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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언우의 홍천학 3] 홍천강 유역의 지리적 환경과 유적의 입지

용석준 기자 | 기사입력 2023/05/22 [16:30]

[동언우의 홍천학 3] 홍천강 유역의 지리적 환경과 유적의 입지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3/05/22 [16:30]

홍천강 유역의 지리적 환경과 유적의 입지

 

1. 지리적 환경

 

홍천군의 전체적인 지형은 태백산맥 서사면의 일부를 차지하며 기복이 심하며, 북동쪽은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들이 연이어 있을 정도로 산지가 많아 군 전체의 87%를 차지한다. 북쪽으로 가마봉(可馬峰, 1,192m), 응봉산(鷹峰山, 1,103m), 가칠봉(柯七峰, 1,240m), 응태산(鷹伏山, 1,360m), 두노봉(頭老峰, 1,422m), 동쪽으로 오대산(五臺山, 1,563m), 상왕봉(象王峰, 1,493m), 남쪽으로 계방산(桂芳山, 1,577m), 발교산(髮校山, 988m), 운무산(雲霧山, 980m) 서쪽으로 장락산(長樂山, 627m), 나산(羅山, 628m) 등이 솟아 있으며 남쪽과 서쪽은 상대적으로 낮은 지형을 보이고 있다.

 

홍천강의 수계는 모두 북한강 수계에 속하며 지방하천 1개와 준용하전 33개가 있다. 홍천강은 홍천강 내면을 제외한 홍천군의 모든 지역과 춘천시 남면,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북부지역을 그 유역 분지로 삼고 있으며, 유역 면적은 1,566.20km²로 북한강 수계의 지류하천 중 유역면적 2,886.60km²인 소양강 다음으로 큰 하천이다.

 

두촌면 철정리에서 장남천과 내촌천이 합류해 홍천강이 되면서 남서쪽으로 오르다가 화촌면 내삼포리에 이르러 군업천과 합류되고 굴운리에서는 풍천리천, 검율리에서는 덕치천. 연봉리에서는 장전평천, 하화계리에서는 성동천, 굴지리에서는 굴지천, 남노일에서선 양덕원천, 팔봉리에서는 팔봉천, 어유포리에서는 구만천, 반곡리에서는 두미천, 중방대리에서는 중방대천, 모곡리에서는 길곡천을 합류하여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이렇듯 홍천강은 북한강 본류와 합류되기전 10개 남짓한 소하천과 합류되면서 직류 및 곡류되어 여러 개의 충적대지 및 저평한 구릉지를 형성하고 있다. 홍천강 유역 분지는 동서로 길고 하천이 발원하는 배후산지인 응봉산(1,103m) 쇠뿔봉(1,127m) 등은 동쪽에 치우쳐 있다. 홍천강 본류는 중류구간에서 남서류하여 직선유로의 형태이나 하류구간은 감입 곡류하여 북한강과 만난다. 홍천강 양안에는 범람원, 하안단구, 선상지 등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지형은 많은 유적과 유물이 조사되었고, 경작지와 도로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2. 홍천강 상류 유적의 입지

 

영서 북부지역은 홍천강, 소양강 등과 그 지류가 대체로 남서 방향으로 진행하는 단층대를 따라서 흐르면서 침식분지와 하천 충적지도 이것을 따라 발달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홍천- 인제, 양구- 춘천 등을 연결하는 구조선이다. 북쪽의 소양강(인제)과 남쪽의 홍천강(홍천)에 의해서 비교적 폭이 넓은 침식 구간과 하천 주변 충적지대도 형성되어 사람이 거주하고 교통에 편리한 지역이다.

 

  © 그림Ⅱ-1> 홍천의 교통망(서울-강른, 춘천-원주


춘천분지와 원주분지 사이에 위치하는 곳이 홍천 분지이다. 홍천 분지는 홍천강에 의하여 형성된 침식분지가 대체로 동서 방향을 길게 형성되어 있다. 남쪽의 원주와 북쪽의 춘천을 남북으로 이어주는 곳으로 죽령- 원주- 홍천- 춘천- 철원 등으로 연결되는 영서 내륙교통로의 요지이다. 더불어 이 교통로는 영동지방의 동해연안의 교통축과 평행을 이루며 고대부터 한반도 북부와 남부를 연결하는 기본적인 교통축으로 활용되어 왔다. 따라서 <그림Ⅱ-1>과 같이 홍천지역은 영서북부지역에서 동서와 남북방향의 교차되는 지역으로 교통과 군사상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홍천강 유역에서 홍천분지를 중심으로 홍천강의 하안충적지에서 유적이 출토되고 있다. 홍천강 유역에서 가장 넓은 침식분지가 홍천읍 일대이고 그 상류로 홍천강과 그 지류가 합류하면서 형성된 비교적 큰 하안 충적대지가 분포되어 있는데 이러한 지역에서 유적지가 분포되어 있다.

 

최근 홍천강유역 일대에서 조사된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 지역들에 상당한 규모의 마을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추정된다. 가장 조사가 많이 이루어진 곳은 홍천읍, 화촌면, 두촌면 일대이다. 국도 44호선 확장 및 이에 따른 개발로 비교적 조사가 많이 이루어진 곳이다. 주거지와 고분 등 삼국시대 이전부터 형성되었던 생활유적이 곳곳에서 출토된다.

 

  ©그림Ⅱ-2> 홍천철정리 유적 발굴조사지


대체로 <그림Ⅱ-2>과 같이 강변 충적대지의 자연제방 상면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비교적 수해나 산사태 등 자연재해의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지역이다. 또한 식수의 조달이 편리하고 배후에 농경지가 분포되어 있고 강을 끼고 있어 농업과 성산리유적에서 출토된 어망추와 철제 작살로 보아 어업활동도 상당했으리라 판단된다. 하천에 의해서 침식된 하안충적대지가 거의 직선으로 연결되어 외부와의 교통도 편리하다. 홍천읍에서 두촌면 일대까지 하안 충적지가 홍천강을 따라서 발달되어 있다. 그 중 홍천읍, 두촌면(철정리) 등 하천이 합류하는 지역에서 비교적 큰 하안충적지가 발달했다.

 

 

  © 그림 Ⅱ-3> 유적의 입지

 

이러한 지역에서 선사시대 이후 주거지 유적이 출토됐다. 홍천 역내리유적, 철정리유적, 성산리유적, 신장대리유적 등으로 대체로 홍천강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천의 남쪽보다는 북쪽이 양지바르고 북서풍의 영향을 덜 받는 지역이다. 성산리유적은 66기의 주거지가 홍천강 북안 자연 제방을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다. 이러한 양상은 내촌, 서석 등 홍천강 상류지역 하안충적지 일대에서도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지만 홍천은 물론 남한강 유역 영월, 정선 등지의 조사사례를 보아도 짐작이 가능하다. 홍천 동면 일대의 매장문화재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하천을 따라 충적지대와 배후 산록에 다수의 유물산포지가 확인됐다. 청동기시대 이후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러한 마을들이 청동기시대 이후 곳곳에 들어서면서 이를 서로 연결하는 교통로도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사시대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지역 단위로 재편되면서 다시 국가 단위의 광역교통체제에 연결되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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