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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동학의 중심 풍암 2리는“東學里”로 改名 되어야 한다.

최낙인(홍천군동학혁명 유족회 회장/홍천문화원 홍천학연구소 연구위원))

김동성 기자 | 기사입력 2022/09/26 [09:54]

홍천 동학의 중심 풍암 2리는“東學里”로 改名 되어야 한다.

최낙인(홍천군동학혁명 유족회 회장/홍천문화원 홍천학연구소 연구위원))

김동성 기자 | 입력 : 2022/09/26 [09:54]

 

 

 

지난해 11월 홍천군 서석면 풍암2리 주민들은 마을 명칭을‘東學里'로 바꾸고자 서석면행정복지센터에 ‘풍암 2리 법정리·행정리 명칭 변경 요청서' 를 제출, 행정에 적극 반영해 줄 것을 요청을 하였으나 지금까지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 되지 않고 있다.

 

“東學里” 변경에 대한 의견 수렴 결과를 보면 풍암 2리에 거주하는 112세대 중 107세대가 개명에 동의할 정도로 지역 주민들은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표시했다.

 

2014년 지번 주소를 도로명 주소로 변경 시행한 이후 현재까지 동학과 관련된 지역에서 “東學”을 도로명 주소에 반영하여 개명을 한 곳은 전국에 총 10곳 (동학로 8곳, 동학길 2곳)이며, 그 중 하나가 풍암 2리로 진등을 감싸 돌아가는 길을 2022. 5. 18. “동학길”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마을 이름을 “동학리”로 개명을 한 곳은 전국에 한 곳도 없다.

 

풍암리는 1리와 2리로 나누어져 있으며 풍암 1리는 56번 국도변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고 서석초·중·고등학교와 다수의 행정기관이 있고, 5일 장이 서는 등 서석면의 중심지이다. 반면에 풍암 2리는서석면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가면 뒤쪽으로 언덕배기가 있고 그 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 보면 고개 마루 정상에“東學革命軍 慰靈塔”이 우뚝 솟아 있다. 그리고 이 위령탑으로 가는 언덕배기 고개가 “자작고개”인데 이를경계로 하여 펼쳐진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작고개는 성황당 고개로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풍암 2리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치성을 드리던 곳이다. 돌로 고갯 길을 메우고 시멘트 포장을 하기 전인 197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장마철이면 마을 어귀뿐만 아니라 자작고개가 온통 수렁으로 변하였고, 고개 중간 언덕배기 귀퉁이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사람 뼈다귀가 흙속에서 튀어 나왔다. 밤이면 도깨비불이 번득여서 넘어 다니기 무서웠던 고개로, 자작고개로 불리 우는 이유는“동학농민군 전투 때 일천여명의 동학농민군이 죽어가며 흘린 피가 자작자작 젖어 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당시 동학농민군 전투의 흔적으로 아직도 풍암 2리 주민들의 가슴속 응어리로 남아 있다.

 

평화롭던 이 곳 풍암 2리 자작고개는 차기석 부대의 동학농민군 수천여명이 집결하여 10여일간 머물다가 10월 23일 맹영재 진압군이 쏘아 대는 총탄에 약 일천여명의 동학농민군이 처참하게 죽어가 곳으로 당시 진압군의 기록에 의하면 “총으로 쏘아 죽인 자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거나 “洪川 瑞石 일대는 사람의 자취가 영원히 끊어졌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또한, 맹영재 진압군들은 익일 “풍암 2리 마을 가가호호를 수색하여 부상당한 동학농민군과 미쳐 도망가지 못한 마을 사람들을 동학교도라 하여 무참하게 죽였다.”는 후손들의 증언도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풍암리 자작고개 동학농민군 전투는 강원도 최대의 전투이고, 이 전투가 없었다면 동학농민혁명은 충청도와 전라도에 국한된 동학 봉기로 그 의미가 미약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학농민군 일천여명이 전사한“풍암리 자작고개 전투”는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인 농민혁명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역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는 중요한 전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풍암리가 동학리로 개명되어야 하는 이유는 첫째, 풍암 2리 자작고개 위에 세워진 “東學革命軍 慰靈塔”은 1977년에 강원도에서 첫번째로 동학과 관련하여 기념물제 25호로 지정을 받은 곳이다.

 

둘째, 1894년 당시 풍암리 동학농민군 전투는 한 곳에서, 하루에 일천여명 이상이 총살을 당한 곳으로 동학농민혁명군 전투중 가장 참혹하고 처참한 전투지 중 하나이다.

 

세 번째, 강원도에서는 유일하게 해방 이후 현재까지 매년 10월 23일이 도래하면 주민들 참여하에 “東學農民軍 慰靈祭”를 지내 동학 정신을 계승 선양하는 곳으로 홍천 동학을 넘어 강원도 동학을 아우르고 대표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네 번째, 무엇보다도 지역 주민들이 이러한 동학 정신을 계승 발전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東學里” 개명을 원하고 있고, 당시 자작고개 동학농민군 전투에 참여 하였던 참여자 후손들도 동참 지지하고 있는 만큼 전국에서 첫 번째라는 의미가 있는 “東學里” 개명은 반드시 이루어 져야 한다.

 

따라서, 홍천군청 담당부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인지하고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행정에 적극 반영하여 조속한 기일내에 128년간 한 맺힌 풍암 2리 주민들의 응어리가 풀어질 수 있도록 개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최낙인(홍천군동학혁명 유족회 회장/ 홍천문화원 홍천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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