 느껴진다.

그 언저리에서 풍기는 된장 냄새만 가지고도 알 수 있거니와 투박하면 투박한 나름대로 찌그러지면 찌그러진 대로 닦고 닦아서 정이 켜켜이 묻어 은은히 발하는 윤기만으로도 대대로 내려온 그 집 안주인의 살림 솜씨나 그 집안의 길흉을 짐작했다고 한다.

장독대는 마치 뒤뜰에 자리 잡은 그 집의 가도요 겉이고 속의 모든 것이었으니 예전부터 주부들은 장독대치레를 자랑삼아 왔었다.

흙에서 나고 흙에다 양식을 키우고 흙을 뭉쳐 바람을 막고 흙으로 그릇을 빚어 찬란한 문화를 창출했던 우리의 위대한 조상이었다.

실로 대단한 것은 식품을 발효시켜 오래 두고 먹을 줄 알았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것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장독 김치 독은 더 대단한 것이다.

우리나라 여인들은 일 년에 두 번 큰 행사를 치른다. 하나는 메주를 쑤어서 장과 간장을 담그는 일로 이른 봄 가장먼저 부지런을 피워야 한다. 집안의 식솔을 기준으로 하고 친척의 왕래나 큰일 작은 일들을 염두에 넣어 가늠하고 넉넉하게 담가서 해마다 묵혀가며 먹을 준비를 함으로서 양식은 흉년이 들어 모자를 지라도 장독은 비워지지 않게 하였다.

어쩌다 양식이 떨어지는 보릿고개에도 장 덕분에 굶어 죽을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다음은 추운 겨울이 닥치기 전에 김장을 담그는 일이다. 장독대 항아리가 간장 된장이 비어지면 으레 김장독이 된다. 장독대에서 내려져 김치가 가득 담겨지고 땅에 묻고 움막이 만들어지는 것이 다를 뿐 독의 소임을 다하며 우리들과 함께 역사를 이어왔다.

항아리는 몸집이 큰 것은 쌀이 두어 섬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바람이 불어도 날아 갈 것 같은 앙증맞은 꽃 단지까지 그 크고 작음과 생김생김 또한 천태만상이다.

먼 곳까지 운반이 어려운 시절이라 지방마다 옹기가마가 있어서 장사치들이 지게에 가득 지고서 마을마다 순회하던 이들의 애환도 역사 속에 묻혀진지 오래 되었다. 마을 어귀 성황당 고개까지 숨을 몰아쉬면서 올라온 독 장사 떠꺼머리총각이 지게 받쳐놓고 잠시 땀을 들이다 홀연히 잠이 들어 비몽사몽간에 옹기전 단골집 셋째 딸의 앵두 같은 모습을 상상하다 몸부림치는 바람에 발길로 지게장대를 건드려 하나도 팔지 못한 독을 몽땅 깨버렸다는 이야기도 이제는 흐른 세월 속에 잊혀 간다.

집안에 근심걱정이 있을 때는 별도 잠든 밤 정한 수 장독 위에 차려놓고 하늘을 우러러 소원을 빌었던 우리네 어머니! 마당이 넓은 집이면 장독대 둘레에 봉선화 심어 손톱을 곱게 물들이던 아가씨들…….

아침마다 한번은 물걸레로 항아리들을 닦아내야 마음이 개운하다는 여인들의 심성을 닮아 가는 장독들은 행주질 많이 받은 것일 수 록 아름다운 운치를 풍기는 사랑을 받을 줄도 줄 주도 아는 우리네 장독들…….소박맞고 친정으로 가다가도 비가 오면 장독 뚜껑 열어 놓은 것 때문에 되짚어 돌아와 장독을 덮었고 다시 갔다던 아릿한 사연이 담긴 장독들이 이제 서서히 없어져 가고 있다.

핵가족이 되어가고 주거환경이 바뀌어가니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그들을 포옹하지 못하고 바쁜 시간 때문에 둔탁한 놈이 따라오지 못해 버려지고 사랑에 버림받고 깨져간다.

장독대 위에서 우리를 잃고 장독대 있는 우리 집이 아닌 어느 낮선 주막집에 머무르는 나그네 같은 허전함을 자꾸 느끼게 하는 것은 사라져 가는 우리의 멋이 담긴 장독대며 장독들이 추억 속에 묻혀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일 것이다.  

 

석도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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