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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샘의 홍천문화 탐방 63. 북방면 성동리 동동산 만세운동

김동성 기자 | 기사입력 2022/11/28 [20:18]

김샘의 홍천문화 탐방 63. 북방면 성동리 동동산 만세운동

김동성 기자 | 입력 : 2022/11/28 [20:18]

 

 

동동산은 남궁경 옹이 4.1 만세운동에 관해 주민들에게 전해 듣고서 들추어 고증하고 지역민들의 구전을 토대로 옛 기록을 찾아내서 이를 근거로 이곳 동동산을 후세에 기리기 위하여 지역민들과 힘을 합하여 자연석에 비를 새겨 1994년 4월 1일 세우게 되었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조국에 국운을 한탄하며 매일같이 동산에 올라가서 발을 동동 구루며 독립만세를 불렀던 곳 동동산, 만세운동과 관련하여 지도자인 성동리의 신여균(申與均) 김원봉(金原鳳)과 하화계리 최승혁(崔承赫)이 합세하여 태극기를 만들었다. 예정된 홍천읍 장날인 4월 1일 홍천읍과 북방면 주민들은 장터로 몰려들었다. 북방면 화동리 능평리 상화계리 중화계리 하화계리 농민은 때마침 홍천 인제간 도로 공사장에서 부역인부로 대기하고 있었다가 장터로 달려가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미리 준비한 태극기가 군중에게 나누어지고 주동자들이 앞장서서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군청으로 몰려가니 수는 장마 물 같이 불어나서 그 수가 오백여명이 넘었다 한다. 당시 김동훈(金東勳) 군수는 혼비백산하여 행방을 감추고 홍천면장 임준철(林準轍)도 도망가 버렸다, 일제 관리는 만세소리가 진동하는 군중들의 위세에 눌려 우왕좌왕 했다. 특히 북방면에서 도로 공사장에 부역인부로 나왔던 사람들은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다는 연락을 듣고 삽과 곡괭이를 들고 읍내로 들어가 군중과 합류하였고, 오후가 되자 춘천에서 헌병대와 수비대 병력이 도착했다. 증원군은 홍천헌병대와 합세하여 주동자를 체포하기 시작했다. 체포된 인원은 일본 측 기록에 33명이라고는 하나 일제검거선풍에 걸려든 사람들은 이보다 몇 배 더 많았을 것이며 이들은 갖은 고문과 고초를 겪었다. 내 나라를 독립시켜달라는 시위운동이 치안을 방해했다는 죄명으로 1년 6개월에서 3개월 징역을 서대문 형무소에서 살며 갖은 고문과 형벌로 만신창이가 되어 출옥 후에도 그 여독으로 괴로운 일생을 보내야만 했다. 조국의 독립을 기원하는 답답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던 대한독립만세! 그 소리가 지금도 저 동동산에서 들리는 듯하다.

 

 

※ 홍천문화재 탐방은 필자가 2021년 홍천문화원에서 운영하는 마을관광해설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역사적 사실, 강의에서 논의되었던 내용, 현장답사를 하면서 남겼던 기록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혹시 왜곡되었거나 잘 못 알고 기록되어 있는 것들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수정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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