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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사 대적광전 용마루 청기와 두 장의 의미

김동성 기자 | 기사입력 2022/08/07 [20:19]

수타사 대적광전 용마루 청기와 두 장의 의미

김동성 기자 | 입력 : 2022/08/07 [20:19]

 

수타사 대적광전의 지붕 용마루에는 '청기와 두 장'이 얹혀 있다. 조선 시대에 청기와는 궁궐의 전유물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특이한 일이다.

 

 

아마도 이곳 수타사 태봉이 정희왕후의 태실인 점을 고려하여 세조가 특별히 배려하여 월인석보 2권과 함께 청기와를 보내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의 날개를 펴 본다.

 

조선왕조실록 > 문종실록 > 문종 즉위년 경오 > 1450년 2월 28일 기록에 의하면 청기와 이야기가 나오는데 청기와를 굽는데 많은 재력이 들어가 근정전과 사정전에만 청기와를 덮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기록으로 보아 청기와는 일반인들은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 된다.

 

  [조선왕조실록-문종실록-문종 즉위년 경오-1450년 2월 28일 기록]

 

掌令鄭之夏啓曰: "造佛創寺, 寫經印經等事, 雖曰先王所爲, 不忍輕廢, 豈可以無益誕妄之事, 行於卽政之初乎? 且聞靑瓦燔造, 所入財力浩繁, 故我國, 但於勤政殿、思政殿, 蓋覆而已, 文昭殿、宗廟, 尙且不能, 豈可爲之於佛宇乎? 臣等, 詮聞我國糧餉, 古有五十餘萬石, 中間有二十餘萬石, 今至於一十餘萬石。 靑瓦燈籠, 糜費不貲, 若不創寺, 則燈籠之造, 亦可已也。" 上曰: "燈籠則非新造也, 因舊修補耳。 靑瓦財力頗多, 且若等以爲不可, 故停之。" 之夏曰: "印經則大行大王, 己曾措置, 臣等未敢强請。 造佛, 雖曰後宮所爲, 然上已知之, 則豈可不禁乎? 請竝停之。" 上曰: "如可聽也, 豈待屢請? 予不能從也。"

 

장령(掌令) 정지하(鄭之夏)가 아뢰기를, "불상(佛像)을 만들고 절을 창건(創建)하며 불경(佛經)을 베껴 쓰고 불경을 인쇄하는 등의 일은 비록 선왕(先王)께서 하신 일이므로 차마 경솔히 폐지할 수 없다고 하지마는, 어찌 이익이 없고 탄망(誕妄)된 일을 전하의 즉위하신 초기에 행하겠습니까? 또 듣건대, 청기와[靑瓦]를 구워서 만드는 데 들어간 재력(財力)이 너무 많이 들므로, 우리 나라에서는 다만 근정전(勤政殿)과 사정전(思政殿)에만 청기와를 덮었을 뿐이고, 문소전(文昭殿)과 종묘(宗廟)에도 오히려 덮지 못했는데, 어찌 불우(佛宇) 에 이를 덮겠습니까? 신(臣) 등이 상세히 듣건대, 우리 나라의 군량(軍糧)은 옛날에는 50여만 섬이나 있었고, 중간에도 20여만 섬이나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10여만 섬에 이른다고 합니다. 청기와와 등롱(燈籠) 에 소비하는 비용이 적지 않으니, 만약 절을 창건하지 않는다면 등롱(燈籠)의 제조도 또한 그쳐야 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등롱(燈籠)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그전 것을 그대로 수리 보수할 뿐이다. 청기와는 재력(財力)이 자못 많이 들고, 또 그대들이 옳지 않다고 하는 까닭으로 이를 정지시키겠다." 하였다. 정지하(鄭之夏)가 아뢰기를, "불경을 인쇄하는 일은 대행 대왕(大行大王)께서 벌써 일찍이 조치(措置)하셨으니, 신 등이 감히 굳이 청할 수는 없습니다. 불상(佛像)을 만드는 것은 비록 후궁(後宮)의 하는 일이라 하지만, 그러나 전하께서 이미 알고 계신다면 어찌 금지시키지 않습니까? 모두 이를 정지시키도록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만약 들어 줄 만하다면 어찌 여러 번 청하기를 기다리겠는가? 나는 능히 따를 수 없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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