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하게 먹으로 거칠고 간략하게’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4/12/06 [00:23]
첫눈은 겨울을 알리는 전령이다. 전령은 겨울이 점령해야 할 영토를 염탐하고 가는 것이니 눈이 살짝 내려야 맞다. 그런데 이번 첫눈은 예고도 없이 본진이 기습적으로 들이닥쳐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허련(許鍊, 1808~1893)의 ‘설경산수도’는 마치 이번 첫눈으로 뒤덮인 마을을 그린 것 같다. 그림은 아주 단순하다. 눈 쌓인 뒷산을 병풍 삼아 초가집 몇 채가 간략하게 그려져 있다. 뒷산과 초가집 사이에는 짙은 먹으로 칠한 나무들이 울타리처럼 둘러쳐져 있다. 화면은 좌우대칭처럼 산과 나무와 집을 배치한 구도가 비슷하다. 그래서 더욱 적막하고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집안에도 골목길에도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얼어붙은 추위에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겨울 풍경이 오롯이 펼쳐진다.
다만 울퉁불퉁하게 그린 산의 형태와 우측으로 기우뚱한 기울기가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흰 산을 드러내기 위해 산은 종이 그대로 놓아두고 하늘을 먹으로 물들여서 마치 산에 흰색 물감을 칠한 것 같은 효과를 거뒀다. 눈 쌓인 땅과 지붕도 마찬가지다. 그림 상단의 제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광활한 하늘을 검소한 먹으로(乾華儉墨) 거칠고 간략하게(荒寒簡率) 그리는 것 역시 사람의 기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亦無人法也).’
여기에서 ‘검소하게 먹으로 거칠고 간략하게’라는 표현은 원(元)대 화가들의 남종문인화법을 뜻한다. 허련은 전남 진도 출신인데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발탁으로 중앙화단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김정희는 북종화 대신 남종문인화를 최고로 친 작가인데 허련 역시 마찬가지였다. 명나라의 동기창(董其昌)이 주장한 남북종론(南北宗論)은 화가의 신분에 따라 그림을 분류하는 개념이다. 사대부가 교양으로 그린 그림은 남종화이고 직업화가가 그린 그림은 북종화라는 뜻이다. 동기창 자신이 사대부였으니 남북종론은 다분히 직업화가를 무시하고 문인들을 띄워보겠다는 우월감이 작용한 편파적인 이론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종론은 동기창 이후 수백 년 동안 동양화단을 재단하는 잣대가 됐다. 그런 등식에 따르면 남종화 ‘라인’은 당(唐)의 왕유(王維), 송(宋)의 소식(蘇軾)과 미불(米?), 원의 사대가(황공망, 오진, 예찬, 왕몽) 등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특징은 대상을 많은 붓질로 꼼꼼하고 정확하게 그리는 필법 대신 성글고 간략한 묘사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허련의 ‘설경산수도’가 남종문인화의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허련은 그림기법과 제시를 통해 자신이 남종화가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는 이외에도 틈만 나면 자신이 남종화가임을 드러냈다. 허련이라는 이름 대신 허유(許維)라는 이름을 쓴 것도 왕유를 사모했기 때문이다. 왕유의 자인 마힐(摩詰)을 자신의 자로 썼다. 그의 남종화 사랑은 왕유에서 끝나지 않고 황공망(黃公望)으로 이어졌다. 김정희는 제자인 허련에게 소치(小痴)라는 호를 하사하는데 이것은 대치(大痴) 황공망에서 따온 것이다. 허련은 스승에게서 “중국에 대치가 있다면 조선에는 소치가 있다”는 칭찬을 받고 고무돼 적극적으로 조선의 소치가 되기로 결심한다. 소치라는 호 외에도 노치(老痴), 석치(石痴) 등의 호도 겸해 사용했다. 그에게 ‘치(痴)’는 ‘그림만 그릴 줄 아는 바보’라는 뜻을 넘어 황공망에게 가닿을 수 있는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허련을 ‘제2의 왕유’ 혹은 ‘제2의 황공망’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허련의 ‘설경산수도’가 눈길을 사로잡는 이유는 남종화법으로 그렸기 때문이 아니다. 잘 그렸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라인에 줄을 섰나가 작품의 위대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너무 거칠고 산만해 눈길을 돌리고 싶은 그림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 자신을 증명할까.
조정육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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