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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복 작가 에세이 20] 老人을 말하다

용석준 기자 | 기사입력 2023/03/01 [11:41]

[홍진복 작가 에세이 20] 老人을 말하다

용석준 기자 | 입력 : 2023/03/01 [11:41]

 

  © 1963년 김기영 감독작품 '고려장'


노인은 마지막 잎새


노인이 노인을 말한다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만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삼고자 한다. 인생에서도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이 있다.

 

10대. 20대는 꿈과 희망이 있는 봄이다. 인생에서 가장 좋을 때다. 30. 40대는 청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과 활동이 왕성한 여름이다. 50. 60대는 인생의 열매를 수확하고 마무리하는 쓸쓸한 가을이다. 70대 이후는 성하던 몸이 이곳저곳 고장이 나고 질병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을 앞둔 추운 겨울이다.

 

우리나라 독거노인비율이나 노인빈곤율이 세계에서 하위에 속한다고 한다. 통계에 의하면 70세 생존률이 86%이며 80세 생존률은 30%, 90세 생존률은 5% 라고 한다. 80세 전후로 가장 많이 사망한다는 얘기다.

 

90세가 되면 100명 중 95명은 저 세상으로 가고 5명만 생존 한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빨리 가고 늦게 가는 차이일 뿐이지 모두가 간다는 것은 진리다. 그나마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평균 나이는 76세~78세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 나이가 딱 그 나이다.

 

이 글에서는 노인의 사회적 문제를 다루기보다 인생의 겨울에 해당하는 노인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송강 정철선생의 ‘이고 진 저 늙은이’옛시조를 읊어보자.

 

이고 진 저 늙으니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러라커늘 짐을 조차지실까.

 

노인의 서럽고 비참한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내가 젊어서는 흰머리에 주름살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았을 때는 사람이 저렇게 변할까 하고 생각을 했는데 지하철 노인석에 내가 앉아 있는 모습을 젊은이들도 보면서 내가 젊어서 한 생각을 똑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참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 관련해 옛 글을 보자.

 

春小年들아 

白髮 老人 보고 웃지마라 

공번된 하늘아래 넨들맨양 져머시랴 

우리도 少年 行樂이 

어제론 듯하여라.

 

젊은이들이여 백발노인 보고 웃지마라 금새 늙는다는 말이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 가면 노인들이 무료급식을 먹기 위해 긴 줄을 나라비로 서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이런 광경이 비단 서울에만 있을까? 전국 대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일테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경제적으로 10위에 속한다는 경제 강국이지만 부끄러운 일이다. 가난은 나랏님도 해결 못한다고 했는데 이 말이 맞는 듯하다. 노후가 비참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노인하면 우선 떠 오르는것은 쇠약해서 무력하고 무능해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아무데도 쓸모없는 젊은 사람에게 짐만 되는 존재로 취급받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노인이 되면 모든 장기능이 쇠약해져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므로 소화도 잘 안되고 이곳저곳 자꾸 고장이 나고 아픈 곳이 나타난다.

 

노인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生老病死의 '病'의 단계다. 사고사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노인은 인생에서 겨울이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마지막 잎새이다. 노인은 병들고 언제 죽을지 모르고 혼자 지내야 하기에 별장, 전원주택도 좋지만 병원 가깝고 식당 가깝고 지하철 가깝고 가능하면 자식 가깝게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한 가지 더 가능하다면 은행도 가까우면 금상첨화다.

 

 

 



노인 행세는 NO

 

내가 겸임교수시절 사회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노인문제를 가지고 강의를 한 적이 있다. 40여 년 전이라 지금과는 젊은이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하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학생들에게 노인에 대해 생각나는 점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긍정적인 내용으로는 정이 많고 자상하고 이해심이 많다는 내용이었는데 충격적인 것은 부정적 내용으로 노인은 추하다. 냄새난다. 잔소리가 많다. 내가 살던 때를 강요한다. 등이었다.

 

곁들여서 참고로 알아본 내용은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인데 '순종'이라는 말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과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젊은이들은 틀에 박힌 생활을 강요받기보다는 나름대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른들이 참고해야 할 것이다.

 

강의 당시 40대이었으니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에 와서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정신이 바짝들 때가 있다. 노인이 추하다. 냄새가 난다는 말 때문이다.

 

이 말을 생각하면 외출할 때는 머리도 감고 물에 여러 번 행군다. 혹시나 냄새가 나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에서다. 귓속도 닦고 때밀이 수건으로 온 몸을 닦고 발가락도 꼼꼼히 닦는다. 3년간 마스크 덕분에 입 냄새는 신경을 비교적 덜 썼지만 양치질을 한 후에는 가글은 필수다. 길게 나온 코털도 자르고 호랑이 눈썹이라 부르는 길게 한두 개 나온 흰 눈썹도 자른다. 물론 수염도 깔끔하게 면도를 한다. 손발톱도 짧게 자르고 눈에 눈꼽은 끼지 않았는지 살펴본다. 늙으면 콧물도 더 나는 것 같다. 네프킨이나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면서 닦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발뒷꿈치 각질도 가끔은 제거도 해주고 내복은 매일 갈아입는다. 향이 은은한 스킨도 바른다. 앉아있거나 걸을 때는 가슴을 펴야 덜 늙어 보인다.

 

노사연이 부른 어느 노부부의 노래 가사에 나오는 내용에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물리적으로는 썩어간다고 하는게 맞다.

 

겉은 닦아주면 되겠지만 노인이 되면 내장이 썩어가기 때문에 노인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한방에서는 생강차를 끓여 마시라고 한다. 특히 겨울철에는 따끈한 생강차를 마시면 몸도 따듯해지는 것 같아 권해본다. 외출 약속이 있을 때는 며칠 전부터 집에서 혼자 머리 염색도 한다. 흰머리가 더 추해보이는 것 같아 염색하면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옷도 별난 것은 없어도 외출 며칠 전부터 옷장을 열고 이것도 꺼내보고 저것도 꺼내본다. 그 중에서 그래도 그날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려고 아니 추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골라 입고 나간다. 때로는 청바지에 브라운색의 캐쥬얼한 신발을 신고 나간다.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는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고 젊은이들 자리에서는 왕년의 옛날 얘기는 하지 말고 귀는 열어야 한다.

 

 



노인의 가치는 경륜

 

고려시대는 먹을 것이 궁한지라 일정한 나이가 되면 노인은 산속 동굴에 두고 음식을 조금씩 갖다 주다가 그곳에서 죽으면 묻어버리는 고려장제도가 있을 때다.

 

중국 황실에서 우리나라 왕실에 공물을 바치게 하던 시절에 트집을 잡을 게 없으면 풀기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일이 많았다. 황실에서 넘어온 과제는 나무토막을 보내오면서 위아래를 알아 보고하라는 문제였다. 우리나라 왕실에서는 문제를 풀지 못하고 황실에 보고하는 날짜가 다가오자 고민 끝에 백성들에게 방을 써 붙이고 포상금까지 내걸었다.

 

방을 본 아들이 산속에 모신 어머니를 찾아가 이 문제를 말씀드렸더니 큰 그릇에 물을 떠 오라고 하여 물을 가지고 갔더니 물 안에 나무토막을 집어넣었다. 나무 밑은 무거우니 밑으로 간 데가 밑 부분이라고 알려주었다. 아들은 이 사실을 왕실에 알려 포상금까지 받게 되었다. 그후 나라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 노인에게도 배울게 있다고 해서 고려장을 폐지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하는 이야기다. 노인의 지혜를 사장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노인은 힘도 없고 동작도 우둔하고 판단력도 흐려진다. 하지만 노인의 강점은 뭐니 뭐니 해도 경륜이다. 나이테가 많다는 점이다. 단순히 오래 살았다는 것이 아니라 오래 사는 동안 몸으로 체득한 삶의 지혜가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노래가사에 ‘나는 젊어도 봤다 니들은 늙어봤냐’처럼 경륜은 그 나이를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60대는 70대를 모르고 70대는 80대를 알 수 없다. 깊이 있고 폭넓은 지혜로운 나만의 가치를 아니 그 시대만의 가치를 무용지물로 휴지통에 버려서는 아니 된다.

 

내가 젊어서 배운건데 생각이 죽어서 말이 되고 말이 죽어서 글이 된다고 한다. 말이 글보다 아름답고 생각이 말보다 고상하다. 따라서 경륜이 있는 글을 읽으면 삶의 깊이가 나오고 아름답고 선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노인은 생리적으로 쇠약하여 추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노인은 아무 쓸모없는 젊은이들에게 짐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경륜으로 쌓은 지혜가 가치로운 존재다. 이런 가치를 젊은 세대에게 전수하는 것도 책임 있는 모습이다. 그 전수하는 방법의 하나가 글 쓰는 활동이 아닌가 싶다.

 

이제 노인은 하나 둘씩 짐을 내려놓고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물론 취미생활로 하는 거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아름다운 청춘이 지나간 세월 돌이킬 수 없는 지난 날 어차피 누구나 피할 수 없고 거쳐야 할 겨울 아닌가? 이제 노인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보다는 어떻게 해야 잘 죽는가를 생각해야 할 때다.

 

추한 모습으로 죽기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죽는 것에 대해 한번쯤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건강도 허락되어야 하고 돈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하고 이웃이나 지인들에게 진 빚도 갚고 그래야 영혼도 미련 없이 하늘나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뜻대로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홍 진 복 

(전)서울신사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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